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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길이 된 사람들과 시비로 본 도로명인문학수다- 광주 문학지도 만들어 활용하자
이동호 기자 | 승인 2016.01.26 09:05

광주의 길은 저마다 옷을 입고 있다. 의로운 옷, 엄하고 권위가 서린 옷, 때로는 낭만과 아름다움이 깃든 제각각 특색 있는 옷을 입고 있다.

이수복시비

예로부터 남도는 의향, 예향, 미향의 3향이라는 색깔을 가진 옷을 입은 지역이다. 그 중심에는 광주가 있고 광주의 중심엔 그 3향을 의미하는 길이 있다.

남도는 평야 지대가 많고 비옥하며 기온이 따뜻하여 천혜의 농업 지역이었다. 곡창이자 어창이었으며 인심이 좋고 산수가 화려하여 예로부터 인류가 정착하기에 최상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왕도에서 멀고, 벽진 까닭에 중앙 정치 무대의 진출이 쉽지 않아서인지 소외와 수탈의 대상지가 되었고 정치적 보복에서 벗어나려는 중앙 권력층이 찾아들면서 본격적인 약탈과 수탈이 시작된다.

이에 따라 지키고 살아남으려는 자구책을 마련하게 되고 거칠고 모질게 성격 또한 변해간다. 역사적으로 국난의 선봉에서 보여준 저항과 반항의 기질은 타 지역의 귀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의병으로서 구국의 선봉에 서고 충절을 지킴으로써 역사적인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도로를 보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직을 은퇴하고 쉬고 있던 고경명은 “이제는 붓을 내리고 나라를 위하여 칼을 들 때”라며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두 아들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그의 호를 딴 도로가 제봉로. 남광주에서 시작하여 광주역까지 이어진다.

죽봉 김태원장군 동상

평화로울 땐 학문과 예술을, 국란에는 의병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전국을 돌며 왜구와 싸워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직전 정쟁에 휘말려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숨진 충장공 김덕령의 호를 딴 도로가 바로 광주의 중심 충장로인 것이다.

광주역에서 농성동 지하도에 이르는 경열로 역시 고려말 충신 정지 장군의 시호이며 구. 도청 앞에서 발산교에 이르는 금남로 역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중기의 명장 정충신의 호인 금남을 따서 만든 이름이다.

또 농성 지하 차도에서 동운고가에 이르는 죽봉로는 한말 항일 의병장 김태원의 호이고 서방 사거리에서 동운 고가도로에 이르는 서암로 역시 한말 항일의병 양여진 장군의 호이다. 광주고등학교 앞에서 월산 로터리에 이르는 구성로 또한 조선 인조 때 청나라에 맞서 싸운 전상의 장군의 호를 따서 만든 거리 이름이다.

남도는 예향으로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남도 문화예술의 발전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풍요로운 농어업 문화를 토대로 감정이 풍부해졌고, 아름답고 화려한 산수와 수려한 해안 등이 남도의 특색 있는 예술 정신으로 승화되었다.

또한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이 제주도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의 가르침을 받았고 허백련 같은 후대의 인물이 나왔으며 초의 선사와 김정희의 만남은 그림, 글씨는 물론 차 문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실학을 대표하는 다산 정약용과 추사는 조선 후기 진경 문화를 이끌던 양대 산맥이었고 자화상을 그린 공재 윤두서와 문학, 천문학, 지리학 등에도 해박한 고산 윤선도의 영향은 남도의 예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정자 문화의 산실인 가사문화권의 정철, 김인후, 김성원, 송순 등도 문화 예술의 선봉장으로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길만 알아도 역사와 문화가 보인다

학동 삼거리에서 증심사까지의 의재로는 의재 허백련의 호를 딴 도로이다. 또한 충장사에서 충효동 환벽당에 이르는 송강로는 조선의 문인 송강 정철의 호를 딴 도로이며 남광주 사거리에서 서방 사거리에 이르는 필문로 역시 조선의 문인 이선제의 호를 딴 도로다.

눌재로는 서창 검문소에서 칠석동까지의 도로로 조선의 문인 눌재 박상의 호를 딴 도로이다. 광산구 흑석 사거리에서 광산동 장성 경계까지는 고봉로는 조선의 문인 기대승 선생의 호를 딴 도로이며, 사암로는 조선의 문인 사암 박순의 호를 딴 도로이다. 비록 장성 황룡면에 위치하긴 하지만 동국 18현으로 광주·전남에서는 유일하게 공자의 사당에 배향된 하서 김인후의 호를 딴 하서로 역시 운암동 문화예술회관에서 북구 태령동까지 하서로가 존재한다.

광주권의 시비군은 크게 4개 권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첫 번째는 광주공원의 용아 박용철과 영랑 김윤식의 쌍시비에서 출발하여 사직공원과 양림동에 있는 14개의 시비다. 호남문단의 좌장격인 눌재 박상을 비롯하여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고산 윤선도, 백호 임제가 있고, 금남군 정충신과 충장공 김덕령의 시비가 모두 이 지역에 있다.

한국 현대시의 큰 별인 다형 김현승이 활동한 양림동에는 ‘가을의 기도’와 다형 100주년을 기념한 ‘절대고독’의 시비가 양림 언덕에 있고, ‘봄비’의 이수복, ‘휴전선’의 박봉우의 시비까지 즐비하다. 그야말로 시인의 마을이란 칭호를 받는 양림동이다.

인문관련 지도

40여기의 시비로 남은 광주 문학의 향기

두 번째는 푸른길 권역으로 ‘사평역에서’를 쓴 곽재구 시인은 남광주역이 시의 모티브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 ‘남광주에 나는 가리’라는 시를 남긴 김용휴 시인의 시비가 남광주 시장 입구에 있다. 이 길의 중간에 있는 광주고는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광주고 문학관’이 있으며 교정에는 이성부 시인의 ‘무등산’ 시비가 세워져있다. 연하여 북구 문화예술회관에는 고정희 시비와 정소파 시비가, 시립미술관에는 김만옥 시비와 김남주 시비가 있다.

세 번째 권역은 무등산 권역으로 청풍 쉼터에 1978년 조성된 난고 김병연의 삿갓 시비가 있으며, 원효사 입구에는 다형 김현승의 ‘눈물’ 시비가 있다. 또한 화순으로 통하는 너릿재 고개에는 광주 시비 공원이 조성되어 광주·전남연고의 시인을 비롯하여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 등 10여기의 시비가 있다.

네 번째 권역은 순수시의 길로 광산구 솔머리 마을의 용아생가다. 1930년 <시문학>을 창간하며 순수시 운동을 펼친 시문학파의 산실이다. 송정공원에는 용아 박용철의 ‘떠나가는 배’ 시비가 있으며, 역시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지하철문학관이 송정공원역에 있어 오가는 사람의 발길을 잡는다. 용아생가에서 멀지 않은 말미산에는 용아 무덤이 있어, 용아생가에서 송정공원, 용아무덤까지 산책하며 사색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가을은 문학의 계절, 전국적으로 100여개의 문학관이 집계되고 있으며, 사설문학관을 합하면 160여개에 이른다. 여러 지역으로 떠나는 문학 여행도 좋지만 광주권의 문학과 문학비도 살펴보며, 지역 사회의 문학 지도를 그려보는 것도 좋겠다.

[대동문화 90호, 2015년9.10월]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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