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 현재의 풍물굿에 근접한 모양새를 갖춘 것은 조선 후기다. 조선 전기인 16세기 초반에 출판된 성현의 <용재총화> 기록에 방매귀(方埋鬼)가 등장한다. 다시 100여 년 뒤인 17세기 중엽에 김육이 쓴 <송도지>를 보면 12월에 북을 치며 동네를 돌아다니며 쌀을 얻고 복을 빌어주는 대목이 나온다. 단지 정원 대보름이 아닌 12월 하순이라는 시기만 다를 뿐 오늘날의 걸립굿의 모습이다.

<용재총화>에서 150여 년이 흐른 뒤 풍물의 형체는 더욱 선명해진다. 1799년 이옥의 <봉성문여>를 보면 하반(花盤)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정초의 걸립 출현을 보여준다. 기록에 의하면 꽹과리 3인, 징 2인, 소고 7인이 종이꽃을 꽂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는데 쌀을 문밖에 내 놓아서 화반이라고 했다 한다. 또 쌀과 돈을 얻으러 다니는 것은 걸공(乞供)이라 불렀다. 매귀희는 매귀굿, 종이꽃은 고깔, 화반은 꽃반, 걸공은 오늘날의 대보름 걸립이다.

삼형제가 뭉쳐야 마을 굿판

63년 전 함평 월야면 용월리 하늘에도 밤이 찾아왔고 달이 걸렸다. 정득채 형제의 몸짓과 손짓에는 늘 가락이 함께 했다.

“아버님이 일본으로 진용가기 전에 우리 마을 상쇠였다여. 그것이 되었던가벼. 삼형제인디 큰형님이 열세 살 많고, 작은 형님이 열 살 더 많이 자셨어. 큰형님은 깽맹이(꽹과리) 쳤고 작은 형님은 장구 치셨제. 나는 뭐 할 것 없응께 깍때기 종이에다 눈 파고 코 파고 입 파고 종이탈을 쓰고 뛰고 놀아. 우리마을 굿 칠라믄 정득채 3형제가 아니믄 굿을 못친다 했어.”

탈을 쓰고 놀았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장단이 함께 떠오른다. ‘갱지갱 지지갱 깽 갱지지갱 객깨갱….’

그 시절 풍물판은 어땠을까? 박경리 선생의 『토지』엔 그 신명난 놀이의 판이 선명하게 기록돼 있다. 그 때 흥은 무너진 몸을 일으켜 세우는 위로였다.

<빠른 장단의 꽹과리 소리, 느린 장단의 둔중한 여음으로 울려 퍼지는 징소리는 타작마당과 거리가 먼 최참판댁 사랑에서는 흐느낌같이 슬프게 들려온다. 농부들은 지금 꽃 달린 고깔을 흔들면서 신명을 내고 괴롭고 한스러운 일상(日常)을 잊으며 굿놀이에 중하고 있을 것이다. 최참판댁에서 섭섭잖게 전곡(錢穀)이 나갔고, 풍년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실한 평작임엔 틀림이 없을 것인즉 모처럼 허리끈을 풀어놓고 쌀밥에 식구들은 배를 두드렸을 테니 하루의 근심은 잊을 만했을 것이다. 이날은 수수개비를 꺾어도 아이들은 매를 맞지 않는다. 여러 달만에 소증 풀었다고 느긋해하던 늙은이들은 뒷간 출입이 잦아진다.

한동안 타작마당에서는 굿놀이가 멎은 것 같더니 별안간 경풍 들린 것처럼 꽹과리가 악을 쓴다. 빠르게 드높게, 꽹과리를 따라 징소리도 빨라진다. 깨깽 깨애깽! 더어응응음- 장구와 북이 사이사이에 끼여서 들려온다. 신나는 타악 소리는 푸른 하늘을 빙글빙글 돌게 하고 단풍든 나무를 우쭐우쭐 춤추게 한다. 웃지 않아도 초생달 같은 눈의 서금돌이 앞장 서서 놀고 있을 것이다. 오십 고개를 바라보는 주름살을 잊고 이팔 청춘으로 돌아간 듯이, 몸은 늙었지만 가락에 겨워 굽이굽이 넘어가는 그 구성진 목청만은 늙지 않았으니까. 웃기고 울리는 천성의 광대기는 여전히 구경꾼들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리. 아직도 구슬픈 가락에 반하여 추파 던지는 과부가 있는지도 모른다.> (박경리 『토지』 중)

정득채, 그의 몸 속을 흐르는 흥은 내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방에 장구를 늘 두고 가락을 즐겼다. 아버지는 그를 유독 사랑했다. 늘 어린 자식을 앉혀놓고 가락을 들려줬다. 어렸지만 아버지가 내는 신묘한 그 소리들이 좋았다.

