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동 정려비각 전경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은 문화재의 보물 창고이다. 이곳에는 명승으로 지정된 환벽당을 비롯하여 나무의 나이가 400년이 넘는 왕버들이 있는데 천연기념물이다. 그리고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의 도자기 가마터이던 충효동 요지에서는 분청사기, 백자 등이 발견되었고,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또 의병장 김덕령의 생가가 여기에 있고 그와 관련된 취가정과 정려비각이 있다. 충효동과 아주 가까운 곳에 담양의 가사문학관과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이 함께 한다. 그리하여 평일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찾는 곳이다.

충효동에 있는 문화재 중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많이 가는 곳은 충효동 정려비각이다. 1985년 2월 25일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그의 부인 흥양 이씨, 그리고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김덕령의 형 김덕홍과 효성이 지극했던 김덕령의 아우 김덕보를 기리는 비(碑)가 있다. 이 비(碑)는 1789년 (정조 14년)에 세워졌으며, 높이는 220cm이다. 그곳에는 김덕령 일가의 애국 충절에 대한 찬양과 정조 임금이 충효리라 이름을 지어준 유래가 쓰여 있다. 비(碑)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비각(碑閣)은 1792년에 세워졌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봄에 산불이 나니 못다 핀 꽃들 다 불붙는다. 저 산의 저 불은 끌 물이 있지만 이 몸에는 아무 이유 없이 불이 나는데 끌 물이 없구나” 의병장 김덕령이 죽기 전에 지은 “춘산곡” 이란 시(詩)다. 미증유의 전란이 일어나 조선 천지는 왜군의 말발굽 아래 짓밟혀 방방곡곡에서 통곡과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치 큰 산에 대형 산불이 일어나 잿더미를 만들어 가는 것 같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와중에서 희생되었다. 침략의 징후가 노골적으로 있었음에도 대비하지 않았고, 당파 싸움에 도끼 자루 썩어가는 줄 몰랐던 위정자들의 무능으로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였던 것이다. 전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음의 공포안에 몰아넣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 되어 활동한 김덕령은 반란을 일으킨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무고로 체포되어 20일 동안 여섯 차례의 혹독한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그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죽음이,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백성들과 다르다고 시(詩)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엄청난 고문을 당하는 와중에 어느 누구도 그를 변호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그를 더욱 아프게 했을 것이다.

김덕령의 부인 흥양이씨는 정유재란 때 왜군에게 쫓기다 담양 추월산 보리암 근처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맞았다. 효성이 뛰어났던 김덕보는 형이 억울하게 죽자 무등산 계곡 깊숙이 들어가 세상과 담을 쌓고 은둔하며 살았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를 장악하려는 왜군의 진격을 멈추게 함으로써 조선의 패배로 기우는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역사의 평가를 받은 금산전투에서 의병장 고경명이 이끄는 호남 연합 의병의 일원으로 참가한 김덕홍은 6000명의 의병이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다 모두 순절한 싸움에서 끝까지 함께 했다.

김덕령 일가는 이몽학의 반란에 연루되어 60년을 역적의 자손으로 살았다. 그의 자손들은 이름을 숨기고 온갖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다 1661년 현종 때 복권되고, 숙종 시기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특히 정조는 그의 사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1785년 “충장”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그가 태어난 마을 이름을 충효리라고 정조가 직접 지어 내렸다. 김덕령의 묘는 역적죄가 있었기에 문중의 무덤이 있는 곳에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1965년이 되어서야 광산김씨 문중에서 이장(移葬)을 하게 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마땅히 썩었어야 할 시신과 의복이 썩지 않고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1596년에 사망했으니 무려 370여 년 동안 시체가 썩지 않고 보관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지금도 유물관에 김덕령의 의복이 전시되어 있는데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고문(拷問)의 사전적 의미는 “숨기고 있는 사실을 강제로 알아내기 위하여 육체적 고통을 주어 신문함”이라고 나와 있다. 따라서 폭행의 목적이 정보를 알아내려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는 고문에 해당되지 않으며, 이 경우는 가혹행위에 해당한다. 김덕령은 20일 동안 무려 여섯 차례의 가혹행위를 당하였다. 한 번의 고문이 끝나면 일정 기간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것이 상식인데, 그는 아예 죽일 작정하고 가혹행위를 당하여 옥중에서 사망하고 만 것이다. 국가에 변란이 일어나 의병을 조직하여 나라에 충성한 것뿐인 장수에게 혹독한 고문을 하고 역적의 굴레를 씌워 죽게 만든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선조수정실록”에 김덕령이 옥에서 고문받다가 죽으니 남도의 군민들이 원통하게 여겼다고 나와있다.

충효동 정려비각은 이처럼 김덕령 일가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 두 세대가 흐른 뒤 복권이 되고 벼슬이 내려져 그의 집안의 명예가 회복되어 다행이지만 덕령이 당한 억울한 누명과, 자신의 몸에 불이 났지만 끌 물이 없는 그 끝없는 절망, 그리고 모진 고문이 내 가슴에 멍울처럼 남아 있다.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밖에 있지 않고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나라 안에 억울한 사람이 늘어 갈수록, 절망하는 사람이나 가혹행위를 당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결과는 뻔한 것이다. 우리는 임진왜란 이후 일제강점기와 오랜 군사 독재를 거치면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억울함을 만들어 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이 났지만 끌 물이 없는 절망 속에서 생을 마감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다. 덕령을 억울하게 죽게 했던 임금과 신하는 땅 위에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행위가 영원히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충효동 정려비각 안에 누군가가 꽃다발을 가져다 놓았다. 시간이 지나 말라 버렸지만 내 가슴에는 진한 감동이 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질수록 나라가 어려울 때 헌신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 확신한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관광객이 많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바로 앞에 있는 수 백 년 된 왕버들만 보지 마시고, 뒤 편의 충장공의 생가와 취가정을 한 번쯤 둘러보기를 권한다.

김귀백  gasun61.@.naver.com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