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화학 전문 기업 (주)한국 C&S(대표 나기수)는 지난 6월 27일 광주광역시 북구 월출동 첨단산업 1단지 시대를 마감하고 첨단산업 2단지 시대를 열었다. 광주광역시 북구 연제동 1037번지에 새 둥지를 틀었다.

1978년 설립되어 올해로 35년을 맞은 한국 C&S는 창업 이후 꾸준한 기업 활동에도 불구하고 대중에 익숙한 기업이 아니다. 한국 최초로 타이어용 이형제, 특수페인트, 고무류 국산화에 성공한 알짜배기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이다.

창업 이후 세계 최고의 특수화학 분야 제품 생산과 더불어 기술 국산화를 위해 한눈팔지 않고 달려오면서 이룬 성과가 적지 않음에도 대외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남이 걷지 않는 길을 선택한 특수한 분야를 선택한 이유도 한몫을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크게는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하게 기업인으로서의 길만을 고집하며 살아온 CEO의 경영 철학이 전적으로 반영된 탓이기도 하다.

중소기업을 하기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외줄 타기하듯이 기업을 일궈온 한국 C&S의 기술력은 ‘한국 최초’의 명성을 자랑하면서도 조용하다. 넓은 강폭을 흐르는 새벽 강물 같다. ‘광주 첨단산업 단지 경영자 협의회’ 회장직을 5년째 수행하고 있지만 좀처럼 나서는 법이 없다. 늘 다른 기업들을 먼저 배려하고 기업들의 고충을 조용히 함께 할 뿐이다.

기업 활동 중에도 이럴진대 대외적인 언론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보이는 일에서야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기업하는 사람은 기업하는 일로서 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나기수 대표가 외출을 결심했다. 순전히 그림 때문이다. 그림 한 점이 도심 한복판이 아닌 산업단지 공장에 걸려 있다. 매력적인 그림 한 점이 걸린 곳이면 어디라도 미술관이 된다. ‘그림이 있는 공장’, ‘사람 좋은 화가의 삶을 사랑하는 기업가’. 이 같은 문장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원이 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C&S를 통해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봄날 바람은 꽃을 피우고, 꽃은 바람에 향기를 던져 넣어주고

공장을 이전한 지 두 달여 밖에 되지 않은 한국 C&S의 인상은 말쑥한 정장 차림의 청년 모습이다. 동안이다. 공장 입구와 사무실 어디에도 35년 역사의 흔적을 찾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더구나 철저히 일을 위한 공간, 생산을 위한 공간이 전부다. 더구나 일반인들에 생소하기 짝이 없는 정밀화학이 주력인 한국 C&S에 처음부터 문화의 요소가 감지된다는 것 자체가 기대 밖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나 대표의 집무 공간으로 올라가는 2층 계단 통로에 들어서면 생각이 확 바뀌고 만다. 한국화가 하완현 작가의 그림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봄, 바람, 꽃'(장지 위에 석채, 162㎝×130㎝, 2003년)이다.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일지라도 예외 없이 '봄, 바람, 꽃'을 지나야 한국 C&S의 정수(精髓)에 들 수 있다. 그림을 통과하여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마치 사찰의 일주문이나, 한옥의 솟을대문을 지나는 일에 견줄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과 조명이 미흡한 것은 공장에 걸린 작품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보였다. 봄날 바람은 꽃을 피우고, 꽃은 바람에 향기를 던져 넣어주고 있는 남도의 화창한 곳에 대한 기억 하나쯤 갖고 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 대표는 '봄, 바람, 꽃'에 대해 짧고도 분명하게 한마디 한다.

“맑고 밝은 그림이 좋습니다.”

그림을 잘 알지도 남에게 특별히 설명해 본 일도 없다는 나 대표다. 다만 '봄, 바람, 꽃'은 첨단1단지에 공장에 들어설 때인 200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C&S와 함께 하고 있다. 어찌 보면 한국 C&S와 호흡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하완현 작가를 안 지는 오래 됐어요. 그림도 좋지만 사람이 그렇게 좋아요. 사람이 됐어요. 사람이 좋으니까 그림이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림을 어찌 알겠어요. 하지만 기업도 그렇고 우리 사회도 그렇고 항상 맑고 밝고 긍정적인 힘을 가진 것들이 좋더라고요.”

그림은 곧 그 사람입니다

나 대표의 그림을 대하는 방식은 현학적이지 않아서 좋다. 쉽고 친근하다. 가까운 이웃이나 마음 편하고 사람이 좋으면 모든 것이 그 사람으로부터 나고 그 사람에게 귀결된다는 식이다.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한다느니, 그림이 무엇이어야 한다는 식의 어떤 자세와 선지식도 작용되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방식이다. 본 대로 느끼는 대로다. 동물적 직관을 밑바닥에 깔고 한 번에 알아채는 방식이다. 그런 뒤에 갖는 무심한 태도가 무겁지 않은 특징을 지녔다.