“아버지 물팍(무릎) 베고 누워 있으믄 좋아라 하셧어. 장구소리를 달고 댕겼제. 그 덕에 가락을 알았고, 깽맹이 가꼬 잘 놀았제.” 그가 눈을 감았다 뜬다. 떠난 아버지 생각에 눈이 그리움으로 젖는다.

그 시절 정득채는 하루종일 꽹과리를 가지고 놀아도 시간이 부족했다. 벽에 못 두 개를 박고 꽹과리를 걸어두었다. 하나는 댓님을 감고 징소리를 만들었다. 징과 꽹과리 소리로 곡을 타고 흥을 냈다. 막았다 텄다 하면서 가락이 흘렀다. 꽹과리의 경쾌한 신명은 타법과 막음질의 조화로 완성된다.

소리 가락은 빨랫줄에 앉은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처럼 들린다. 담 넘어 사람들이 몰려든다. “득채야∼, 뭔 오뉴월에도 굿친다냐!” 타박도 아니고 칭찬도 아니었지만 결국은 흥겨웠다. 그의 꽹과리 소리가 마을을 감싸면 하루 종일 사람들은 일이 고되지 않았다. 정득채는 그 맛에 음악을 알았고, 풍물과 일생을 함께 걷기로 했다.

정득채의 꽹과리 소리, 그 일생의 꿈

오늘은 탈을 만든다. 세월의 몫이 크다. 지금은 종이 탈 대신 목탈을 사용한다. 광산농악 16회 정기발표회 때 사용할 탈이다. 탈에 몰입하고 있지만 그의 표정이 밝지는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탈을 만들다 전기톱으로 발목을 다쳤다. 다쳤다는 일차원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다친 부위가 문제다. “병원 댕겨 왔응께 괜찮해. 근디 곰방 판이 벌릴 것인디, 그때까지 나을랑가 몰라.”

불편함을 안고 그가 매일 들리는 곳이 있다. 광산구 첨단에 있는 국악전수관이다. 그에겐 하루가 늘 아깝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시간을 잡아두고 싶은 마음이다. 몇 차례 뇌졸중으로 쓰러진 다음부터 더욱 그렇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어. 넘어지거나 교통사고가 나거나 병이 들어 죽는 일은 이제 무서운일이 아니여.” 정말 무서운 것은 따로 있다. 눈앞에 신명나는 판이 열렸는데 함께 덩실거리지 못하는 게 그는 늘 두렵다. 그래서 판이 열리는 주말이 그는 기다려진다. 즐기면서 나눠줄 수 있다는 일의 감사함을 그는 알고 베푸는 사람이다.

“목탈은 우리 지역에서만 쓰제. 21년 전에 만들었던 탈들이 다 쪼개지고 헐어서 다시 만들고 있어. 10년 된 오동나무로 만들어. 가볍고 몸이 덜컹거려도 괜찮아. 탈 만드는 게 보통일이 아니여, 제자들이 할라 하간디? 걍 내가 해불제. 매주마다 하루는 여그 문(광산구 첨단 국악전수관)을 열어놓고 단원들을 소집해. 와서 니들 하고 싶은 거, 배우고 싶은 거 실컷 배워라 해. 내가 아는 데까지는 갈차주제. 주말에는 시간이 없응께 탈은 평일에 맹글어 나야지 싶어서 했드만 몹쓸 것이 성가시게 하네.” 붕대로 감겨진 발목이 유난히 답답하다.

정득채, 그에겐 삶이 곧 굿판이었다. 그에게 배운 제자들도 늘 감사한 마음을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품고 있다.

제자 김양균(‘얼쑤’ 대표)은 말한다. “사실 80년대에 꽹과리를 치고 무대를 만들어냈던 것은 사람들을 결집시켜내고 사람들을 끌어내는 문화운동의 일환이었다. 정득채 선생의 가락을 만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김양균은 그의 쇳가락을 들으면서 생각의 변화를 느꼈다. 사람들을 엮어내고 감동시키는 것은 운동이라는 목표로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 가슴으로 파고드는 가락과 소리가 갖추는 그 순간, 진정한 문화운동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김양균은 스승의 꽹과리 소리에 반해 얼쑤를 만들고 그 길을 업으로 삼았다.

다른 제자들도 다르지 않다. 정득채의 꽹과리 소리는 제자들이 이전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였다. 무조건 격하게 쳐대는 소리가 아니었다. 꽹과리를 터치하는 그 순간, 소나기 같은 전가락을 쏟아지면서도 섬세한 울림을 함께 갖춘 소리였다. 한없이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얼마나 내공이 쌓이면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제자들에겐 일생의 꿈이 스승 정득채의 꽹과리 소리였다. 주소/ 광산구 수완동 장덕동 527 광산구 국악전수관

대동문화 77호 [2013 7,8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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