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과 휴가철을 활용한 도심권 문화유적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학생과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대동문화(회장 조상열)가 지난해에 이어 마련한 ‘북구문화관광 투어’가 그것으로 이 테마여행은 지난 7월31일부터 8월28일까지 실시됐다.

북구 일원의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네 차례 이뤄진 이번 투어는 시민들의 문화유적에 대한 이해를 끌어올리고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역사 문화 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또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생활을 꾸려가는 북구 관내 소년·소녀 가장 등 청소년들을 매회 4∼5명씩 초청해 의미를 더했다.                                 

광주광역시 북구청에서 '가사문학관 탐방' 회원을 접수 받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약속한 날 시간에 맞추어 버스에 오르니 복잡한 도심을 벗어난 버스는 목적지인 담양의 가사문학관을 향해 달리고, 차창으로 스치는 짙은 녹음에 마음을 주며 한참을 달린 버스는 우리를 첫 번째 목적지인 소쇄원에 내려놓았다.

대숲을 지나 탁 트인 공간이 나오면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정원의 시작이다. 소쇄원(사적 제304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원림으로 조선 중엽의 민가 별서정원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소쇄'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으로 소쇄원이란 물 맑고 깨끗한 원림 즉, '속세를 떠난 아름다운 곳이란 뜻'이다. 조선조 4대 현인 중 한 사람인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능주에 유배되어 사약을 받게 되자, 그의 제자인 양산보는 너무도 마음이 아파 벼슬에 대한 꿈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살기 위해 소쇄원을 짓고 은거했다.

속세 떠난 아름다움의 절정

대봉대 앞 오동나무를 지나면 계곡의 아홉 굽이 중 다섯 번째 굽이인 오곡문에 이르는데 담장도 옛 그대로이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위에 다리를 놓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고자 했던 옛 선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개울을 건너면 야트막한 계단과 좁은 길이 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야트막한 담장을 만나게 되는데, 담장에는 '소쇄공 양산보의 초라한 집'이라는 뜻의 우암 송시열 글씨가 문패 역할을 하고 있다.

담장에서 비스듬히 고개를 돌리면 가장 높은 곳에 제월당이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제월당 주인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사색하고 독서하는 사적(私的) 공간이라고 하는데, 마루에 걸터앉아 앞을 바라보고 오른편, 왼편을 번갈아 바라보노라면 아늑한 자연 속의 나는 어느 덧 자연의 벗이 되어 모처럼 산중에서 진실된 삶과 품위를 느끼며 이곳의 한 귀퉁이 작은 배경이 된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을의 길목에서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품위를 나타내는 제월당의 위풍! 그 앞의 오른쪽 쪽문을 지나면 귀한 손님이 묵어갔다는 광풍각이 자리하고 있다.

굽이쳐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재현해 내기 위해 담장을 쌓았다가 허물기를 여섯 차례나 했다고 하는데 마음을 비우고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는 자연의 비밀들을 간직한 채 영롱한 구슬이 구르는 듯 하다.

광주호를 발끝에 거느리고 성산(星山)을 마주한 언덕배기에 고매한 선비처럼 둥지를 틀고 있는 식영정은 환벽당과 창계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아래쪽 오른편의 서하당을 세우고 지내던 김성원이 을사사화로 낙향한 스승이며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인 식영정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라고 하며, 정자의 이름을 두고 나눈 이야기도 전해진다.

자미탄 흐르는 가사의 유장한 가락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경치와 훌륭한 주인을 찾아 이곳에는 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드나들었다고 하는데 당신 석천 임억령에게 시문을 배우던 사람들은 서하당 김성원을 비롯,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있었고, 이들을 가리켜 식영정 사선(四仙)이라고도 하며 식영정을 사선정(四仙亭)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식영정 남쪽으로 현재 광주호가 내려다보이지만 이 광주호가 생기기 전에는 정자 바로 밑으로 '자미(배롱나무)탄' 이라는 여울이 흘렀다고 한다.

이 곳은 송강 정철이 지은 '서하당 주인아 내 말 듣소' 로 시작되는 「성산별곡」의 산실로 송강은 이 정자에서 바라다 보이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주제로 성산의 풍경과 식영정(息影亭), 서하당(棲霞堂)을 중심으로 읊었다고 한다.

가히 '송강의 가사문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겠다. 성산별곡 시비 앞에서 1560년대 송강의 나이 25세로 돌아가 그 흥취에 젖어들어 보고자 나지막이 읊어 본다.

충효동 마을 왼쪽 길로 걸어 올라가니 이끼 긴 돌담과 오랜 세월 묵묵히 견뎌온 나무들이 고즈넉한 자태를 드러내고 높다란 언덕 위에 환벽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촌 김윤제가 집 뒤에 세운 별서정원이라고 한다. 아래쪽으로 넓은 풀밭이 보이는 곳이 원래 살림집터라고 한다. 특히 이곳은 송강 정철이 27세로 과거에 급제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머물면서 공부했던 곳으로 그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여름날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오수에 들었는데 꿈에 환벽당 앞 용소에서 청룡이 승천했다. 꿈에서 깨어 용소로 가보니 어린 동자 하나가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송강 정철이었다. 영특함이 대단하여 슬하에 두고 학문을 닦게 하였으며 이 인연으로 정철을 외손녀 사위로 맞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곳에 머물며 기대승, 김인후 등 고명한 학자들에게 학문을 배우고 임억령에게 시를 배웠으며 여러 사람과 사귈 수 있었다고 한다.’

환벽당이라는 현판의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썼으며, 석천 임억령의 시가 현판에 담겨 있다. 푸른 대숲에 싸여 있어서 환벽당이라고 했다는데, 지금은 대숲은 없고 집 뒤 비탈과 양쪽 축대 아래의 커다란 배롱나무가 매우 인상적이다.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 정신을 이어 받은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은 불합리하고 모순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여 낙남(落南)하여, 무등산 정기 어린 이곳 담양 일원에 호남 시단의 중요한 무대가 된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 등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빼어난 자연 경관을 벗 삼아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인 조선시대에 국문으로 시문을 지어 노래했다. 그 중에서도 가사문학이 크게 발전하여 꽃을 피웠으며 한국 가사문학 창작의 밑바탕이 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우리는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그 가치와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널리 알리며, 귀중한 가사문학 자료와 유물들을 보존하는데 최선을 다해야겠다.

[대동문화 31호, 2004년 가을호]

남점순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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