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pig, 130.3 x 89.4cm, oil on canvas, 2011

어렸을 적 우리는 유달리 큰 알에서 태어난 아기 오리가 다른 오리들과 다른 생김새로 인하여 많은 차별을 받고 쫓겨난 뒤, 온갖 냉대와 무시를 당하며 살다가 시간이 지나 우연히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결국 자신이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아름다운 백조임을 알게 되었다는 동화를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솝(Aesop, c. 620-564 BC)의 여러 우화(寓話) 중 하나인 <미운 오리새끼>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짧은 이 이야기 속에는 남과의 비교나 차별에 대한 반성이나 참다운 가치에 대한 교훈 등 오늘날에도 통용될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이 들어있다.

<개미와 배짱이>, <토끼와 거북이>, <사자와 생쥐> 등과 같은 이러한 우화는 인간 대신 주로 의인화된 동물들을 등장시켜서 풍자와 해학을 통해 많은 점을 시사한다.

한 개만 더 살까, 111x150cm, oil on canvas, 2011

돼지가 인간에 빠진 날의 동화

이다애 작가의 그림은 이와 같은 일종의 우화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이솝의 우화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을 등장시키고 그것에 인격을 불어 넣는 작업을 한다. 따라서 그녀는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화라는 하나의 형식을 회화라는 매체로 풀어내는 작업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우화라는 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선사시대부터 나타나는 동물들의 의인화(anthropomorphism)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녀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방식들 중 하나를 취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인화란 말은 ‘인간(human)’이란 말인 고대 그리스어 ‘앤스로포스(anthropōs)’와 ‘모양(shape)이나 형태(form)’이란 말인 ‘모르페(morphē)’를 더한 말에서 온 것이다. 이다애 작가의 경우 돼지가 인간의 모습을 띤 것으로 묘사되며 그러한 ‘의인화된 돼지’가 회화적 우화의 주인공인 셈이다.

동양과 서양을 떠나 돼지는 인간이 가축을 기르면서부터 함께한 매우 친숙한 동물이며, 따라서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의미를 부여받는 동물들 중 하나이다. 그녀는 때론 탐욕이나 과식, 불결함과 같은 부정적인 속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때론 건강과 다산, 재물과 같은 긍정적인 속성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다애 작가는 이 돼지의 이중적인 속성을 통해 현대인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한 개만 더 살까?’라는 작품에서 등장하는 돼지 여성은 현대인들의 소비욕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이나 지젝(Slavoj Žižek, 1945~ )이 말한 것처럼, 욕망(desire)은 결코 만족될 수도 없으며 욕망 그 자체를 생산할 뿐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소비에 대한 욕망을 지닌 채 살아간다. 이 그림에서 욕망의 화신으로 표현된 돼지 엄마는 욕망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상품화된 돼지들을 카트 한 가득 담고 있지만, 이것들은 다 소비되더라도 새로운 욕망의 돼지들이 생산되어 진열장의 빈자리를 끊임없는 채울 수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하다.

외톨이, 116.8x91.1cm, oil on canvas, 2011

운명을 눈치채지 못하고 돼지처럼 편할 뿐이다

‘한마리에 300원(1+1)’의 작품에서는 돼지와 더불어 병아리가 등장한다. 여기서 병아리는 컬러로 예쁘게 꾸며져 있으며, 그 중 한 마리의 발에는 끈이 묶여져 상자 속의 시가를 물고 있는 돼지와 연결된다. 1+1이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병아리든 돼지든 한 마리를 사면 다른 한 마리가 덤으로 제공된다. 하지만 며칠 살지 못할 병아리와 자신이 상품인지도 모르는 상자 속의 돼지는 자신들의 운명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편히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Don't touch me’라는 작품은 구제역과 관계하는 작품으로서 인간 자신의 허술한 관리나 잘못된 처리 등은 생각지 않고 오직 인간중심적인 판단만으로 수백만 마리의 돼지들이 생매장 당하는 작금의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과 비교될 수 있다. 왜곡된 신념으로 자행된 비인간적인 당시의 학살은 오늘날 수많은 비판을 불러왔지만 먹는 식품으로 정해진 돼지들의 운명으로 환치된다. 비록 그 식품을 먹는 인간에 의해서 비롯된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생명을 강제로 폐기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과연 정답인가를 묻고 있는 작가의식. 이 작품은 이러한 하나의 문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 입만 무그라, 72.7 x 90.9cm, oil on canvas, 2011

관객에게 던져진 질문 한 가지

작품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다애의 작품은 돼지를 의인화하여 인간들의 욕망이나 사회적 세태 등을 풍자하는 회화적 우화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녀의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그에 대한 어떤 해답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서 그녀가 고민하는 문제들을 제기할 뿐이며 그 외의 나머지는 전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을 음미하고 곱씹어 보고 사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바로 이와 같은 점이 예술의 한 측면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녀의 회화적 우화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신하고 어떤 답장을 써야할지 자문해보자.

대동문화 75호 [2013 3.4월호]

김병헌 무등현대미술관 학예실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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