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 인문학칼럼리스트

여행 중 아름다운 숲과 호수, 곧 정원을 만나면 싱그러운 새 아침처럼 에너지가 솟구치는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다. 인간의 삶에 활력을 주고 몸과 마음을 힐링해주는 곳으로써 정원(庭園)의 가치를 말해 준다. 정원은 조성자의 철학과 규모 등 성격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이지만, 조성의 필수조건은 물과 나무(화훼) 곧 호수(연못)와 숲이고, 경관 좋은 곳에 세워진 누정이다. 정원의 입지 조건이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경(借景) 문화라고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 유서 깊은 도시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그 정원들은 당시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어 왔으며, 오늘날 인문 자연과 문화 살롱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모든 생명은 물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법. 예나 지금이나 한 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건물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살폈던 것이 물이다. 전 세계 유명한 도시는 반드시 큰물을 끼고 있다. 물이 없을 경우 인공으로 호수와 연못을 조성했는데, 풍수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정신수양과 경관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인문의 향이 온축(蘊蓄)된 사람은 호화로운 집보다는 자연의 향을 즐기고자 한다. 그러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원림(園林)이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 일찍이 마르코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다.” 라고 경탄한 소주와 항주는 오, 월, 남송 등이 번갈아 도읍지로 정했던 유서 깊은 고장이다. 소항을 아름답게 하는 이유는 정원이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정원의 도시는 단연 소주(蘇州)이다. 북경의 이화원과 견줄 만큼 아름다운 소주의 졸정원(拙政園)은 당나라 때 왕헌신이 벼슬에서 물러나 민간정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왕헌신은 비단 장사로 돈을 벌어 비단장수 왕서방의 원조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소주에 졸정원이 있다면 항주(杭州)에는 인문 예술의 호수 서호(西湖)가 있다. 백낙천, 소동파, 임포 등 수 많은 묵객들이 즐겨 찾았는데, 특히 소동파는 서호를 단지 호수가 아닌 중국 문학의 산실로 만든 대표적인 인물이다. 송나라 임포는 서호의 고산에 숨어서 오직 매화를 아내로, 학(鶴)을 자식으로 여기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불렸다. 서호는 춘추시대 월나라 미인 서시(西施)를 상징하는 의미로 ‘서자호)’라고도 불린다.

북경에는 환상의 정원 원명원(圓明園)이 있었다. 청나라 최전성기를 구가했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등 3명의 황제가 약100년에 걸쳐 자금성의 다섯 배 규모에 달하는 거대한 원림을 완성한 것이다. 빅토르위고는 “파르테논이 예술의 극치였다면, 원명원은 환상예술의 극치로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이 그곳에 있다.”라고 할 만큼 대단한 걸작이었다. 전체 면적의 35%는 호수로 조성되었고 크고 작은 정원을 비롯 편액이 걸린 건물만 800여 채가 있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규모의 원명원이었지만, 1860년 아편전쟁 때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약탈과 방화로 안타깝게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정원은 중국의 거대한 정원에 그 규모를 비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조형미를 갖추면서 그 속에는 자연의 우주적 기운과 인문적인 철학을 요소요소에 배치한 점 등은 한국적인 원림의 특징이다. 한국의 전통원림이면서 조선시대 민간정원의 대표로 꼽을 만한 것으로는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세연정, 월출산 자락의 백운동 원림, 예천의 초간정, 봉화 청암정, 영양 서석지 등이 있다.

담양 명옥헌

한여름 담양 명옥헌을 찾은 행락객들은 붉은 배롱나무 군락이 연못에 투영된 선경(仙境)에 도취하여 ‘아이야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어디인가. 나는 옌가 하노라’를 연발한다. 진도 운림산방 연지 또한 초가 산방을 품고 있는 첨찰산과 붉은 배롱 꽃이 연못에 담긴 절경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여 감탄을 금치 못한다. 나주 죽설헌은 조경 화가인 박태후씨가 40여 년간 일군 민간 원림으로 한국 전통 정원의 현재적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이란 반드시 숲과 연못의 조화로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나주 죽설헌

한 방울의 물, 한 그루의 나무는 도시를 숨 쉬게 한다. 이는 도시 정원의 절대 필요를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파트건설 등 도시개발이라는 미명으로 도시의 숲과 호수, 미래의 유산들이 무참하게 망가지고 있다. 행정 당국은 더 이상 회색 도시로의 난개발(?)은 중지하고, 나무 한 그루를 더 심고 호수와 정원 하나를 더 조성하는 푸른 환경 도시정책을 절대 과제로 삼기를 호소한다. 이것만이 시민들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미래의 도시 설계이기 때문이다.

조상열 발행인  ddmh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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