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이 만발한 무양서원 전경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 510에는 시 문화재 자료 제3호로 지정된 무양서원이 있다. 무양은 무진 지양(武珍之陽)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의 ‘무’(武)와 볕을 뜻하는 양(陽)을 더해 ‘무진의 볕’ 즉 광주의 볕이라는 뜻으로 지어졌다. 이곳은 탐진 최 씨 문중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 1927년에 세운 서원이며, 고려 인종 때의 어의(御醫)였던 장경공 최사전을 중심으로 손암 최윤덕, 금남 최부, 문절공 류희춘, 충열공 나덕현 등 다섯 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건물은 강당인 이택당(以澤堂) 좌우에 합의문과 합인문이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동재인 성지재(成之齋)가 있고, 왼쪽에는 서재인 낙호재(樂呼齋)가 있다. 그 위에 내삼문인 삼오문(三五門)을 지나 사당인 무양사(武揚社)가 있다.

탐진(전남 강진)최씨 시조(始祖)인 최사전(崔思全)은 고려시대의 어의(御醫)를 지냈으며, 이자겸의 난 때 척준경을 설복하여 자겸을 제거하게 한 공로로 병부상서에 추충위 사공신이 되었다. 후에 문하시랑 평장사에 이르렀고, 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고려 왕조의 배향공신 중 유일한 의관(醫官) 출신이다. 손암 최윤덕은 고려가 망하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은거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자 광산으로 유배되었다. 조선시대 문신으로 홍문관 부교리 등 여러 관직을 거쳐 동국통감 편찬에 참여한 금남 최부는 1487년 죄를 지은 자들이 제주로 달아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잡으러 제주에 갔다가 이듬해 부친상을 당해 돌아오던 중 풍랑으로 중국 저장성 닝보부에 표류했다. 반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왕명을 받고 표해록(漂海錄)을 썼으며, 수차의 제작과 이용법을 배워와 후일 충청도 지방의 가뭄 때 큰 도움을 주었다

미암(眉庵) 유희춘과 충렬공 나덕헌은 금남 최부의 외손자들이다. 홍문관 수찬을 지낸 미암은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이라 여겨지는 미암일기(眉巖日記)를 남겼다. 미암일기는 미암 유희춘(1513~1577)이 19년간의 유배에서 풀려난 선조 1년(1567)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선조 10년(1577)까지 11년에 걸친 기록이다. 조선 시대 개인 일기 중 가장 방대하고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선조실록을 편찬할 때 이이의 경연 일기와 함께 기본 사료가 됐다. 집안과 조정의 대소사를 적은 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800여 명이나 되고, 집을 나간 종을 비롯해 기대승 송순 이황 허준 정철 등 미암과 교유했던 인사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덕헌은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운 인물이다.

강당으로 사용하는 이택당 전경

서원(書院)은 성균관, 향교와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 유교의 성현(聖賢)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이다. 서원에서 교육의 목표는 인품이 훌륭한 성현을 본받고 그러한 관리를 양성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학문의 진정한 의미는 인생과 우주의 본질을 추구하고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지방의 인재들이 모이는 집회소였으며, 다양한 도서(圖書)를 보관하는 도서관 기능과 책의 출판 기능을 담당했다. 그 지역의 여론을 선도하고 각 지방별 향약을 기준으로 효자나 열녀를 표창하고,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을 성토하는 등 직접적인 교화 활동을 하였다.

흥선대원군이 대대적으로 서원을 철폐하던 고종 5년, 당시 난립해 있는 서원이 1,000곳이 넘었다. 고종은 영의정인 김병학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원이 온통 백성을 괴롭히니 이것이 무슨 행각인가. 집집마다 서원을 만들고 한 사람을 대여섯 곳에서 모시는 이유가 무엇이냐 제현(諸賢)을 존중한다면서 자기 가문 조상을 모시는 게 서원이더냐 산 사람을 모시는 사당은 또 무엇이냐” 이러한 고종의 질문 안에 그 무렵 서원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서원에 부속된 토지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고 서원의 노비는 국역(國役)을 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 재정을 약화시키고, 성현(聖賢)을 모신다는 이유로 농민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이나 제사 비용 징수 등의 과도한 수탈을 일삼았으며,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서원으로 끌고 가 사사로이 처벌하였다. 서원은 대부분 문중(門中)에 의해 건립되었던 까닭에 자신의 문중과 직, 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배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무양사 사당 - 정면에 판문을 설치하는 이유는 내부를 어둡게 하여 조상의 영혼이 편히 쉬게 하려는 것이다

문화재 자료의 지정권자는 시, 도지사이며, 시, 도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향토문화 보존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문화재자료로 지정할 수 있다. 문화재자료의 지정 및 해제 절차, 관리, 보호, 육성, 공개 등에 필요한 사항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한다. 2019년 7월 6일 한국의 서원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과거 시험 준비기관에 그치는 중국의 서원과 다르게 지역 성현들을 배향하고, 지역문화의 거점을 담당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유교 문화를 꽃피우고, 선비정신을 함양하였으며,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향촌 방어를 목적으로 한 의병 활동이 활발하였고, 의병을 일으키기 위한 사림의 발의와 조직의 편성에 서원이 그 거점으로서의 구실을 다하였다.

탐진 최 씨 문중은 일제 강점기 시절에 무양서원을 세웠다. 비교적 늦게 출발했지만, 1945년 광산구 쌍암동에 무량 중학교(현 비아중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에 공헌을 하였다. 오늘날에도 무양서원에서는 광산구청 주관으로 각종 문화재 활용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려시대 어의 최사전과 표해록의 저자 최부를 주제로 다양하고 재미있는 체험 활동이 수시로 펼쳐지고 있는데, 어의 수련활동, 약첩 싸기, 약차 만들기, 약 도구 체험, 어의 의복을 입고 기념촬영, 최부의 바닷길 그리로 기록, 최부가 풍랑을 만난 여정을 그린 표해록 목판화 체험을 한다. 천연 염색 프로그램 및 선비 체험 등 다른 곳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것이 펼쳐진다.

광산 구청 주관 하에 다양한 문화재 활용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명문가(名門家)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가 높고 학식과 덕망을 갖춘 훌륭한 집안’이라고 나와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체로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데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명문가는 학식과 덕망을 갖춘 인물을 많이 배출한 집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어떤 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는가가 핵심이다. 탐진 최 씨는 전국 최 씨의 3.1%밖에 되지 않은 세력이 약한 문중이다. 서원의 설립도 일제 강점기에야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세우고, 각종 문화재 활용사업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인 무양서원과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무양서원은 인근에 20여 개의 학교가 가까이 있고, 무양공원과 연접하여 있어 학생과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하여 각종 문화재 활용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져 시민과 학생들의 정서 함양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2021년 문화재청 향교, 서원 문화재 활용사업 우수사업에 선정되었다. 장판각이나 고직사 등 서원의 부속 건물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하루속히 복원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확대해 나간다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김귀백 기자  gasun6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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