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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치열한 삶의 현장과 우주적 생명의 담론“나는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바다처럼 깊고 웅숭깊은 삶을 향한 필생의 글쓰기
백승현 기자 | 승인 2016.03.23 17:14

“요즘 어떤 소설 구상 중이십니까?” “그건 영업 비밀이라 못 가르쳐드리네.” 전화로만 인터뷰하는 마음이 졸아들면서 소슬해진다.

한승원(韓勝源) 소설가는 그렇더라도 최근의 집필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요즘 인간 중심주의 즉 휴머니즘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고 있어요. 우주 전체를 생각하는 우주적 삶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고, 이런 생각을 옮긴 소설이 다음 작품이 될 것입니다.”

우주적 상상력과 지비심의 세계를 소설로 말하다

한승원 소설은 한국 문학사 속에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적 갈등과 애욕을 바다의 원형적 심상에 환기하여 쏟아낸 이야기의 세계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소설의 발문에서 또 이렇게 이야기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장편 ‘연꽃바다’를 쓸 때부터 제 작품 세계는 크게 변했습니다. 생명주의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인데, 저는 그것을 휴머니즘에 대한 반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인간 본위의 휴머니즘이 우주에 저지른 해악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노장(老莊)이나 불교 사상에서 천착해 찾아내야 합니다.”

최근에 펴낸 동화집 <신기한 목탁 소리>에서도 이런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어느 큰절에 귀가 절벽인 늙은 스님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목탁을 깎는다는 이야기를 통해 삶의 철학을 전하고 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이니만큼 ‘한 문장, 한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며 완성해 나갔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에게 문장은 바로 몸이다. “무슨 말이냐면, 작가는 우주 속에서 뿌리를 내려서 그 뿌리를 통해 빨아들인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므로, 우주적인 감각으로 우주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치열하게 살지 않은 사람이 치열한 문장을 남길 수 없는 것이지요.”

혼이 담긴 살아 있는 글을 쓰기 위해 평생을 몰두해온 소설가에게 세상은 움터나는 글의 씨앗들로 생동하는 세계 바로 그것이다. <한승원의 소설 쓰는 법>(2009. 랜덤하우스코리아), <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2008. 푸르메)와 같은 책자들이 그것이다. 작가는 매일 차를 마시고, 소설을 쓰고, 명상하고, 산책하고 돌아와 또 소설을 쓴다. 지난한 문장쓰기의 연속이 축적해놓은 글의 길이 한승원의 소설이다. 다산(多産)의 소설가다.

한승원 소설은 한국 문학사 속에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적 갈등과 애욕을 바다의 원형적 심상에 환기하여 쏟아낸 이야기의 세계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글은 갯벌을 몸으로 밀고 나간 흔적이다

1997년 전남 장흥 안양면 율산마을 ‘해산토굴’로 돌아오고 난 이후 <추사>(2007. 열림원), <다산>(2008. 랜덤하우스코리아), <초의>(2003. 김영사)와 같은 조선 후기 인문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인물들을 소설화 한 것도,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의 이야기를 고향의 토착어로 녹여내기 위한 산책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원효>(2006. 비채)도 바로 그 우주적 삶에 대한 탐구의 길 위에서 만난 성인이었을 것이다. 해산은 작가의 호이다. 토굴이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는 곳이듯, 수행하듯 글 쓰겠다는 다짐이었다.

초의, 추사, 다산이 유불을 떠나 다산초당에서 대흥사 일지암에서 제주 모슬포 유배지에서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시와 그림과 글씨를 이야기하는 현장에는 언제나 차가 있었다. 차를 강연하는 광주의 문화 강좌에서 늘 만나는 한승원 선생의 얼굴은 찻물처럼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1980년에 전업작가로서 서울에 올라가 57세 되던 해인 1997년에 고향에 돌아왔으니, 해산 토굴 시절과 그 이전의 문학 세계는 엄연히 다를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삶 속에서 언제나 변하지 않고 고향과 갯벌과 바다는 소설의 원형질이었다.

“갯바닥 사람들은 화가 끓으면,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물방울 날리는 물결같이 장쾌한 욕설을 퍼붓은 다음에 할 말을 한다. 나는 그 갯가에서 나고 자란 탓으로, 바닷바람이 곰솔 숲을 흔들고, 높은 물결이 모래톱이나 바위 끝을 두드리며 아수성치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들의 말법을 익혔다. 말이 곧 생각이요, 생각은 모든 짓거리의 근원이라면, 나는 갯바닥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앞산도 첩첩하고> 작가 서문- 갯바닥 정신이 바로 한승원 소설의 힘의 근원일 것이다.

갯바닥스러운 삶의 원형질 소설화한 소설가

한승원은 전라남도 장흥 회진면 덕도에서 8남매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장흥중학교을 거쳐, 1954년 장흥고등학교에 입학해 문학반에서 나중의 소설가 송기숙을 만난다. 1955년 교내 잡지 <억불>를 만들고, 거기에 수필을 싣는다. 그리고 이런저런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고향집에서 농사를 도우며, 문학 수업을 계속한다. 이때의 이야기가 <보리 닷되>에 실려 있다. ‘노젓기를 해가며 김양식장에서 살았고, 산에서 나무를 지고 바다에 내려와 꽂아야 했고, 캄캄한 밤바다에 거룻배를 띄워 볏섬을 가득 실은 채 어둠을 헤쳐 나가야 했다.’ 바다는 평생의 소설의 자궁이 되었다.

