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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니벌에 대한 한 가지 오해백승현의 문화산책
백승현 기자 | 승인 2024.04.12 17:02
백승현 전문위원

기재 신광한(1484~1555)이라는 선비의 이야기다. 어느 날 심부름하는 아이가 와서 “어떤 벌레가 다른 벌레를 한 마리 물어와서 집에다 넣어놓고는 웅웅 소리를 내며 날개를 비벼댔습니다.” 하고 보고했다.

신광한은 “그것은 바로 나나니벌이고 그가 물어온 벌레는 배추벌레란다. 나나니벌은 다른 벌레를 자기와 유사하게 변화시킬 줄 아는 벌레이지.” 이렇게 답했다. 심부름하는 아이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도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물었다. 신광한은 “사람도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는 “단 한 사람 공자만이 자기 자식이 아닌 안회를 현자로 변화시켰다.”고 대답했다.

프랑스의 곤충학자인 장 앙리 파브르(1823~1915)는 <곤충기>를 남겼는데, 여기에도 나나니벌 이야기가 등장한다. 쇠똥구리를 40년 동안이나 관찰한 기록을 책으로 펴냈으니, 그의 끈기와 도전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파브르의 곤충기는 동화처럼 씌어 있다.

나나니벌은 다른 벌보다는 훨씬 기다랗다. 허리가 마치 실처럼 가늘어서 헬리콥터의 뒷날개 부리를 닮았다. 나방 애벌레를 움켜잡고 이 실처럼 가는 허리를 이용해 애벌레의 몸에 마취 침을 찌른다. 애벌레를 물고 미리 파둔 굴로 돌아와 땅에 묻고는 애벌레 옆구리에 자기가 낳은 알을 붙인다. 나중에 나나니벌 알이 부화하여 신선한 나방 애벌레를 먹고 자라난다.

조선 선비 신광한의 오해는 그가 신봉하는 유교 경전인 <시경>에 등장하는 나나니벌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자기 생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생겨났다. <시경>에는 “나나니벌은 땅벌이다. 벌과 닮았지만 허리가 가늘다. 뽕나무벌레를 잡아 나무 구멍에 업어다 놓는데 7일이 지나면 뽕나무벌레가 변하여 나나니벌의 새끼가 된다.” <시경> 이후 나나니벌은 무슨 벌레든지 잡아다 놓고 정성을 다해 키운 다음 자기를 닮은 나나니벌로 변화시키는 곤충으로 여겨져 왔다. 오해가 오래 이어졌다.

나나니벌의 생태를 간파한 성호 이익(1681~1763)이라는 선비는 이런 나나니벌에 대한 생각이 오래된 오류라고 하고 “나나니벌이 다른 벌레를 자식 삼아 키우면서 ‘나를 닮기를’ 하고 기원한다는 말은 근거 없는 소리다.”라고 결론을 맺었다.

나나니벌 이야기의 핵심은 나나니벌의 생태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느냐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무엇으로 가능한가? 예(철학)와 악(예술)으로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교화하여 인을 실현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는가? 아니면 정치적 변화로 사회를 바꾸어 변화시킬 수 있는가?

유대인들은 세계 정치와 경제계에서 가장 탁월한 성과를 낳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문단, 영화계, 음악계, 대중 연예계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스타들을 배출했고, 유대인의 역사, 철학, 문화와 예술을 세계화하고 있다.

아서 밀러, 레너드 번스타인, 밥 딜런, 빌리 조엘, 사이먼&가펑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올리비아 뉴튼 존 등이 대중예술에 젬병인 내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20세기폭스 등의 영화사 주인이 유대인들이다. 피터 포크, 율 브리너, 폴 뉴먼, 더스틴 호프만, 해리슨 포드 등이 스타배우들이다.

노벨 물리학상, 평화상, 화학상, 문학상 등에서 유대인들의 수상 기록은 압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생각은 <탈무드>의 ‘사람이 한 방향으로만 향하면 세계는 기울어지고 말 것이다.’는 말에 잘 표현돼 있다. 모두가 한쪽으로 가면 다 같이 망한다. 그러니 다른 생각을 해보자. 기꺼이 혼자서 다른 편에 서서 창의적 생각을 지속적으로 삶에 투자해보자.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것은 지옥이다. 이런 생각의 힘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위한 공부, 남들과 경쟁을 해서 의사, 변호사, 검사, 대기업 중역이 되라고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고정관념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자기가 가진 개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예술과 인성 교육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탈무드>는 가르치고 있다.

마마보이 푸루스트는 이런 어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위대한 소설을 썼다. 어린 시절 여자애처럼 옷을 가지고 놀던 캘빈 클라인을 부모가 꾸중했다면, 지금의 월드 패션 브랜드 캘빈 클라인은 없었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들과 보통의 과학자들을 비교한 결과, 노벨상 수상자가 보통 과학자보다 음악가가 될 가능성이 4배, 소설가나 시인이 될 가능성이 25배나 높다는 사실은 예술과 문화에 창의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반증한다.

예술과 문화가 융성할 때 사회의 전반적인 생산성과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그리고 이 생산성의 혜택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누린다. 지금 당장 그 성과가 나지 않으면 예술 문화 정책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그런 국가는 문화국가가 아니다. 문화도시가 아니다. 위대한 문화 예술가가 배출되지도 않는다. 시민들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예술과 문화는 모든 학문의 기반이 되고, 모든 사업과 경제의 중심이 된다. 이것은 유대인들처럼 사고의 깊이를 더하고 철학을 만들며 사상을 만든다. 그리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창의의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나나니벌은 문화와 예술을 모른다. 배추벌레를 나나니벌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문화와 예술의 힘을 믿는 지역 공동체만이 위대한 예술가를 배출시킬 수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에너지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재미와 감동과 유익한 교훈으로 미래 우리 삶의 다양한 방식에 대해 묻고, 그 물음에 행복한 대답을 해주는 예술가들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백승현 기자  porum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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