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조 (재)광주비엔날레 사무처장

요즘 TV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매주 화요일 9시를 기다린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이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TV 앞에 앉는다. 혹시 대선판의 흐름을 보기 위해 ‘9시 뉴스를 보느냐?’ 물으실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 다. JTBC 경연 프로그램 ‘풍류대장’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이때만큼은 리모컨도 내 차지다. 음향도 평소보다 몇 단계 더 올려놓는다.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다. 온전히 나만이 즐기고 싶다. 근래에 보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만족도가 높다.

여기에 내가 사로잡힌 이유는 이렇다. 어느 날인가, 방송 뉴스가 더 볼 것이 없다 싶어 채널을 이리저리 굴리던 중 우연히 들어간 방송 화면에서 눈과 귀가 멈춰 섰다.

“이산으로 가면 쑥국 쑥국 저산으로 가면 쑥쑥국 쑥국…쑥쑥국 쑥국…”

우리 민요 ‘새타령’인데, 무슨 노래가 저리도 빠르고 반복적인 리듬으로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지, 절로 흥이 돋고 자연스레 따라 부를 정도였다.

분명 판소리를 하는데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거나, 쪽진머리를 단정히 하거나 하는 그런 옛 소리꾼의 무대가 아니었다. 흡사 락그룹의 공연처럼 화려한 조명과 사운드, 현대적인 리듬과 고음을 버무려 보는 사람의 눈과 귀에 쏙쏙 박히는 감흥이 솟았다. 코로나19에 지쳐 철근같이 굳었던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흔들어서 버들가지처럼 낭창낭창 풀어 버렸다고나 할까.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국악그룹 억스(AUX)의 보컬 서진실이었다. 소리꾼 서진실은 우리 고장 출신인데다 요즘 대세 송가인의 국악 절친이라니 믿고 듣는 보증수표인 셈. 분명 남도소리를 익혔을 터인데 이를 현대적인 감성에 맞게 해석하고 편곡하여 대중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노래 솜씨에 ‘얼씨구!’ 추임새가 절로 나왔다.

어디 그뿐인가. 이 경연에 나온 소리꾼 고영렬과 김준수, 김주리, 심예은 등 두각을 나타낸 가수가 죄다 남도 출신이란 사실에 “그러면 그렇지!” 하는 탄성이 바로 나왔다. ‘남도소리가 현대의 대중음악으로 되살아나는 구나’ 하는 자부심도 가질 만했다. 이 정도로 이들의 노래와 연주에 푹 빠져 버렸으니 ‘찐팬’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더해 최고의 명가수 송가인까지 심사위원석에 떡하니 앉아 국악가요의 재미와 멋을 조목조목 짚어주고 기를 살려주니 그 즐거움은 한층 커졌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에는 광주의 소리꾼 김산옥이 국내 최초의 퓨전 국악 서바이벌 오디션 MBN ‘K-소리로 싹 가능, 조선판스타’에 나가 최종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공연장에서 현장감을 느낄 수 없고 비록 방송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모두에게 감동을 나누고 행복을 주는 전통문화의 힘과 여운을 다시 느끼게 된다. 특히 이는 젊은 세대의 예술가들이 우리 전통음악의 장기를 오늘의 대중 앞에 끄집어내 관객 속에 파고들며 그들의 호응을 이끌어내 지금의 감성에 맞는 새로운 놀이판을 만들어 가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경연 무대에 나온 출연자들은 울면서 말한다. “누구를 위한 국악인가?” 국악을 배우고 세상에 나오니 설 곳도, 찾아주는 곳도 별로 없더라는 것. 그래서 대중가수로 전향하여 보지만 그나마 무대에 오르는 기회도 바늘구멍 뚫기여서 포기할까도 고민했다고 한다. 그랬던 국악이 이렇게 각광을 받고 조명을 받게 되어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소감 또한 털어놓았다. 이런 사연마저 심금을 울린다.

그들은 판소리로 무대의 틀을 잡고 그 안에 트로트와 발라드, 록, 랩, 팝송, 국악기 연주, 정가, 창극 연기를 절묘하게 뒤섞어 ‘현대판 풍류’를 새롭게 창작해낸 것이다. 이것은 젊은 전통 예술가들의 생활고와 무명의 서러움, 고뇌의 일상 끝에 탄생한 결과일지라도 전통문화 예술의 진화임에 분명하다. 고통 없이 성장하는 문명은 없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창작은 더욱 어렵지 않겠는가.

심사위원들은 이들의 공연 작품에 하나같이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흔히 국악과 서양 음악이 크로스오버 형식으로 접속하여 더욱 새롭고 미래지향적 예술 장르로 확대 재생산되어 한국이 자랑하는 공연예술의 자산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뮤지션으로 떠오른 싸이나 BTS에 버금가는 월드 스타로 성장할 수 있음을 확신하며 호평을 아끼지 않는다. 100%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남도는 전통문화 유산의 보고이다. 요즘 각광 받는 국악 분야는 물론 수묵화와 천연염색, 목공예, 도예, 떡살, 나전칠기, 한지…. 대를 잇고 지켜 가야 할 문화적 자산과 가업이 널려있다. 국악이 현대의 감성에 융합하여 재탄생하는 것처럼 유·무형의 문화재를 가치 있는 자산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대동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대동전통문화대상’이 주목 받고 있다. 이 상은 전통문화·예술 분야에 오랫동안 매진해온 장인에게 시민들의 후원으로 수여하는 상이다. 문화유산·미술·공연 부문 등의 대상과 평생을 자기 분야에서 매진하며 전통을 지키는 장인에게 수여하는 한우물상,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킬 미래의 인재에게 수여하는 미래인재상을 수여한다. 순수 민간 차원의 노력으로 전통문화를 이어가려는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힘들어도 우리 세대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사회 각계의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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