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열 대동문화 대표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호국의 달 6월이면 70년대 유명했던 가곡 ‘비목’이 절로 생각난다.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으로 알려져 있는 비목은 가사와 곡에 애달픈 사연이 들어있어 한국전쟁 전후 세대들이 애송했던 노래이다. 60년대 중반 한명희 소위가 강원도 백암산 비무장지대에서 군생활을 할 당시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들과 이름 없는 비목을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나 작사를 했다고 한다.

가사를 쓸 무렵, 제일 먼저 머릿속에 스친 영상이 살벌한 전방 첩첩산골의 이끼 덮인 돌무덤과 그 옆을 지켜 섰던 새 하연 산목련이었다. 그는 화약 냄새가 쓸고 간 그 깊은 계곡 양지녘의 이름 모를 돌무덤을 초연(硝煙)에 산화한 무명용사로 묘사하고, 비바람 긴 세월 동안 한 결 같이 그 무덤가를 지켜주고 있는 새하얀 산목련을 주인공인 무명용사를 따라 순절한 연인으로 상정하여 아름다운 어휘들을 정리해 냈던 것이다.

‘비목’ 가사에 대한 오해도 있었다. 초연이 쓸고 간의 ‘초연(硝煙)’은 화약연기를 뜻 하는데 이를 ‘초연(超然)하다.’ 는 의미로 오해하거나 ‘궁노루 산울림’에서 ‘궁노루산’이 어디 있는 산이냐고 묻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소위는 순찰 길에서 궁노루 한 마리를 잡아왔는데, 그날부터 짝을 잃고 홀로 남은 암놈이 매일 밤 애처롭게 울어대는 통에 며칠 밤을 그 잔인했던 살상의 회한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산간계곡에 새하얀 달빛이 쏟아지는 밤이면 궁노루도 울고, 한소위도 울고, 온 산천이 오열했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흐르는 밤’이란 가사의 뒤안길에는 이 같은 단장(斷腸)의 비감이 서려 있다. 비목의 배경은 우리 민족의 시대적 산물이자 상징물인 샘인 것이다.

지평리 전투와 몽클라르 장군

몇 해 전일이다. 서울에서 남도여행을 온 고객에게 받은 한권의 책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한국을 지킨 자유의 전사 –나의 아버지 몽클라르 장군>이란 책으로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지평사모)>이란 단체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국전쟁 당시 지평리 전투와 프랑스의 몽클라르 장군을 소개하기 위해 펴낸 전기(傳記)였다. 원본은 장군의 외동 딸 파비안 몽클라르가 불어로 <MONCLAR>라고 쓴 글로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판되지 못했던 것을 한국의 지평사모와 대표 김성수에 의해 번역, 출판된 책이다. 김성수 대표는 광주 서중과 서울 법대출신으로 서울지법판사를 역임하고 당시 법무법인 ‘아태(亞太)’ 대표 변호사로 재직 중일 때 일행들과 남도여행을 왔는데, 내가 그 안내를 맡았었다.

‘지평사모’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에서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벌어진 지평리 전투를 기리는 모임으로 김변호사가 만들었다고 한다. 지평리 전투는 유엔군이 중공군에 첫 승리를 거둔 전투로 당시 몽클라르 장군과 프랑스 대대 5백 명, 미국 23연대 5천5백 명이 중공군 3만 여명을 맞아 대승을 거둔 현장이다. 아군 52명, 중공군 5천명이 전사했는데, 이 전투를 계기로 유엔군이 전세를 역전시켜 대반격에 나설 수 있었던 중요한 전투였다. 당시 몽클라르 중장은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백전노장의 용사였다. 프랑스군 500명은 대대급으로 중령이 지휘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장군은 스스로 중장계급을 중령으로 강등, 한국전에 참전 지휘했는데, “자유를 위해 피 흘리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며 자원할 만큼 자유를 사랑하는 참 군인이자, 프랑스의 인기 높은 영웅이었다.

6.25 한국전쟁 71주년을 맞았다. 당시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산화(散華)해 간 꽃다운 청춘들이 얼마인가? 그들을 생각하며 숙연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한국전쟁 발발 두 세대가 훨씬 지났다. 전쟁 경험 세대보다는 전후 세대가 국민의 절대 다수이다.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유엔군과 한국 젊은이들의 피의 대가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그러나 오늘의 이 나라는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간에 갈등과 진영(陣營) 싸움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제적, 국내적 정세 등이 하수상한 시국이다. 돌이켜 보면 해방 후 건국과정에서 무능한 지도자의 정권욕과 오판이 민족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국토는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민족은 언제쯤 하나가 될지 기약이 없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 잔재는 민족의 정기(精氣)를 말살했고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으니 부끄러운 나라이다. 국난에 어진 재상을 생각한다(國難思良相)고 했다. 오늘날 사리사욕을 버리고 오직 나라와 사회를 위해 한 몸을 불사를 그런 인재는 없는 것인가?. 서로 틀렸다고 삿대질 할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만이 공존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모두가 상생하고 승화하기를 고대해 보는 호국의 달이다.

조상열 인문학 칼럼리스트  ddmh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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