백승현 대동문화 사무처장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글귀는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 글귀를 제목으로 새긴 그림이 국보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다.

추사 김정희는 이 그림을 1844년에 그렸다. 금석학과 서화에서도 경지가 높았고, 이웃한 청나라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추사는 아버지의 일로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 간 제주도에서 유배살이를 했다.

유배살이는 고단했다. 가장 친했던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아내와도 사별을 했다. 반대파들의 모함과 박해도 이어졌다. 집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징역형을 살면서, 책을 벗 삼아 지내고, 시를 글씨로 써서 읊고, 그림을 그렸다. 그의 시·서·화의 경지는 최고조에 달했다.

한때 잘 나가던 그를 누구도 헤아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김정희의 제자 이상적은 유일하게 스승의 마음을 헤아렸다. 통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중국에 갈 때마다 최근에 발행된 좋은 서적들을 구해다 김정희에게 보내주었다. 김정희는 목마르게 고대하던 책자들을 선물 받아 읽을 수 있었다.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유배살이에 들어간 스승에게 등을 돌리지 않고 예전과 다름없이 행동하는 제자의 마음이 추사는 눈물겹게 고마웠다.

붓을 들어 겨울의 소나무 한 그루와 잣나무 세 그루를 단출하게 그리고, 작은 집 한 채를 그렸다. 쓸쓸하고 황량한 배경 위에 ‘세한도’라는 그림의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이라고 썼다. 우선은 이상적의 호로 ‘이상적 감상해보게!’라는 뜻이었다. 그림을 마치고 인장을 찍었는데,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글씨였다. 우리 서로를 위한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말세나!’ 이런 뜻이었다.

이상적은 중국 연경으로 사신을 가면서 그림을 가져가 중국 친구들과 추사 김정희와 교유했던 선비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예술혼과 조선 선비 사이의 의리와 절개를 칭찬하는 글씨들을 받아왔는데, 그 때문에 그림의 크기가 더 커져버렸다. 조선의 의리와 절개가 어찌 최고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칭찬한 글이었다.

한 겨울 지나 봄이 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건만, 올해처럼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새로울 수 있을까 싶다. 계절의 봄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사람들의 형편이 펴서 기지개를 펼 새로운 봄 말이다.

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예술 분야에도 많은 변화와 영향이 있었다. 문화시설의 휴관 및 사회적 거리두기 실시로 공연, 전시, 축제 등이 중단되거나 연기되어 문화예술 활동 자체가 위축되었다. 예술인과 예술단체의 소득이 감소했고, 고용불안정이 심화되었다.

대신 예술 분야에도 스마트 오피스가 확대되고 온라인 비대면 제작과 유통, 교육이 증가했고 예술대학 교육도 변화되고 있다. 코로나블루로 소외와 고립, 혐오와 갈등에 대한 문화예술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말하고 있다.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 문화예술 고용주의 피해 규모는 1조 5,717억원으로 공연예술 분야 6.578억원, 시각예술 분야 3,347억원, 대중예술 분야 3,323억원, 다원예술 분야 949억원, 문학 분야 558억원이라고 한다. 고용된 예술인이나 프리랜서들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코로나19로 예술인이 수혜한 정부 정책사업으로 창작준비금(30%)과 보건복지부의 긴급고용안정지원금(27%), 예술인 긴급생활안정자금 융자(10%) 등이 있었고, 중앙 정부 정책사업에 예술인들의 56.8%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피해에 비해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광주시에서도 전문 문화예술단체 300여개에 단체 활성화 지원금을 단체당 100만원씩 지원했고, 예술인들에게도 1인당 50만원씩 생활안정 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 예술업계에는 시설과 대관료 등을 감면해주고, 문화예술인들의 ‘고용유지 지원금’과 ‘융자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예술인들에게 창작지원금, 생활안정지원금, 예술인 고용보험 확대 등을 통해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창작, 제작, 시장 진출 등에서 연계된 종합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랜선 공연, 드라이브-인 공연, 스트리밍 서비스, 국내외 온택트 판매망 구축과 판로 개척 등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문화예술 창작 유통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더 용기를 내서 행동한다. 평소처럼 의리를 지키고, 다른 사람과 어려움을 함께 한다. 그런 사람의 향기는 한겨울에 핀 매화의 향기처럼 멀리 퍼진다.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가 택배노동자나 대리운전사가 된 배우나 예술가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본업을 접고 부업을 하는데 부업이 본업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외롭고 쓸쓸한 그들에게 세한도를 그려줄 수 없어 입춘방을 쓴다. 노루꼬리만큼 남은 이 한겨울을 참아내자고. 이 세찬 한파가 끝나면 기어이 봄은 온다고. 정녕코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고. 그때까지 이겨내는 가장 확실한 힘은 결국 ‘집단면역’에서 나온다고. 장무상망, 우리 서로를 위한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말자고.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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