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에 있는 수령 350년의 이팝나무

“쌀 한 톨 나지 않는 서해 어느 섬마을엔 늙은 이팝나무가 한 그루 있지요/ 오백여 년 전 쌀밥에 한이 맺힌 이 마을 조상들이 심었다는 나무입니다/ 평생 입으로는 먹기 힘드니 눈으로라도 양껏 대신하라는 조상들의 유산인 셈이지요/ 대대로 얼마나 많은 후손들이 이 나무 밑에서 침을 꼴딱거리며 주린 배를 달랬겠습니까/ 해마다 오월 중순이면 이 마을 한복판엔 어김없이 거대한 쌀밥 한 그릇이 고봉으로 차려집니다/ 멀리서 보면 흰 뭉게구름 같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수천 그릇의 쌀밥이 주렁주렁 열려 있으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지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냄새가 사방팔방 퍼질 때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풍어제를 지냅니다/ 이쯤이면 온갖 새들은 물론이고 동네 개나 닭들 하다못해 개미 같은 미물마저도 떨어진 밥풀을 주워 먹으러 모여드니 이 얼마나 풍요로운 자연의 한 마당 큰 잔치입니까/ 대낮이면 흰 그늘을 드리워 더위를 식혀주고 밤이면 환하게 불을 밝혀 뱃사람들의 등대 구실까지도 한다니 이만하면 조상들의 음덕치고는 참 미덥고 보배로운 것이 아닐는지요.”

​김선태 시인의 시 ‘그 섬의 이팝나무’ 전문. <살구꽃이 돌아왔다> (창비, 2009)

​멀리서 보면 흰 뭉게구름 같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수천 그릇의 쌀밥이 주렁주렁 열려있습니다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과도 같은 5월입니다. 막 돋아난 연두색 이파리들이 아기 손처럼 보드랍고 풋풋한 신록의 계절입니다.

한바탕 울긋불긋 꽃 대궐을 이루었던 봄꽃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동네 공원이며 길가를 하얗게 하얗게 장식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동네 공원이며 길가를 하얗게 하얗게 장식하는 이팝나무

깊어가는 봄, 하얀 꽃송이가 온 나무를 뒤덮고 있는 모습이 마치 밥그릇에 소복이 쌓인 하얀 쌀밥과 같다 하여 ‘이밥나무’라 하기도 하고 여름이 시작되는 절기인 '입하’ 무렵에 꽃이 피어 ‘입하목 (立夏木)’이라 불리기도 했다는 ‘이팝나무’입니다.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교목인 이팝나무에 꽃이 많이 피면 그해 풍년이 든다는 속설을 품고 있는 상서로운 나무입니다. 올 가을에는 풍년이 들어 모두들 배부르고 등 따스하게 지내게 되길 기원합니다.

하얀 꽃송이가 온 나무를 뒤덮고 있다

김선태(1960~) 시인은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났다.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산벚꽃’ ‘갈대의 시’ ‘조금새끼’ ‘단짝’ 등이 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생명의 글판에 그의 시 ‘단짝’이 게시되어 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생명의 글판에 김선태 시인의 시 ‘단짝’이 게시되어 있다 ⓒ교보생명

임영열 기자  youngim1473@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