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거사지 오층석탑 전경

광주공원 안에는 고려 전기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석탑이 우뚝 서 있다. 거북 머리와 같이 돌출된 지형 위에 높이 7m의 석탑이다.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을 올린 모습으로 아주 오랫동안 서 오층 석탑으로 부르다가 (전)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이라 명칭을 바꿨다. 이곳의 옛 지명은 성거산이었고 성거 사라는 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같이 세운 석탑은 수 천년이 흘러 지금까지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보물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석탑은 시대별로 조성 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탑의 구조와 부재를 보고 언제 지어졌는지를 판단한다. 삼국시대에는 절이 주로 평지에 세워지고 국가적인 건축물로 세워지다 보니 웅장하게 지어지다가 통일 신라 이후 지방의 호족들이 세우는 등 지방화되면서 산지의 좁은 터에 세워지고 규모가 작아졌다. 탑의 모습에서 고려 전기에 세웠을 거라는 추정의 근거를 찾아보았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의 기단은 2단의 기단과 우주석과 탱주석 그리고 면석 등의 부재가 별석으로 제작하고 조립하는 방식을 사용했으나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시대부터는 부재의 수를 줄여 기단을 1단으로 하고 우주석과 면석을 이 석탑의 모습과 같이 한 돌로 조성했다. 이 석탑은 1961년 해체 수리 과정에서 2층 탑신부 윗 층에서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파 놓은 구멍과 함께 원형의 모습 그대로 간직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사리장엄구는 처음에 맨 꼭대기 층에 있었다. 그러다 점점 내려오면서 고려시대에는 1층까지 내려온다. 그리고 탑신부의 첫 번째 층이 특이하게 2단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탑돌이 하면서 생긴 길

석탑이 세워진 이곳은 예전에는 산의 모양이 거북과 같아서 조상들은 이 거북이 광주의 정기를 안고 있다고 믿었다. 거북이 멀리 떠나 버린다면 광주의 발전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거북이 떠나지 못하도록 거북이 등에 해당하는 자리에 성거사를 세우고 목덜미 자리에 오층 석탑을 세웠다고 하는 전설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안내판에까지 기록된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많은 의문이 들었다. 목덜미에 탑을 세웠다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풍수지리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목덜미에 무거운 탑을 세우면 어떻게 숨을 쉴 수 있겠는가? 거북을 죽이려고 작정한 듯 보인다. 거북이 떠나지 않게 하려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물과 육지 생활이 가능한 거북을 위해 코앞의 광주천에 물고기를 많이 살게 하고, 나이 먹을수록 좋아하는 과일을 충분히 먹을 수 있게 성거산 일대에 과일나무를 곳곳에 심었다면 거북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탑을 부처의 거주지로 생각해 자신들이 사는 집의 형태로 탑을 만들었고, 그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도 목탑을 지을 때 집과 똑같은 모습으로 지어졌다. 중국은 황하의 입자가 고운 황토를 이용하여 벽돌을 만들어 전탑을 많이 만들고, 일본은 화산지형이라 검고 푸석푸석한 돌이 많아 석탑을 만들기 어려웠고, 대신 온난한 기후로 질 좋은 목재를 쉽게 구할 수 있어 목탑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품질 좋은 화강암이 풍부하여 석탑이 발달하였다. 우리 민족은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재료인 바위를 이용하여 고층 목조 탑과 같이 보이도록 목재 부재와 요소들을 섬세하게 재현했다. 강인한 체력과 세심함, 그리고 미적 감각을 발휘하여 타고난 손 재주로 바위를 마치 목재 다루듯이 표현해 낸 우리 민족의 탁월한 솜씨를 확인할 수 있다.

부처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탑이지만, 탑이 곳곳에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부처의 사리를 모셨다기보다 부처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바뀌게 된다. 탑돌이 등을 하면서 탑을 예배하는 것은 그런 생각 끝에 나온 것이다. 사리는 없지만, 대신 사리를 불탑에 모실 때 사용하는 공예품인 사리장엄구는 시대와 상관없이 탑 안에 넣어 두었는데 이것이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어 탑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탑돌이는 승려가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부처의 큰 뜻과 공덕을 노래하면 신도들이 그 뒤를 따라 등을 밝혀 들고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의식으로 시작하였지만, 시간과 인원의 제한 없이 개인의 소원을 비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탑에는 이처럼 천년의 세월 속에서,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달았으나 이전의 나쁜 버릇을 제거하기 위해 정진하던 스님들과 고통에 신음하는 일반 중생들의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기도가 첩첩이 쌓여 있는 곳이다.

탑돌이 과정에서 남긴 표시

들판엔 황금빛 물결이 출렁이고, 산에는 단풍으로 가득한 가을의 한 복판에서 나는 성거 사지 오층 석탑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상륜부는 없어졌지만 오랜 세월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된 이 석탑은, 옥개석의 처마선이 곡면으로 휘어져 올라가는 예술적인 모습과 각 층의 탑신이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 것을 바라보면서 백제 양식을 계승하지 않았나 생각해보았다.

탑을 잘 관리 해온 덕분에 이끼류가 보이지 않고 지의류는 약간 남아 있어 오래된 석탑의 느낌이 없는 것이 다소 아쉬웠지만 서 오층탑이라 새겨진 오래된 작은 비석이 다소 위안을 주었다. 석탑을 바라보고 있던 때였는데 중년의 한 남자가 탑을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의 사진처럼 나뭇가지로 표시를 남겨놓았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심각하고 엄숙했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21세기의 오늘날에도 탑돌이를 하는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고통의 바다에서 부처님의 가피를 간절히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천 년 이상을 우리와 함께 할 성거 사지 석탑이 우뚝 서 있다.

김귀백 기자  gasun6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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