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모루’가 달팽이와 닮은 듯하다. 작은 입구를 들어서면 숨어있던 오래된 가옥건물 형체가 드러난다. 약간의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따스한 온기와 사랑이 가득한 수다가 펼쳐진다. 메인 콘셉트는 금속공예 공방이다.

늦은 아침이란 뜻의 ‘브런치’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요즘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여유로움을 주는 단어다. 공예 공방 ‘모루’, 이곳에서 대학생들과 작가들이 이른 아침부터 느긋한 브런치를 즐기고 있다. 공방 ‘모루’대표인 조수진. 그가 음식을 준비할 동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스스로 삶과 자신을 돌이켜보고 서로 마주앉은 사람들을 알아간다.

“우리 집에 초대 받은 사람들은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만났던 사람들처럼 편하게 이야기합니다. 집주인으로서 재미있기도 하구요. 반가운 일입니다.” 경계를 벗어나 편안해 질 무렵 그들은 다시 모니터에 모였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과 아침과 점심 사이에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일이 저는 보람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정기 모임은 아니고 한 달에 한 번씩 번개 팅을 합니다.”

이들이 본 영화는 학살의 주범 <‘그 사람’을 단죄하라! 26년>이다. 광주 수호파 중간보스 곽진배,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 서대문소속 경찰 권정혁,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2세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을 불러 모은 보안업체 대기업 회장 김갑세와 그의 비서 김주안의 제안은 바로 ‘그 사람’을 타킷으로 한 극비 암살 프로젝트다.

장면이 넘어 갈 때마다 젊은 대학생들은 분노에 찬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들이다. 종종 우리가 오류를 범하거니와, 제 아무리 잔혹했다고 하더라도. 분노는 여러 정념들 중에서도 체험과 가장 밀접한 정념이어서 교육으로 생성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한편, 서대문경찰서 최계장의 집요한 추적으로 암살 작전의 실체가 밝혀지고 경호실장인 마상렬의 명령으로 연희동 안팎은 빠르게 진압된다. 미진에게까지 포위망은 좁혀지고 사라졌던 정혁이 나타나 작전을 저지한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들의 거사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모루라는 간판을 걸었을 때 그의 지인은 “가장 낮은 대로 가려고 하는구나”라고 좋아했다. 그 말에 조수진은 공감하고 있다. 계산 없는 농담처럼 사람들이 부디 힐링이 되었으면 하는 공간이다.

느려도 아름다울 수 있는 곳, 느려서 더 좋은 곳.

“사람들은 공예에 대한 소비가 적습니다. 소비가 될 수 있는 문화공간도 적구요. 그래서 공예 하는 사람들 중 신선놀음 하고 있는 작가들도 적지 않습니다. 소수만 하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일까? ‘모루’ 대표 조수진은 오만과 편견 같은 작업을 계속 진행중이다. 대중하고 더욱 소통하고 싶어서이다.

“개인의 취향을 맞추는 일도 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원래 공방을 하면 위탁 판매를 합니다. 다양하게 만들어낸 작품이라도 한계성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색깔일 뿐이죠. 작품을 사서 판매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지요.”

모든 공방이 그러지 않겠지만 가끔 다른 사람의 물건을 대신 팔아주는 행위가 무언의 폭력과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는 ‘모루’에서만큼은 돈으로 매입을 하지 않는 이상 위탁하지 않기로 했다.

“이게 진정한 공예를 거래하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작가들 작품가지고 전시회 하면서 허세부리지 않고 호두나무 호텔처럼 그런 공방주인이 되고 싶어요.”

달팽이를 관찰 하던 어릴 적 기억이 난다. 겨울이 다가오면 달팽이는 마른 잎이나 돌 밑에 기어 들어간다. 껍데기 속에도 점액으로 여러 겹의 막을 치고 제일 안쪽으로 움츠러 들어가 호된 추위을 견디고, 몸이 마르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돌돌 말린 껍데기 속에서 여름에 모아 둔 양분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는 채 기나긴 겨울잠을 잔다. 마침내 따스한 봄이 오고 오랜 잠에서 깨어난 이 녀석들의 물컹한 근육들이 쭉쭉 펴질 때쯤 동글한 껍데기 속이 궁금했었다.

공방 ‘모루’가 달팽이와 닮은 듯하다. 작은 입구를 들어서면 숨어있던 오래된 가옥건물 형체가 드러난다. 약간의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따스한 온기와 사랑이 가득한 수다가 펼쳐진다. 메인 콘셉트는 금속공예 공방이다. 아주 작고 천천히 그리고 친숙하게 대중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그야말로 사랑방처럼 사용하는 곳이다.

느려도 아름다울 수 있는 곳, 느려서 더 좋은 곳. 이곳에서 공예가 생활 속에 젖어들 수 있도록 작은 이벤트도 펼치기도 한다. 모루에 온 사람들은 거창하지 않다. 모루라는 간판을 걸었을 때 그의 지인은 “가장 낮은 대로 가려고 하는구나”라고 좋아했다. 그 말에 조수진은 공감하고 있다. 계산 없는 농담처럼 사람들이 부디 힐링이 되었으면 하는 공간이다.

“카페라기엔 어색한 공간입니다. 따스한 차 한 잔 하면서 공예품에 대한 감성을 같이 나누면 좋겠습니다. 물론 목적이 다르게 모입니다. 하지만 얻어서 나가는 것은 같아요.”

대동문화 75호 [2013 3.4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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