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2011)에 이어 <사이비>(2013)를 연거푸 내놓으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장본인이다. <원더플 데이즈>(2003)의 백분의 일에 해당하는 1억 2천만 원으로 만든 <돼지의 왕>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곧바로 작업에 착수한 <사이비> 역시 만만치 않은 무게감을 선보이며 독립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재차 확인시켰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물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최소 스탭을 데리고 속전속결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감독이 애니메이션을 거대한 산업으로 접근하지 않고, 자신의 통제 하에서 독립적인 작업을 고수하며 얻어낸 성과인 것이다. 여기에는 감독의 재능이 다방면으로 출중한 것도 한몫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상호 감독의 많은 재능 중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단연 돋보인다. <돼지의 왕>은 관객들을 중학교 1학년 교실로 데려가 우상 숭배에 함몰된 개인주의의 비극을 섬뜩하게 보여주었고, <사이비>에서는 수몰이 예정되어 있는 시골 마을로 관객들을 안내하여 우리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인간은 시초부터 무엇인가를 믿고 의지했을 때 마음이 편안해 지는 속성을 지녔다. 믿음을 통해서 삶의 고통을 위로받는 것이다. 바로 종교가 필요해지는 이유다. 한데 인간의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일삼는 사이비 종교인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쁜 놈이 더 나쁜 놈들을 처단하는 이야기

<사이비>가 포착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장로 최경석(목소리 출연 권해효)과 목사 성철우(목소리 출연 오정세)는 수몰 예정 지역인 마을에 들어와 기적을 행한다. 동네가 수몰 지구가 된 것은 “마귀들이 마을 주민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려는 계략”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환자가 일어나 걷는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등,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음을 전시하며 동네 주민들을 맹신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장로 일행들이 노리는 것은 마을 사람들의 보상금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설정은, 이들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그가 동네 주민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는 ‘개망나니’라는 점이다. 그의 이름은 김민철(목소리 출연 양익준)이다. 영화는 그의 개차반의 행실을 보여준다. 딸의 대학등록금을 가로채 도박을 하고, 매일같이 술에 취해 싸움을 주도하며, 폭행과 욕설로 딸과 아내가 오금을 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주민들이 그를 가리켜 ‘사탄이 씐 자’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바로 이 부분에서 극적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민철은 시내 파출소에서 최경석이 수배자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장로 행세를 하는 최경석이 사이비임을 주민들을 향해 일갈한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의 말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동네에서 내놓은 인물인 것이다. 차라리 주민들은, 자신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을 돕고자 마을에 찾아 온 장로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더 믿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긴장은, 나쁜 놈이 더 나쁜 놈들을 처단하고자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에서 만들어진다. 이제 최경석은 사이비의 이름으로 악행을 이어나가고, 김민철은 김민철의 방식으로 악의 무리에 맞서는 것이다.

사기꾼 장로답게 최경석은 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 하여 14만 4천개밖에 없는 천국행 입장권을 사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소문을 퍼트려 동네 주민들의 보상금을 가로채는 것이다. 이들이 최경석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것은, 기대고 의지할 신의 대리인으로서 최경석의 거짓 희망이 그럴 듯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제한된 천국의 영역에 들어갈 한 사람으로 추대되며, 그 영원한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 보상금을 헌금으로 바치는 것이다.

종교는 괴로움의 안식처인가? 괴로움의 시작처인가?

그렇다면 영화는 최경석의 목적 달성으로 마무리될까. 당연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감독은 파국을 준비하며 스토리텔러로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때문이다.

최경석에게 자신의 과거를 약점 잡히고 있는 성철우 목사는, 김민철을 죽여 없애는 방법으로 정신지체 청년의 맹신을 자극하여 칼부림의 난무를 연출한다. 소통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극단을 선택한다는 이야기의 연쇄 고리를 펼쳐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독은 천국에 가고자 기도를 올렸던 예배당을 불태우며 파국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이 불의 이미지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상징이다.

감독은 교회를 불태워 버리는 것으로 사이비 종교인들과 이를 맹신하는 행위를 단죄한 것이다. 그렇다고 감독이 종교의 순기능까지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두 장면 정도에서 감독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나는 병으로 죽은 아내의 편안한 얼굴 모습을 보고, 그 평안이 신실한 믿음 때문이라며 감사하는 가게 아저씨의 마음을 통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무신론자였던 민철이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서이다.

이는 인간이 괴로움을 위로 받기 위한 안식처로서의 종교를 생각하게 하고, 인간 내면의 믿음에 대해 사고하게 한다는 점에서 종교의 역할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사이비>는 인간과 믿음의 문제를 심도 있게 드러내기 위해 촘촘한 이야기를 구성해 낸 점이 돋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좋은 이야기의 중요성을 재차 각인시킨다.

대동문화 80호 [2014 1,2월호]

조대영 광주독립영화협회 대표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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