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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 무등등... 무등산 아래 첫 번째 절무등산행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광주 문빈정사’
임영열 기자 | 승인 2024.05.17 17:58

문빈정사의 대웅전.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에 석등과 5층 석탑이 있다. 한국 사찰 최초로 설치된 연꽃 계단은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부처님의 진리를 만나 마음의 평화를 얻고 인권과 정의가 흐르는 정토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 제작에는 지역 작가들과 문빈정사의 스님과 신도들이 참여했다

우리나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그 지역을 상징하고 시민들이 수호신처럼 믿고 의지하는 ‘진산(珍山)’은 있기 마련이지만 무등산(無等山)만큼 광주 시민들의 혼과 정신이 오롯이 깃들어 있는 산은 드물 것이다.

광주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인 무등산은 그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통일신라 때 ‘무진악(武珍岳)’ 또는 ‘무악(武岳)’으로 불리다가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란 별칭과 함께 무등산이라 불렀다.

비할 데 없이 높아 등급을 매길 수 없으므로 모두가 평등하고 차별 또한 없다는 뜻의 ‘무등(無等)’은 불교 경전에 나오는 ‘무등등(無等等), 무유등등(無有等等)’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 무등산은 부처님이 상주하고 있는 산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주문이다. 앞면에 등지문(等持⾨)이란 현판이 있고 뒤쪽에 일주문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좌우 기둥에 ‘입차문내 막존지해(⼊此⾨內 莫存知解)’라는 주련이 걸려 있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 앎을 두지 말라”는 심오한 뜻이 담겨있다

별칭으로 무돌산·무당산·무덤산·무정산 등 여러 이름 갖고 있는 무등산에는 증심사, 원효사, 약사사, 규봉암 등 유서 깊은 천년고찰 들이 즐비하다. 이 사찰 들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 까지도 광주 불교를 이끄는 중심 도량 역할을 하고 있다.

절 ‘사(寺)’가 아니라 집 ‘사(舍)’ 자를 쓰는 절

2013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이래 무등산은 해마다 약 400만 명의 탐방객들이 방문한다. 무등산을 오르고 내릴 때 이들 중 약 8할 정도는 증심사 지구를 출발점으로 선택하게 되는데 이때 맨 처음 마주하게 되는 절이 있다.

이름만 들어서는 ‘절’인지 ‘사당’인지 ‘정자’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문빈정사(文彬精舍)’가 그곳이다. 보통의 절 이름은 3자인데 반해 이 절은 특이하게도 4자이면서도 ‘절 사(寺)’가 아니라 ‘집 사(舍)’ 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팔각정 모양의 종무소. 일로향각(⼀爐⾹閣)이라는 편액과 상락정(常樂停)이라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있다

예로부터 무등산 증심사 계곡은 ‘절골’ ‘무당골’ 등으로 불리며 수많은 불교 유산과 전설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증심사 아래는 약간의 논과 밭이 있었을 뿐 온갖 잡초가 우거져 거의 버려진 땅이었다. 계곡에서는 매일 무당들이 굿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척박한 땅을 사들인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한국동란 때 평양에서 외동딸과 함께 남으로 피난 내려왔다. 온갖 고생을 해가며 광주 금남로에서 사업을 해 큰돈을 벌었으나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을 잃고 혈육이 끊어지게 되자 불가에 귀의한 장문빈(張文彬 1893~ 1987) 보살이다.

백양사 석산 스님에게 ‘보리심(菩提心)’이라는 법명을 받은 장문빈 보살이 증심사 계곡의 땅을 사들인 것은 순전히 꿈 때문이었다. 어느 날 장 여사의 꿈속에 증심사 아래에 있는 초가집 한 채가 나타났다. 다가가서 방문을 열었더니 방안에 염주가 가득하였다.

나한전. 부처를 따르는 16명의 제자들을 16 나한이라 부르는데 이들을 모시고 있다

범종루. 1층에 범종이 있고 2층에 목어, 운판, 법고가 있다

꿈이 너무나 생생해서 다음 날 증심사 아래를 찾아갔더니 정말로 꿈에서 본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여사는 스님을 찾아가 꿈 얘기를 했다. 그러자 스님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곳에 절을 지으면 나라와 중생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스님의 말대로 장 여인은 자신의 전 재산을 아낌없이 털어 절을 짓고 절 이름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문빈정사(文彬精舍)’라 했다. 이렇게 해서 다소 생소한 이름을 가진 무등산 아래 첫 번째 절, 문빈정사가 탄생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59년 4월의 일이다.

