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장수에게 차를 내고, 적을 치려는 일을 논하다

우리는 우리 차 산업과 정신을 지키고 있는가

한산도 제승당과 사천 운흥사에 남은 장군의 茶香

운흥사 영산정

임진왜란이 일어난 그해로부터 420년이 흘렀다. 전쟁은 그 전개 과정 자체가 스펙터클한 역사 다큐멘터리다. 조작이나 반전이 있는 드라마가 아니다. 죽고 사는 일에 서정이란 없다. 전투 준비, 적과의 대치, 목숨을 건 처절한 싸움, 살아남는 자가 있을 뿐, 복기도 재생도 할 수 없는 목숨 게임이다. 승리와 패배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적군과 아군의 창세기이다.

현충사에 남아 있는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과 임진장초(李舜臣 亂中日記 및 書簡帖 壬辰狀草)의 기록은 그래서 칼날 같은 문장이다. 군더더기의 살점을 뼛속까지 발라내고 골격만 남은 문체를 이루었다. 삶과 죽음을 눈앞에서 응시하면서 기록한 도저한 역사 다큐멘터리 기록이었다.

가령, 장군은 그토록 마음 쓰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짜의 일기에도 이렇게 5문장밖에 쓰지 않는다. ‘조금 있자니 배에서 달려온 종 순화가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방을 뛰쳐나가 슬퍼 뛰며 뒹굴었더니 하늘에 솟아 있는 해조차 캄캄하였다. 곧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가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니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모두 다 적을 수가 없다. 뒷날 대강 적으리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살 것이냐?

도생을 장담할 수 없었던 명랑대첩의 전투 기록은 1597년 9월 16일이다. ‘거제 현령 안위의 배가 그보다 먼저 왔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하였다. 그러자 안위도 황급히 적선 속으로 뛰어들었다.’ 패색이 짙은 13대 130여 척의 대결 상황에서 적의 위세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꽁무니를 빼려던 중군장에게 장군이 한 말은 딱 세 마디였다.

그러나 장군도 인간이었다. 전쟁에 임한 장군 이순신에게는 추호도 서정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인간 이순신에게는 지독한 인간미와 애증이 남아 있었다. 문체로 일가를 이룬 일기와 장초와 서정적 시구로 이순신 자신의 인간적 면모를 꾸밈없이 드러냈다. 잠 못 이룰 때, 거문고를 타고 피리를 불어주며 위로하던 천민 병사를 기록했다. 부모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고, 아들이 죽자 울부짖었으며, 충용하던 부장이 죽자 미쳐 날뛰었다. 원균을 애처롭게 미워하기도 하고, 왜적들을 대면해 오만하기도 했다. 궁핍한 부하에게 옷을 벗어주기도 했다.

임진 정유재란의 이순신 기록은 또 기획과 구성에서도 놀랍다. 최종 승리를 확신하지 않은 장수가 어떻게 전쟁의 전과정을 기록할 계획을 세웠겠으며, 전쟁을 마감할 대회전이었던 노량해전 하루 전의 순간까지를 기록할 수 있었겠는가? 장군은 난중일기를 치밀하게 기획했으며, 노량해전의 마지막 전투에서의 죽음의 기획에까지 자신을 주인공으로 끌어들였다.

이순신은 또 일기에서 아무 것도 덧보태거나 꾸미지 않았다. 문체와 역사성과 구성과 작가의 진정성을 두고 봤을 때도 난중일기는 세계문학사를 빛낸 문학 작품이었다. ‘놀라울 따름이다.’

난중의 장수가 차를 마실 수 없다

난중의 장수가 차(茶)를 마실 수는 없다. 백성들과 병사들이 기아에 신음하고, 적이 눈앞에서 나라를 분탕질하는 전장터에서 7년 전쟁 동안 단 한시도 쉴 수 없었던 이순신의 진정성이 차(茶) 마시는 한가로움을 기록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중일기에는 딱 한 곳, 차(茶) 이야기가 등장한다.

1594년 7월 17일. 그해 4월 명과 일본이 서생포에서 강화 회담을 진행하던 때였고 곧이어 9월~10월에는 장문포 해전이 있을 예정이었다.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로 통제영이 있던 한산도에서 진영을 죽도로 옮기고 이틀이 지났다. 일기에는 전쟁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 명군의 미지근한 태도가 그대로 담겨 있다.

오전 10시 명나라 장수 파총 장홍유가 병호선 다섯 척을 거느리고 돛을 펼치고 들어왔다. 수군 진영에 바로 이르러서는 우리에게 육지에 내려서 같이 이야기하자고 청하였다. 나와 여러 수사가 먼저 활터 정자에 올라가 올라오기를 청하니, 파총이 배에서 내려 곧 올라왔다. 같이 앉아서 내가 먼저 멀고먼 바닷길을 고생하여 이곳까지 오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는 “작년 7월 절강에서 배를 띄워 요동에 이르렀더니, 요동 사람들이 ‘바닷길에는 돌섬과 암초가 많습니다. 또 곧 강화할 것이니 가지 마십시오’ 하고 완강하게 말리고 간청하였지요. 그래서 요동에 머무르면서 시랑 손광, 총병 양문 등에게 급히 보고하고 올 3월 초순에야 배를 출발하여 왔으니 무슨 고생이 있을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내가 차(茶)를 들라고 권하고 나서, 술을 조금 내놓았더니 의분에 찬 심정을 드러내었다. 적의 정세를 이야기하느라고 밤이 깊은 줄을 몰랐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난중일기 최초이자, 최후의 차 기록이다. ‘애통하고 애통할 뿐이다.’ 장군은 사대부가 출신으로 분명히 차를 마셨던 무관이었다. 1591년(선조 24) 류성룡의 천거로 장군은 절충장군·진도군수 등을 지냈다. 같은 해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승진한 뒤, 좌수영에 부임하여 군비 확충에 힘썼다. 전쟁을 준비하고 필승을 기획했다.

