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샤데이’(Sade) 라고 불리우는 가수 장필순. 오랜만에 그녀의 정규 앨범이 나왔다. 무려 11년 만에 나온 7집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른바 386세대 음악 매니아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겐 장필순의 새 앨범은 ‘버스커 버스커’의 그것 못지않을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으로 회자되는 5집과 6집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조동진‧조동익 형제, 이주호, 고찬용, 함춘호 등이 참여한 면면을 보더라도 이번 앨범은 청자(聽者)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을 만하다.

장필순은 1982년 대학 연합 창작 음악 서클 '햇빛촌'의 참여로 음악 인생을 시작한다. 1989년 그녀의 독집 앨범인 1집 ‘어느새’로 데뷔하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장필순은 '조동진 사단'의 일원으로서 꾸준한 음반 취입과 공연 활동을 지속해왔으며 1995년에 나온 4집에서는 본격적인 싱어 송 라이터로서 존재감을 알리게 된다. 특히 1997년과 2002년에 발매한 5집과 6집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의 명반으로 평가를 받았다.

내 이름보다 음악이 그에게 남았으면 좋겠다

장필순 7집은 그녀의 친구이자 연인인 조동익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재미있는 것은 레코딩 스튜디오가 ‘제주 외딴집’으로 앨범에 표기돼 있는 것. 말하자면 제주 장필순의 집에서 레코딩을 했다는 것이다.

어느 언론사 인터뷰에서 장필순은 이렇게 얘기한다. ”제주의 영향이 없을 수 없겠다. 앨범에 거기 공기가 있을 것이고, 바람소리가 스며들었을 것이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되 그 안의 주인공은 장필순이 아니라 그 음악을 듣는 청자였으면 좋겠다. 내 이름보다 음악이 그에게 남았으면 좋겠다.“

앨범 안에 그녀만의 스토리가 들어 있다는 얘기가 음악을 들을수록 되새김질 하게 된다. 오래 전 장필순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대학 시절 나는 그때 뭔가에 홀린 듯 방황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었다. 그때 조동진, 박학기, 들국화, 김광석, 장필순을 만났다. 그들의 음악에는 버거운 현실에 대한 위무와 작은 희망들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장필순은 독특했다. 읊조리는 듯한 그녀의 창법, 절제된 감성, 시적 운율이 있는 가사…. ‘아! 한국에도 이런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있구나.’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 이후 나는 장필순의 음악을 거의 듣지 못했다. 5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만날 때까지 말이다. 그때 난 문득 그녀의 음악은 마치 공기처럼 사람에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그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들 DNA속에 새록새록 부지불식간에 쌓이는 어떤 ‘유익한 인자’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은 7집을 만나 더욱 강렬하게 굳어진다.

가장 의외의 곡은 ‘눈부신 세상’이다

7집은 ‘장필순의 음악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전 음악과는 달리 매우 파격적인 사운드를 보여준다. 하지만 자세히 듣다보면 파격이라기 보단 앨범 전체를 조율하는 일종의 프렐류드(prelude)처럼 연결성을 가진다. ‘무중력’과 ‘맴맴’은 그냥 그대로의 그녀의 음악이다. 삶이 그녀의 음악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그녀의 음악은 지금 강렬하지 않지만 중독성이 강하다.

가장 눈에 띄는 곡은 장필순이 직접 작사 작곡한 ‘너에게 하고 싶은 얘기’이다. 이 곡은 7집의 타이틀곡이면서 그 동안의 장필순의 음악과 삶 모두를 상징하고 있는 노래이다. 또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위안과 힐링의 시간을 제공한다.

’먼 곳에서 돌아온 너 잔잔해진 가슴엔 젊음보다 열정보다 더 빛나는 꿈을 채워, 흔들리던 너의 어제를 부끄러워하진 마…. 너의 침묵 속엔 수없이 많은 얘기 너의 눈빛 속엔 흔들리는 별 하나…. 머나먼 밤길을 힘겹게 돌아온 너를 위해 말없이 두 손을 잡아줄 뿐….‘

장필순은 이렇게 얘기한다. “앨범 안에 스토리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곡을 쓸 때의 단상과, 시간과 공간의 느낌을 수집한다. 이야기가 있고,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음악보다는 여백이 있는 음악, 그런 노래를 7집에 담고 싶었다.”

장필순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그녀가 그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우리들 곁에 남아 주어서 무척 고맙기도 하거니와 무기력한 삶속에서 마주하는 그녀의 음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아름답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진정 우리에겐 작은 축복일 것이다. 이 야만의 시대에 말이다.

대동문화 79호 [2013 11,12월호]

장용석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프로듀서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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