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의 흔적은 문화유산 아닌 것이 없지만 행정 편의에 따라 선별해 법으로 보호하는 문화재 지정 제도가 있다. 광주시는 이 제도에 따라 2013년 현재 국가지정문화재 27건과 시지정문화재 108건 등 모두 134건의 문화재를 보호하고 있다.

한때는 필자도 이 문화재 지정에 관계하였고 지정 문화재들의 지정 가치나 중요성보다 시대에 따라 사회적 영향을 받더라는 후일담을 몇 년 전 이 연재의 한 항목으로 다룬 바 있다. 나이 들어 이런 제도권에서 은퇴한 뒤 지난 7월부터 광주의 옛 얘기 산책을 시작하면서 문화재 지정 실무 때 본분을 다하지 못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문화유산 공정하게 평가되지 않고 있다

법으로는 문화재위원들이 직권으로 보호 가치가 있는 유물, 유산을 지정 제안할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현실적으로 위원들이 다른 생업에 매여 있어서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이 때문에 성글진 가진 문중이나 개인 유산이 단위 행정 기관을 거쳐 지정이 제안되고 심의되어 관내 문화유산의 중요성이나 가치가 공정하고 합리성 있게 평가되지 않는 편이다.

보기를 들자면 조선 왕조 때 광주 읍지류들이 고적 항목에서 다룬 것들은 당연히 학문이 발전한 이 시대에 맞게 그 터를 밝히고 그 중요성을 다시 따져 기록을 보완하고 보호 가치가 있는 것들은 선현들의 생각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일의 주체는 일차적으로 시와 구청에 있는 문화재 담당자들이 해야 할 임무라 할 것이지만 인력과 전문성의 부족 때문인지 극히 몇 건만이 지정 문화재가 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아쉬운 문화유산은 일본 식민 통치자들에 의해 뜯긴 광주읍성과 경양역 터이다. 형상은 없어졌더라도 광주에서 이보다 값지고 중요한 역사 흔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아쉬운 것은 근대 문화유산들이다.

일제 식민 통치 하에서 지역 자본을 모아 설립했던 호남은행 터나 당시 부자들이 지었던 한옥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현준호의 옛집과 최명구의 집을 보기로 들 수 있다.

양림동에 남아있는 서양식 집들이 문화재라면 개화기에 지은 중국식 집이나 일본인 집도 문화재로 지정해야 공정하다. 어떤 집에서 어떤 역사가 이뤄졌던가에 따라 그 집을 보호할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그 주택 구조에 특징이 있다면 우리 생활에 영향을 준 외래적 주택 양식은 보존해야 한다. 그 여러 형태의 주택 양식은 이 고장 건축사사 연구 자료와 후세 국민의 시청각 교재를 쓰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가옥도 마찬가지다. 전라도 전통 가옥 양식 중 양반가뿐 아니라 특이한 생활양식을 나타내는 서민 주택과 시대 발전에 따라 변화를 보인 주택 양식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근대 문화유산의 등록 제도가 생겼다.

등록 문화유산

광주시내 전통가옥 중 문화재로 보호 중인 집은 세집이다. 제 1호는 양림동의 이장우 가옥이고 2호는 같은 구내의 최승효 가옥이다. 이밖에도 매곡등의 김용학 가옥(3호)이 있다.

이장우 가옥은 일제 초기 양림동 부자의 한 사람이었던 온양 전씨 정낙교(1863~1938)의 집으로 이웃집 탐진 최씨 최명구(1860~1913)와 시새워 가세를 자랑했던 사람이다. 1912년 최명구가 흥학관을 지어 광주면의 공회당으로 기증하자 1914년 사직단 입구에 양파정을 짓고 매년 전국 한시 대회를 열었다.

정낙교는 본디 양림동 169번지에서 살다가 1935년 128번지에 이장우 소유 가옥을 지어 살았다. 그 집은 그의 아들 정상호(1898~1979)가 살다가 가세가 기울어 1965년 이장우에게 팔았다. 최명구는 오늘날 최승효 가옥이 된 양림동 166-19번지에서 살다가 서동 128번지에 살다가 흥학관을 지어 기증한 이듬해에 죽었다.

이 집은 아들 최상현(1881~1945)이 살다가 무송 현준호(1889~1950)가 호남동과 학동에 개량식 한옥을 짓자 이에 질세라 1935년 서동 128번지에 2천 평의 대지를 마련하고 오늘날 ‘사동 최부잣집’이라 부르는 반양 반한 양식의 2층집을 5년에 걸쳐 완성했다.

그는 양림동 집은 둘째아들 정엽(1920~1960)에게 주고 서동 집으로 옮겨 살다가 해방되던 해 봄에 죽었다. 이에 따라 양림동 본집은 최승효 씨에 팔려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서동집은 큰 아들 정숙(1918~1952)에게 상속되었고 다시 그의 아들 최윤성(1939~1975)에 이어 지금은 그의 누나 최순(77)의 소유가 되었다.

재미난 것은 양림동 전통가옥 두 집이 모두 옛 광주 부자들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첫 건축주들과 관계없이 현재 소유자들의 이름으로 문화재가 지정되어 있다. 또 하나는 일제 식민 시절 서로 좌웅을 겨루던 세집 후손들이 모두 광주를 떠나거나 대가 끊길 지경에 있다는 점도 흥미 있다.

일제 식민시대 광주 3대 부잣집의 운명

무송의 집은 몇 차례 자리를 옮겨 증심사 입구에 세워진 전통문화회관의 일부가 되어 있으나 서동 최부잣집은 자체 관리의 능력이 없어 대문이 헐되고 남아있는 집마저 기와가 깨지는 등 퇴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집은 대지가 모 대학교에 기증된 상태라 등록문화재 지정마저 합의되지 못해 일제 식민 시대 광주 3대 부자의 행적이 사라질 지경에 이르러 있다.

아시아 문화전당을 짓는다고 6백여 년 전남 일대 치정 중심을 이뤘던 도청 건물이 뜯기고 도청 동쪽 울타리에 남아있던 광주읍성 마지막 흔적마저 뜯겨 땅속에 파묻혔다. 이대로 가다가는 5․18광장의 상징인 분수대도 뜯길 판이다.

광주의 인상이었던 경양방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광주읍내보다 많은 사람들이 붐볐던 우산동의 경양역은 이곳에 있던 7기의 선정비마저 광주공원으로 옮겨 그 흔적을 더듬을 수가 없다. 이것이 세계화를 지양하는 아시아 문화중심 도시 광주 문화 행정의 현재 모습이다.

대동문화 78호 [2013 9,10월호]

김정호 광주향토문화연구소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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