류성룡은 당시 도체찰사가 되어 이순신을 해전에 권율을 육전에 등용토록 선조에게 주청했다. 류성룡은 ‘초가삼간에 소나무 만 그루, 옅은 연기 마을을 빗겨 피어오르고/오늘은 그대 위해 사립을 열었으니/맑은 차와 홍시로 나그네의 갈증을 씻어주게나’라는 시를 남겼다.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을 기록한 명저 '징비록'은 18세기 일본에 전해져 이순신 장군이 세계 해전사에서 가장 뛰어난 전쟁을 치렀음을 일본 땅에 당당히 알렸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율곡 이이는 ‘구름 끼어 비 내리니 숲속은 어둑한데/산속의 집은 맑기 이를 데 없네/차를 다 마시니 할 일이 없어/시와 선에 관한 얘기를 섞어 한다네’라는 한시를 남겼다.

장군 이순신이 차시(茶詩)를 남기지 않은 이유는 예를 들면, 제봉 고경명 선생이 ‘술 때문에 생긴 병 의원의 말을 듣고/서둘러 술잔 치우고 후회 많이 했다네/솔바람에 베개 베고 낮잠 이루니/찻사발에 꽃이 떠서 흰 물결 이루네’하는 차시를 남긴 차인이었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6천을 이끌고 금산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것과 비교하면 좋을 것이다.

사천 운흥사에 남은 충무공의 차 흔적

김대성의 <차문화 유적 답사기>(차의 세계, 1994)에는 이순신 장군이 1592년 5월 29일 경남 사천 선진 앞바다의 ‘사천포 해전’에서 거북선 2척을 출진시켜 해전에서 승리했을 때 차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 장군은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고, 거북선을 설계하고 만든 군관 나대용도 부상을 입게 된다. <답사기>에는 사천 운흥사 스님이 ‘차나무 열매를 짠 기름’을 장군의 어깨에 발라 쉽게 나았다는 이야기를 적고 ‘충무공의 위대함이 한 잔 차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남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 와룡산(579m) 향로봉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운흥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고찰이다. 운흥사의 ‘영산전’은 1731년(영조 7)에 중건된 전각인데, 이 영산전에서 임진왜란 때 산화한 승병과 의병의 명복을 비는 영산재를 매년 거행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 6천을 이끌고 왜적과 싸운 곳이기도 하다. 사명대사는 차시(茶詩)를 많이 남긴 승군도총섭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했으니, 김대성의 이 구전 기록이 맞을 수도 있겠다.

이순신은 1597년 봄 전란 중에 어머니 상을 당한 뒤 그 해가 다 가도록 예법에 따라 채소만 먹는 소식(蔬食)을 했다. 그러자 선조가 고기반찬과 함께 직접 분부를 내렸다. 12월 5일이었다. “이번 선전관 편에, 통제사 이순신이 아직도 권도(상중에 고기를 먹지 않고 나물 반찬만 먹는 것)를 좇아서 여러 장수들이 걱정스럽게 여긴다고 들었다. 사사로운 정이야 비록 간절하지만 나랏일이 한창 바쁘고, 옛날의 말에도 ‘전쟁에 나가 용감하려면 소찬이나 먹어서 기력이 떨어진 자로서는 능히 하지 못하는 일이다. 예에도 원칙을 지키는 경(經)이 있고 방편을 취하는 권(權)이 있는 것처럼 꼭 원칙만 지킬 수는 없는 것이다. 경은 내 뜻을 잘 깨달아서 소찬 먹는 것을 그만두고 권도를 좇지 않도록 하라.” 이순신은 ‘비통하고 비통하였다’고 적었다. 장군은 효와 충 사이에 그토록 처절하게 번민하던 한 인간이었다.

최근 경상남도는 난중일기에 나오는 음식 재료를 토대로 ‘이순신의 밥상’ 77가지를 복원하고 특별 음식점도 통영에 냈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는 8가지 특산물로만 차린 ‘이순신의 밥상’을 맛볼 수 있다. 전란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되고 백성이 굶주리던 시절의 밥상이니만큼 절절했던 이순신 장군의 인간미가 담긴 간소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인간미와 우국을 기리는 이 밥상에 조촐한 우리 차 한 잔도 한 잔 올려졌으면 좋겠다.

일본의 한해 녹차 소비량 9만 5천 톤, 중국의 녹차 소비량 130만 톤, 한국의 녹차 소비량 2천 톤이다. 명의 장수에게 차 한 잔 내놓고, 승리를 예감한 여유로움으로 왜적을 칠 전략을 도모하던 이순신 장군이었다. 승리를 이미 기획하고 통감했던 장군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차가 무혈 진군해 우리 차산업과 차농업을 점령한 임진왜란 420년 후의 지금 우리는 이렇다. ‘분통하고 또 분통한 일이다.’

[대동문화 69호, 2012년 5.6월호]

백승현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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