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품은 기업’의 첫 초대 손님은 ‘SRB미디어그룹’(회장 조덕선). 1990년 창간해 광주전남 지역민의 생활정보를 담아 온 ‘사랑방신문’이다. 중소서민들에게 생활정보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고유명사가 된 기업이다.

중흥동 700-5번지 SRB빌딩 사랑방신문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필자를 반긴 것은 ‘물, 공기 그리고 꿈 (Water, Air and Dream)’을 주제로 지난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은 서양화가 강운(姜雲)의 작품이었다. 「공기와 꿈」(Air and Dream, 캔버스 위에 한지, 227×182cm, 2013년)이다.

“작품을 지금 걸어 둔 벽(SRB빌딩 사랑방신문 1층 로비)에 걸어두면 오고 가는 사람들이 그림(「공기와 꿈」)을 보고 밝은 느낌과 상승하는 기운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상승기류를 타는 모습, 바다와도 같은 느낌,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을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 회장이 「공기와 꿈」 앞에서 느낀 첫 느낌도 이것이었다고 한다. 1층에서 만난 「공기와 꿈」은 작품 크기에 비해 공간을 그렇게 많이 요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감상자를 기 질리게 할 만큼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맑은 하늘을 보면 스스로 사람이 마음이 열리듯이 편안함을 준다. 정신적 청량감과 안정감을 주되, 바다와도 같은 역동적인 모습으로 걸어갈 수 있는 기개가 파도처럼 부서질 듯하다. 그리고 젊다.

주변을 수직의 질서로 제압하는 대개의 기업들과는 달리 사랑방신문이 수평적 질서 속에 발전을 추구하는 것과도 같이 사람과 하늘이 낮지도 높지도 않은 위치에서 하나를 이루는 이치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맑은 하늘의 청빛이 주는 상징성이 사랑방신문의 새로운 출발이 주는 의미와 동일시 효과를 내고 있다.

“그림에 관심이 없었을 때는 친구 집에 가도 그림 안 봐요. 대개다 술이나 한 잔 하자는 식이죠. 그런데 행사 때나 불우이웃돕기 기금 마련 등에서 소품이라도 사게 되고 나니까 친구 집에 가서도 그림이 보이게 되고, 좋은 그림이 있으면 그 그림 이야기를 한참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좋은 그림을 보게 되면 ‘야! 저 그림 욕심난다’ 이런 식으로 생각이 발전되더라고요.”

조 회장이 「공기와 꿈」을 만나게 되기까지는 어떤 성장 과정이 있었을까.

“저는 원래 그림을 좋아하기 전에 책을 좋아했습니다. 시나 시조를 보면 그것이 그림과 연결이 많이 되잖아요. 시를 보면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은 맛을 주는 작품이 많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림에 관한 책을 찾아 읽게 되었죠.”

40대 초반부터 시와 그림책과 그림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보는 심미안을 키웠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관심이 증폭되고 해외 나갈 때가 있으면 다른 곳보다는 미술관 한두 군데라도 들러오는 식으로 삶의 자세가 달라지더라고 전한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재미가 있어요. 그림에는 나름대로의 히스토리가 있잖아요. 그러면서 점점 그림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통한 삶의 완성

“느낌이 통하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완전히 색다른 느낌이 있거든요. 작품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변화되면서 느껴지는 감동이 있거든요.”

조 회장은 자신의 이런 변화를 통해 최근 광주지역 미술계의 변화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최근에 갤러리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반가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을 대중화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인구가 늘어난다면 예술의 저변도 넓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전에는 갤러리들이 위압적인 면도 없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일반주택가로도 들어오고, 벽이 많이 허물어졌다고 봐야죠. 점심 먹고 차 한 잔 마시면도 잠깐 들렀다 올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런 현상은 미술시장의 확대나 저변이 넓어진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은 개인에게나 사회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오늘 것일까. 좋은 그림을 보고 오면 그 그림이 자꾸 생각나고,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자신의 경험을 전하는 조 회장은 그 느낌을 ‘행복’이라는 단어로 압축해 말한다. 그림을 좋아해서 얻게 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행복의 순간이 꼭 비싼 그림에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싼 그림에서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다는 것도 강조한다.

이런 생각 때문일까. 강운의 「공기와 꿈」이 놓여 있는 바로 옆 벽면에는 ‘좋은 그림’에 대한 조 회장의 성향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색감이 좋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갖는 의미가 남다르잖아요.”

우리 지역 여성작가인 박유자의 작품 「사랑합니다 - spring, summer, fall, winter」( Acrylic, pen on canvas, 120×60(4), 2011년)에 대한 소감이다. 그의 말대로 ‘필(Feel)이 통하는 작품’이다.

해바라기가 갖고 있는 생명성과 빛을 향한 소통의 열매가 보여주는 알곡들의 환희가 보여주는 사계절을 끈질기게 추적해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화가가 박유자다. 박유자는 해바라기를 대표하는 노란색의 상징을 철저히 배제하고 꽃잎 하나 씨알 하나하나를 새기듯이 펜으로 그려낸다. 반면 화려함과 찬란함의 극치를 이루는 해바라기의 배경을 아주 단순한 색으로 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작품의 경쾌함과 주제의식을 강렬히 전달한다.