민중의 삶 속으로 깊숙이 내려온 절

문빈정사는 18 교구 장성 백양사의 말사로 등록되었으며 올해로 창건 65주년이 된다. 역사적으로만 봤을 때 위에서 언급한 무등산의 천년 고찰들과는 비교 불가다. 하지만 문빈정사는 1980년대 불교정화운동과 민족민주운동의 산실이었다는 점에서 광주 시민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극락전. 극락세계의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모시는 납골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손가락이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의 영혼도 이곳에서 영면하고 있다

극락전 앞에 창건주 장문빈 보살과 법륜대화상의 부도비가 있다

문빈정사가 ‘민중의 사찰’로 뿌리를 내린 것은 80~90년대 불교계에서 민주화운동의 대부였던 학봉당 지선(1946~ )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이다. 1980년 지선 스님이 주지로 오게 되자 장문빈 보살은 대뜸 ‘나라와 중생을 위해 써 달라’며 사찰의 모든 재산을 보시했다.

창건주 장문빈 보살은 1974년부터 ‘문빈장학회’를 설립하여 장학사업과 포교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했다. 보살의 이름대로 ‘글이 빛난다’는 뜻의 ‘문빈(文彬)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1980년 5월 21일 부처님 오신 날. 이날은 광주 민중항쟁 기간 중에서 가장 잔혹한 날이었다. 도청 옥상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계엄군들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무고한 시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고 거리는 피로 물들었다.

창건주 장문빈(張文彬 1893~ 1987) 보살의 흉상

이 땅에 자비를 베풀러 부처님이 오신 날 계엄군들에게 자비는 없었다. 문빈정사의 스님들이 산문을 열고 거리로 나섰다. 부처님에게 바칠 떡과 밥을 수레에 싣고 시민군을 찾아가 음식을 나누며 광주 시민들과 아픔을 같이 했다.

이후 지선 스님은 1984년 “민족과 함께, 사회와 함께, 역사와 함께”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무등민족문화회’를 창립했다. 회보 <무등>을 발간하고 “갇혀 있는 틀을 깨고 열려있는 불교로 거듭나자...”라고 호소하며 민중의 삶 속으로 깊숙이 내려왔다.

백기완, 김지하, 문익환, 김근태, 홍남순, 고은, 문병란, 송기숙, 신용하 등 각계 재야인사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명실공히 무등민족문화회와 문빈정사는 민주화운동의 산실이 되었다.

절 입구에 ‘민족통일남장군’과 ‘생명평화여장군’의 장승이 버티고 서있다

1989년 지선 스님이 1946년생 동갑내기이며 한국민족문학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고(故) 김남주(1946~1994) 시인의 결혼식 주례를 서 준 것도 이곳 문빈정사였다. 그날 결혼식 사회는 고은 시인이 맡았다.

이렇듯 광주가 큰 일을 겪은 80년대 이후 이 땅의 거의 모든 민주 인사들은 문빈정사에서 광주와 무등의 정신, 민주‧인권‧평화와 평등을 설파했다. 지금도 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문빈정사를 찾아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대표, 안철수 의원 등도 문빈정사를 방문 한 바 있다. 주말이 되면 광주시민들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등산행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문빈정사 앞을 지나 무등산에 오른다.

2007년 27주년 5.18 기념식 다음 날 시민들과 함께 무등산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을 기념하는 ‘노무현 길’ 표지석이 문빈정사 앞에 세워졌다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두고 찾은 문빈정사가 오색연등으로 빛나고 있다. 종교를 떠나서 비록 역사는 짧고 규모는 작지만 ‘꾸밈과 바탕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문빈정사를 그냥 지나 치지 말고 한 번 둘러보길 강추한다. 

인권과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이 곧 정토세상이다. 문질빈빈(文質彬彬). 오색연등이 없다 할지라도 충분히 빛나는 절 '문빈정사'가 바로 그런 곳이다.

임영열 기자  youngim14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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