1961년 서라벌 예술대학에 입학한다. 김동리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이문구, 박상륭, 조세희, 강호무, 김원일 등 나중에 작가가 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동인에 어울리지 않고, 늘 읽기와 쓰기에 고투했다. 톨스토이, 헤밍웨이, 앙드레 지드, 사르트르, 카뮈 등의 작품을 탐독하고 2주에 1편씩 소설을 써서, 김동리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군대에서 제대해 결혼하고서도 습작을 계속한다. 1968년에 소설 ‘목선’이 대한일보에 당선되면서, 한승원은 소설가 생활을 본격화한다. 1972년 광주에서 ‘소설문학’ 동인을 만든다. 문순태, 김신운, 강순식, 이계홍 등이 참여했다.

이후에도 ‘무당이 굿을 안 하면 아프듯이, 글을 쓰지 않으면 몸이 아플 정도’의 고투로 글을 써냈다. <불의 딸>(83), <아제 아제 바라아제>(85), <갯비나리>(88), <낙지같은 여자>(91), <겨울폐사>(92), <내 고향 남쪽 바다>(1992), <어머니>(92), <새터말 사람들>(93), <동학제>(94), <포구>(95), <해산 가는 길>(96), <연꽃바다>(97) 등을 써내려갔다. 제목만을 쭉 읽어도 장편(掌篇)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이 많은 소설들이다.

한국문학소설상(80), 한국문학작가상(83), 대한민국 문학상(83), 이상문학상(88), 현대문학상(88), 현대문학상(88), 서라벌 문학상(94) 등을 받았다.

한승원 작가의 소설 세계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적 갈등과 애욕이 얽힌 관계의 난맥상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바다의 원형적 심상을 환기하여 질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세계라 이야기된다. 생명의 원천이자 생명력의 자양인 자궁의 의미를 사회적 차원의 표상으로 환원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생명의 자궁으로 비유되는 바다가 한승원 소설의 중추적 표상을 이루는 것이다.

해산토굴은 작가가 귀향해 수행자처럼 소설을 쓰고 있는 삶과 소설의 현장이다.

바다가 해산해놓은 고향의 달

이상 문학상 수상작 <해변의 길손>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기를 거쳐 한국전쟁과 5․18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질곡에 얽힌 한 가족의 비극적 운명이 이야기선을 이룬다. 이때 개인적 가족사는 사회사 혹은 민족사의 비극을 응축하고 잉태하고 있다. 이때 개인적 가족사는 사회사 혹은 민족사의 비극을 반영하는 한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표작들인 ‘포구의 달’, ‘바다의 뿔’ 등도 시대사 속의 가족과 그 가족사의 운명적 귀결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해산 가는 길’은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는데, 자기 문학의 뿌리인 고향의 ‘바다’와 그 밑의 어둠 속에 누운 ‘해산’이라는 의미가 함께 곁들여진 고향에 돌아온 첫 작품이다. 가족사에 얽힌 숱한 사연들을 일대기 식으로 적고 있다. 이 정점을 끝으로 그는 ‘다산’, ‘초의’, ‘원효’와 같은 역사적 인물의 삶과 사상을 깊이 탐구하고 그들의 사상을 ‘우주적’으로 해석해 재구성한 이야기를 골자로 한 소설들을 다산(多産)해내고 있다. 에로틱한 상상력, 바다와 갯가 풍광의 서정적 재현, 수수한 남도 사투리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소설의 바다이다.

그 소설들이 지향하는 세계는 무엇인가? “모든 예술, 학문, 종교, 정치, 경제는 우리들의 삶을 예찬하고, 정말로 사람답게 살아갈 만한 세상을 희구해야 한다. 참된 삶은 욕심으로부터 벗어나 우주의 근원적인 힘을 찾고, 그것을 확산 승화시키는 데에 있다. 그것은 생명력이다. 나는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생명력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내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해나갈 것이다.”

한승원 소설가가 써낸 다산의 문학작품들은 바다처럼 깊다. 그래서 다 보이지 않는다. 그 깊은 바다를 목선 한 척이 몸을 내밀고 검고 어둡고 요동치는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한승원 소설의 바다이다.

평론가 우한용은 ‘소설가 한승원이 다룬 소설도 그가 다시 돌아간 세계도 고향인 남해 바닷가의 원형상징성 속이다. 이 공간을 그는 한국 소설사에 자리잡게 했다. 그의 고향은 한국 근대사의 혈흔을 확인하는 공간이며, 거기 쌓인 억압과 그의 해소를 위해 몸부림하는 인간들이 거대한 늪에서 녹아나기도 하고, 새로운 생명체로 자라나기도 하는 창조의 공간으로 자리잡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바다가 보이는 곳에 ‘해산 토굴’이 있고, 그 토굴에 소설가 한승원이 있다. 그 깊이는 소설의 길 만큼이나 깊고 웅숭깊다.

대동문화 75호 [2013 3.4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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