“회사를 찾을 때는 강운의 「공기와 꿈」을 보면서 꿈과 희망의 상승기운을 체감하도록 하고, 엘리베이터를 내릴 때는 박유자의 「사랑합니다 - spring, summer, fall, winter」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통해 우주 질서의 오묘한 진리와 완성을 경험하는 것처럼 사랑방신문을 방문하는 손님의 삶에도 행복의 완성, 삶의 안녕과 풍요가 가득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그림은 화가에서 첫 번째 태어나고, 미술관을 통해 두 번째 태어나며, 독자를 통해 세 번째 태어난다. 사랑방신문은 2011년 증흥동 들판에 핀 해바라기꽃으로 피고 있다. 사랑방신문은 박유자의 작품을 통해 회사 구성원과 지역민들의 성원 속에서 염천(炎天), 성하(盛夏)를 지나 가을을 향해 가고 있다. 또한 혹독한 겨울을 씨앗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의 부지런한 태도가 사랑방신문에는 있다.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나서면 해바라기가 피어 흔들리는 들판으로 첫발을 들여 놓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영웅이 있다

사랑방신문에서 가장 자유롭고 활기 있는 문화공간이 있다. 바로 휴게실이다. 고였던 물은 흐르고 막혔던 관계는 시원하게 풀 수 있는 곳이 ‘사랑방’이듯이 ‘사랑방’의 휴게실은 더욱 유연한 창조적 에너지와 웃음, 활력이 숨 쉬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인슈타인, 찰리채플린, 스티브잡스, 테레사수녀 등 6명의 ‘우리 시대의 영웅’을 만날 수 있다. 광주의 팝아트조각가 고근호의 작품이다. 사실 최근 정치권을 비롯해서 호남의 인물 기근현상을 겪고 있는 마당에 고근호 작가의 유년시절을 풍미했던 영웅의 부활과 우리 시대의 영웅을 찾고자 하는 희망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감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지역사회를 발전시킬 영웅과 한국사회와 한국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위대한 영웅’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간혹 가공할 만한 성과를 낸 인물을 우리 바깥에서 구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우리 주변에 가까운 인물과 기관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폄훼하는 일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우리가 우리의 영웅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안 된다. 고단한 일상과 일선 현장에서의 고충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늘 영웅을 꿈꿔왔고, 스스로 영웅이 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고근호의 작품은 ‘SRB미디어그룹’의 인재에 대한 가치경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신호탄이다. 필자는 ‘SRB미디어그룹’이 우리 지역사회의 인재양성의 요람으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우리 지역에 뿌리를 둔 믿음직한 ‘영웅기업’의 길을 걷기를 희망한다.

고근호의 인물은 그들이 우리 시대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숱한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매우 간결하고 가볍다. 특징은 있으나 삶의 무게감에 주눅 들지 않은 그들의 태도를 밝고 경쾌한 색감으로 녹여냈다. 각자의 개성과 목소리를 유지하되 그들의 가치는 인류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평화를 위해 공동의 목표가 그 안에 녹아 있다.

사람을 닮은 그림, 그림을 닮아가는 사람

조 회장으로부터 마지막 소개받은 작품은 한희원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조 회장의 집무실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대개의 다른 작품이 대중과 직원들을 위한 자리를 고려해 설치되었다면 유독 이 작품의 위치만큼은 손님과 직원들의 자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리에 걸려 있지 않다. 금방에 한희원의 작품은 유일하게 조 회장 자신을 위해 허락된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남다른 애정이 깃든 작품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CEO로서의 고독과 고뇌를 이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조 회장에게서는 그 한 축을 그림, 예술이 그 몫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희원의 작품을 집무실 책상에 앉아 멀리 바라보는 순간 그는 상상속의 마을로 달려갔다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조 회장과 가장 닮은 그림이 한희원의 작품이다. 그 작품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작품의 세계와 닮아가는 것일 터인데, 조 회장 또한 어느새 한희원의 작품세계가 내포하고 있는 예술적 정서와 순수하고 따뜻한 빛깔을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희원은 들판에 홀로 선 은행나무나 당산나무의 그늘로 데리고 다니며 논다. 그리고 눈 쌓인 고향마을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기타 가방을 든 중년의 남자로 분하여 눈 속에 발길이 끊긴 마을의 어느 집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새벽 같기도 하고 달빛이 밝은 밤 같기도 한 푸른빛이 감도는 마을의 분위기는 순전히 상상 속에 나오는 마을처럼 조용하기만하다.

조 회장의 얼굴에는 보통의 기업가들이 드러내는 그늘이 전혀 깃들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는 분명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자신의 중심을 휘어잡고 살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해진다. 그 속에 그림 한 점 한 점과 나눈 ‘조용한 응시’의 순간들의 모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SRB미디어그룹’은 ‘소외아동심리치료지원’과 ‘사랑의 공부방만들기’를 사회공헌활동으로 추진 중에 있다. 순수한 어린이들의 아픈 상처와 맘 놓고 공부할 수 있는 학습환경을 통해 이들을 보듬는 일에 ‘SRB미디어그룹’이 앞장서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대목이다. 조 회장이 그림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면서 꺼낸 말이 가슴을 계속 울린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찾아가서 보고 그림과 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단순하게 교과서나 몇 몇 책으로만 그림을 알게 하는 것은 우리 세대가 그림과 예술에 뒤늦게 눈을 뜨는 것과 같은 울을 벗어나기 어렵죠.”

필자는 사랑방신문 사옥을 빠져 나오면서 강운의 「공기와 꿈」과 박유자의「사랑합니다 - spring, summer, fall, winter」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좋은 그림을 보고 나면 그림을 떠나 있어도 그 그림이 자꾸 떠오른다’던 조덕선 회장의 말처럼 필자 또한 ‘사랑방신문’이라는 명제의 그림 한 점이 자꾸 뒤따라오는 것을 느낀다.

대동문화 77호 [2013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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