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열 <대동문화>발행인

얼마 전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다. 지난 일 년여 치열한 대선전(大選戰)을 거쳐 승자와 패자로 갈라섰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은 없다고 했다. 여당과 야당이 하루 밤새에 입장이 바뀌고, 음지와 양지가 교차하게 되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이다. 역사는 이처럼 반복을 거듭하면서 인간들에게 두려움과 겸손을 가르치는 만고의 스승이자 진리이다.

이번 대선은 거대 양 진영의 최악의 사활을 건 전쟁이었다. 그만큼 후유증과 상흔(傷痕)이 매우 심각할 것으로 우려하는 국민이 많다. 권력을 장악한 승자를 ‘칼자루’를 잡았다고 한다. 칼자루란 말 속에는 칼을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처럼 휘두르겠다는 뜻이 은근하게 담겨 있다. 칼은 칼과 검으로 나뉘는데, 칼(刀)은 날이 한쪽에만 있는 물건으로 ‘베기’ 용도이고, 검(劍)은 날이 양쪽에 있는 물건으로 ‘찌르기’ 용도이다. 칼은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殺人劍)이 있고,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이 있다. 강도가 칼을 들면 살인검이고, 의사가 칼을 들면 활인검이 된다.

국민들이 국가의 지도자에게 승자의 칼을 쥐어 준 것은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한다거나, 검은 조직의 보스들이 쓰는 살인검이 아닌, 국민의 상흔을 치료하고 국가와 국민을 지켜 달라는 리더의 활인검을 준 것이다.

예전에 “정치는 식탁이다. 재상(宰相)은 음식 요리를 총 관장하는 관리다.”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백성에게 먹고 사는 것을 공평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내용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먹거리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하여 하늘에 제사 지내고 음식을 나눠 먹을 때 가장 공평하게 나눠야 하는 직책이 천관총재(天官冢宰)였고, 여기서 살림을 맡아 다스리는 사람을 재상이라 했던 것이다. 속된 말로 군대에서 “배식 분배에 실패한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 힘든 것은 참아도 배고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음식을 요리하고 나눌 때 가장 중요한 도구가 칼과 도마다. 칼과 도마가 협업을 할 때 최상의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때 칼이 갑이고 도마는 을로 취급되는 일 따위는 없다. 손뼉도 서로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요리사가 아무리 좋은 칼을 가졌더라도 좋은 도마가 없다면 요리사의 음식 솜씨를 발휘하기란 힘들다.

빛은 어둠을 만나야만 비로소 진정한 빛을 발하는 것이니, 그 차이 때문에 둘 다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정치도 여야간 상호협력이 없이는 결코 좋은 정치를 이뤄낼 수 없다.

지도자는 ‘리더’와 ‘보스’로 구분할 수 있다. 보스는 강한 힘으로 조직을 장악하지만, 공익보다는 사익에 민감하고 지성이 결여된 집단의 두목과 다르지 않다. 이에 비해 리더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조직의 미래를 생각하며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원칙으로 하는 지도자이다. 눈앞의 이해에만 급급하다면 리더의 자질이 없는 두목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지도자의 조건으로 중요한 것은 조직을 위해 분골쇄신 일 잘하는 능력이다. 별 탈 없이 착실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지도자는 무능한 것이고, 조직을 해롭게 하는 죄악이다.

세종대왕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최고 경영자였다. 세종은 개인적 허물보다는 능력과 장점을 보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했다. 관노 출신 장영실과 범죄자(?) 황희를 특채한 것이 좋은 예이다.

황희는 세종이 대군 시절에 세자로 책봉되는 것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기, 공문서 위조, 유부녀 간통죄 등 많은 허물을 지닌 자였다. 하지만 탁월한 지식과 넉넉한 성품으로 소통의 달인이었고, 다방면에 출중한 능력을 지닌 인재이기도 했다. 무결점에 유능력의 인재가 최선이겠지만, 그런 사람은 현실적으로 찾기가 어렵다. 그런 탓에 세종은 능력과 장점을 가진 자를 특채했던 것이다. 리더가 무엇을 중용하게 여겨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중국에 대표적인 강으로 황하(黃河)와 양자강(揚子江)이 있다. 똑같이 서출동류(西出同流)하는 강이지만 하나는 ‘하’라 하고, 하나는 ‘강’이라 칭한다. 한자 어원에서 하(河)는 물줄기가 굽은 강을 뜻하고, 강(江)은 곧고 반듯한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하’는 곡강(曲江)이고, ‘강’은 직강(直江)을 뜻하는 것이다. 양자강은 비교적 굴곡이 심하지 않은 곡강이지만, 황하는 뱀처럼 구불구불 굴곡이 심한 곡강이라는 말이다. 예전에는 정승판서가 마음이 곧고 공심(公心)이 많으면 양자강 같다고 했고, 사심곡절(私心曲折)이 많고 마음이 탁하면 황하 같다고 했다.

한국 사회는 치유되기 힘든 극심한 병통을 앓고 있다. 동서의 지역적 갈등,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갈등, 빈과 부의 사회적 갈등 등 망국적 병통이 위험 수준이다. 나라와 공익보다는 사리사욕을 위해 온갖 권모술수와 갈라치기로 갈등을 조장하고, 여기에 편승해 이득을 챙기려는 세력들이 가장 큰 병통의 원인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선진국으로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잘 사는 나라가 틀림없다. 국민 의식 수준 또한 높고 장점도 많지만, 정치적 역량이 그를 따르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국민화합을 외치는 차기 정부가 5년 임기 동안 고질적인 한국사회의 병통을 얼마나 고쳐 낼 것인가 기대와 희망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사회는 갈수록 조화를 절실히 요구한다. 진보와 보수, 칼과 도마, 빛과 어둠은 서로 반목의 대상이 아닌 공존과 상생의 반려이다. 서로 배려하고 협업하는 것이 살길임을 모두가 자각해야 할 때이다. 파란 속에 한국 최고의 지도자가 된 윤석열 정부가 황하 같은 보스가 아닌, 양자강 같은 리더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승자의 땅에는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패자의 땅에 불어올 엄혹한 칼바람은 벌써부터 몸을 움츠리게 한다. 세상 이목은 승자의 포용과 지도력을 예의주시하며 동토(凍土)에 움틀 파란 싹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조상열 발행인  ddmh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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