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 대동문화 사무처장

“여러분들은 이 현장을 직접 확인했으니, 지금 듣고 본 사실을 절대 왜곡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반드시 기록해서 후배들에게 증언해주세요. 간곡히 부탁합니다.”

지난 6월 3일 오전 광주 광천동 시민아파트에 ‘청계 자유 발도로프 학교’ 상급 과정 학생 20여 명이 우산을 쓰고 도착했다. 상급 역사교사 2명이 인솔하고 있었다.

나중에 발도로프는 오스트리아 출신 루돌프 슈타이너라는 사람에 의해 191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로부터 시작된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대안학교로 12학년까지 있으며, 마지막 12학년 학생들은 미학, 건축사, 문학사 등의 예술사를 통해 창조적 훈련을 한다고 했다. 이 학교의 상급반 건축사 현장체험 교육 첫날 일정이 광주의 광천 시민아파트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었다.

학생들을 마중 나온 이는 5·18 시민군 기획실장이었던 김영철 열사의 부인인 김순자 여사와 아들 김동명 씨였다. 들불 7열사 중의 한 명인 김영철 열사는 결혼 후인 1976년에 광천 시민아파트 A동 216호로 이사해 이웃들과 함께 지역사회 개발사업을 했다. 1978년 전남대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광천동 광주공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들불야학이 개설되었을 때, 초대 교장격으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투사회보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5·18을 맞았다.

이곳은 박용준, 박관현, 윤상원 열사가 실제 살았던 곳이고, 들불야학을 중심으로 박기순, 박효선, 임낙평, 최영철, 고희숙, 최기혁, 신영일, 서대석 등이 들불야학을 일구었던 곳이다. 그리고 들불야학 학생들은 시민군으로 활약하면서, 도청 무장 사수의 주역으로 한국 민주주의 역사 위에 뿌려진 5·18의 꽃들이 되었다.

김순자 여사는 학생들에게 가족들이 살던 A동, 윤상원 열사가 살던 B동, 2기 들불야학이 열렸던 C동, 투사회보가 만들어진 옛 삼화신협 초창기 건물 등을 돌며 학생들에게 광천시민아파트와 들불야학과 5·18 그리고 남편인 김영철 열사의 삶과 5·18 이후의 자신의 가족들의 시난고난했던 삶을 울먹이며 이야기했다. “저는 오월어머니집 회원 김순자입니다. 그리고 5·18 도청 수습위원회 기획실장 고 김영철의 아내입니다.” 이렇게 시작했다.

김영철 열사는 항쟁의 마지막 날인 5월 27일 전남도청 2층 민원실에서 윤상원, 이양현, 윤석루, 이재호 등과 함께 남아 있었다. 계엄군이 쏜 총탄에 윤상원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고, 자결하려고 하다가, 이양현의 만류로 살아남아 계엄군에 체포된다.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영창 벽에 머리를 여러 차례 들이받아 자살을 기도했다. 헌병들의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이 계속되었다. 군사법정 1심에서 12년, 2심에서 7년을 선고받았고, 최후 진술을 하라는 재판장의 요구에 ‘자랑스러운 민주시민, 광주시민 만세!’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1981년 12월 성탄절 특사로 석방되었으나,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투병 생활을 했고, 1998년 8월 16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안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순자 여사는 5·18 때 임신 8개월이었고, 518둥이인 김연우 씨를 그해 낳았다. 먼저 태어난 김동명, 김선형 씨 등 1남 2녀를 키우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청과물 좌판을 열기도 하고, 우유배달을 하기도 했고, 북구 유동과 신안동에서 식당을 하기도 했다. 남편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고, 생활고를 뚫고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 세월의 고통과 인내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뜻을 잊지 말자고 가족들은 애써 노력했고 1남 2녀는 훌륭하게 자랐다. 특히 막내 김연우 씨는 한국무용을 전공해 5·18 행사 등에서 창작 공연 활동을 하고 있는 창작 안무가다.

사실 광천시민아파트의 건축사적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온 학생들은 적잖이 실망했을 것이다. 학생들은 1970년 7월 사용승인이 난 이 아파트가 광주의 최초의 연립아파트였다는 상징성을 보기 위해 찾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파트는 180여 가구의 3층짜리 연립 주택 건물이고 광천동 광주공단을 중심으로 노동자들과 행상인, 한국전쟁 피난민 등이 살았던 곳이다. 1가구는 10평쯤 되는 공간에 두 개의 방과 부엌을 겸한 통로가 있을 뿐, 화장실과 세면실은 각 층의 중앙에서 해결하는 구조로 다가구 연립 판자촌으로 불릴 정도로 열악했던 곳이다.

이 아파트는 또 광천동 주택재개발지구에 포함되면서 한때 철거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지난 5월 이 아파트의 B동을 보존하기 위한 업무 협약을 다자간 체결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3동인 이 아파트의 1동만 보존하자는 협약에 양이 차지 않는다.

5·18의 자연발화점인 이곳을 전부 존치해 3세계 인권 평화 연구와 후세대를 위한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5·18의 정신사를 문화예술 작품으로 창작하는 미래 공간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발도로프처럼 시민사회 교육, 인권 평화 콘텐츠를 예술문화 교육으로 승화시키는 인성 교육이 ‘들불 노동자 학교’, ‘윤상원 민주학교’, ‘김영철 공동체 학교’라는 이름으로 광주에서 시작된다면 어색할까? 학생들을 떠나보내고 김영철 열사의 유족들과 을씨년스러운 광천시민아파트를 되돌아 나오면서 든 생각이다. 진정한 역사의 회복은 그것을 잊지 않는 후세대들을 현장 속에서 교육하는 것이다. 그 교육은 예술과 문화로 승화되어야 마땅하다. 무자비한 자본의 논리로 도시를 개발해 역사 현장을 뭉개버리는 지금의 광주 도시 품격을 다시 생각한다. 김영철 열사는 이렇게 외쳤다.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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