그림을 갖고 있으되, 그림이 거기 있는지조차 모르고 현실에 살기 마련인 것이 기업하는 사람의 현실이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항상 그 자리에 그림이 서 있을 때를 새삼스럽게 알아채는 순간, 삶의 본질과 만나왔을 때만이 그림에 대한 소유욕이 사라져버리는 단계라고 본다. 나대표가 하완현 작가와 작품을 말하는 목소리와 표정에는 그 단계마저 극복해 버린 듯한 인상이 짙게 느껴졌다.

“남이 하지 않는 틈새시장, 매출이 몇 천 억 하는 것은 경쟁이 심한데, 특수 고무 분야 같은 것은 개발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금형 제작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특수 고무를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의 우리 회사가 유일합니다. 그렇지만 항시 ‘좀 더, 좀 더’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집니다. 여전히 남이 도달할 수 없을 정도의 신제품, 그리고 개발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35년 된 기업 CEO의 말이다. 작품 '봄, 바람, 꽃'을 10년 넘도록 간직하고 있는 기업가에게 슬며시 회사 이야기를 건넸더니 첫 일성이 강렬하다. 동백과 진달래, 매화가 그렇듯 봄바람 속에 피는 꽃의 자세와 본색이 바로 이런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한국 C&S는 나 대표를 만나기 전에 '봄, 바람, 꽃' 속에서 만나는 한국 C&S와 집무실에서 나 대표를 만나고 나서의 '봄, 바람, 꽃'을 만나고 난 뒤까지를 한 화폭에 넣을 때 비로소 하완현의 작품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회사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었다.

“남이 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이 수입해서 쓰는 것을 국산화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금호타이어에서 수입해 오던 것을 저희가 국산화해서 금호타이어에 저희의 제품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어떻게 보면 한국화가 하완현이 한국화가로서 한국화에 추상을 도입하는 실험적 작품 활동으로 화단에 기대주로서 주목 받았던 창작 행위와도 맞닿아 있기도 하다. 35년 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이 지금도 서슴없이 ‘좀 더, 좀 더’를 강력하게 주문한다고 하질 않는가. 이것이 나 대표의 근본이다.

그림에 갇힐 일은 아니다

“제가 책을 좋아하는데, 사람 사이의 인연에서 배우고 그 다음이 책에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입니다. 키우는 것이 최상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작지만 알차고 오래 가는 회사 즉 장수하는 기업을 만들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나 대표는 주로 독일이나 일본을 보면 매출이 50억 정도 내외의 회사들이 장수하는 기업들이 많은데 이 같은 회사를 모델로 삼고 있다고 한다. 100년, 200년 가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이 무렵쯤에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무등산’(장지 위에 석채, 33㎝×21㎝)이었다. 역시 하완현의 작품이다. 서산(瑞山)이라는 호를 갖고 있다는 나 대표가 무등산을 머리맡에 두고 지내는 것을 딱히 이색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그런데 무등산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작은 공간에 담긴 ‘무등산’이 굳이 무등산이 아니어도 좋을 만큼 크게 보이는 이유도 사실 나대표의 기업관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사실 필자는 이번 취재를 위해 하완현 작가와 따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나 대표와 하완현 작가와의 만남도 우연하게 일어났다. 전화번호를 잃어버리고 지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작품을 통해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사람을 통해 그림을 만나게 되고, 때로는 이번처럼 그림을 통해 사람의 만남이 일어나는 게 찬 샘물을 넘기는 것처럼 상쾌하고 사람이 맑아진다는 생각을 모처럼 했다.

무등산을 무등산으로 부르든, 무등산을 무등산으로 보지 않든지 결국, 보는 사람의 일이다. 그림에 갇힐 일은 아니지 싶다. 한국 C&S 생산 제품의 80%가 세계에 수출되는 것과 같이 무등산은 도립과 국립의 범주를 넘어 존재감을 갖는 것은 무등산의 정기를 마시면서 사는 사람들에 달렸다는 생각을 해 봤다. 하완현 작가는 한동안 창작 활동을 중단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림에게 돌아왔다고도 또박또박 눌려 말했다. 지금까지 주재료로 사용해 온 석채(石彩)에 대해 설명할 때의 그 진지함과 생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지금이 최고로 행복해요.”

하 작가가 화단으로 돌아오기 위한 호흡을 가다듬고 붓에서 별가루가 쏟아지듯 석채와 함께 밤을 이기고 있다는 소식은 나 대표에게도 광주에게도 한국 화단에도 반가운 일이지 싶다. 구상과 비구상, 실험과 전통의 경계를 놓고 갈등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길,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가고 있는 하완현 작가와 욕심없이, 무리하지 않고 우리 지역의 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고 있는 나기수 대표의 한국 C&S와는 공교롭게 겹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나 대표는 소리 내지 않는 사람이면서도 항상 밝고 유쾌하게 소리 내어 웃는 사람이다. '봄, 바람, 꽃'의 따로 떨어진 분홍꽃인가 하면, 샛노랑 바탕 위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꽃이기도 하며, 끊어지지 않는 둥근 고리이기도 한 세상을 한 몸에 지닌 경영인이다. '봄, 바람, 꽃'의 작품과 나 대표와는 경계가 없어 보인다. '봄, 바람, 꽃' 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국C&S에서 매일처럼 새롭게 화학 반응하는 중이다.

대동문화 78호 [2013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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