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민속예술과 미술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던 일본 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를 있게 한 사람은 아사까와 노리다까와 그의 동생인 아사까와 타꾸미이다. 타꾸미는 <조선 도자명고>와 <조선의 소반>(1929)이라는 명저를 통해 조선 도자기와 소반의 아름다움을 규명했는데, 후자의 책에서 그는 이렇게 조선에 충고한다.

"남을 모방하지 말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것을 소중히 하라."

너의 것을 소중히 하라

“소반(小盤)이라는 것은 음식상(床)입니다. 온돌방이 있는 우리의 생활문화에서는 음식을 받쳐올리는 간편한 이동식 음식상이 필요했지요. 따라서 소반은 우리네 생활에 가장 가까운 생활도구였어요.”

나주반장 김춘식 씨(1936~)는 누구에게나 소반의 아름다움 보다 우선 소반이 가지는 문화적 의미부터 이야기를 꺼낸다. ‘밥상머리 문화’가 그것이다.

“문화의 변화란 생활의 필요에서 시작되는 거 아니요. 우리 전통의 좌식문화가 점차 사라지면서, 밥상머리 문화도 사라지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밥상머리에서 가족이 모여 음식을 먹으면서 정을 나누고 세대가 교류하고, 교육이 이루어지던 문화가 사라졌지요. 저는 세상이 이렇듯 어지럽게 된 것은 밥상머리에서 이루어지던 가장 쉽고 간편한 가정교육과 가정문화가 없어지게 된 때문이라고 봐요.”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일상의 고마움을 느끼고, 공손히 어른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고, 자애와 공경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체험하고 알게되는 가정이 모여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가 꽃핀다는 것이 김춘식 장인의 생각이다.

김춘식 장인은 왼손 검지손가락 한 마디가 없이 뭉퉁하다. 나주소반의 맥을 잇는데 평생을 다한 세월의 보고서이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고집스런 눈빛에는 그런 작은 상처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열기가 배어있다.

나주반이 해주반이나 통영반과 함께 명성이 있던 것은 나주가 호남의 문물집산지이자 국제무역항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음식문화의 고장이기도 했던 때문이다. 호남의 물산이 모여 전국 각지로 운송되던 해로문화의 입구이자 출구가 나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화려한 꽃을 피웠던 소반의 아름다움은 구한말과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명맥이 흩어졌다. 김춘식 장인이 나주반과 인연을 맺은 것은 열아홉 살 나던 해인 1955년. 나주 세지에서 소반을 만들던 집안 형님 밑에서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나무를 다루는 일은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나무를 깎고, 대패질을 하고, 못을 치는 일들이 평생의 업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소

나주 영산포로 독립을 하면서부터 상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이 때가 1961년. 스승 장인태(?~1975) 선생을 만났다. 나주반의 숨은 명인이었다. 그에게서 ‘남을 흉내내지 않고 자기 세계를 이룩해야 한다’는 정신을 뼈 속 깊이 새겼다.

“장 선생은 상을 만들어 파는 장사치가 아니었어. 먹고 살기 위해 대충 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마음에 들 때까지 상을 제작하는데 혼신을 다하는 거야. 상을 상답게 만들지 않으려는 장삿속을 용납하지 않았어.”

김 명인은 특히 전통 나주반에 관심을 두었다. 나주반의 원형은 조금 남겨져 있었다. 전남 각지에 나주반이 있다는 소식만 있으면 달려가 본방(원래 모형)을 본따고,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했다. 그런 날은 몇 밤이고를 새면서 이 뽄짝(본뜬 소반 모형)을 만들었다. 문양과 색감과 제작 방식을 고스란히 재현하기 위해 신들린 듯 일했다.

그렇게 작업한 재현품들이 지금도 창고 하나 가득 쌓여있다. 그것은 아직도 자신의 나주반 재현을 위한 집념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 작품은 내가 보면 아직도 멀었어요. 그래서 하루라도 연장을 놓지 못해요. 자기 작품은 자신만이 알아봐요. 그것은 속일 수 없지요.”

나주반은 세상에 다시 그 자태를 드러냈다. 1986년 11월 전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4호 나주반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나주반의 맹맥은 그렇게 해서 이어지게 된다.

나주반의 특징은 단순한 형태이면서 견고하다는 것이다. 잡다한 장식이나 조각이 없다. 부드러운 광택과 단아한 안정감 그리고 여유가 있는 형태미가 특징이다. 소반 가장자리를 흠이 없이 매끄럽게 결을 지어 그릇이 흘러내리지 않으면서도 남은 음식찌끼를 처리하기에 좋다. 이것은 남도의 음식문화에서 태어난 아름다움이기도 하고, 남도민의 정서와 지혜에서 나온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나주반에는 4각반, 12각반, 호족반, 단각반원반, 일주반, 당초문양반, 찻상, 선비상 등이 전해오는데 보통 말하는 나주반은 보편화된 반상인 4각반이다.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버드나무를 주로 사용해 만든다. 잘 휘어지는 버드나무는 운각(구름 모양의 새김)에 알맞다. 상은 보통 상판, 변죽(상의 모서리), 반각(상다리) 부분으로 나누어 작업한다.

“장인은 나무의 결과 숨을 아는 사람이야. 나무를 다룰 줄 아는 것은 3-4년이면 돼. 하지만 나무의 결과 숨을 손을 통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지.”

변죽 울리지 말고 복판으로 가라

판에 변죽을 대고, 족대에 도래송곳으로 구멍을 낸다. 다리에 연결된 촉에 쐬기를 질러 다리를 붙이고, 운각해서 접합한다. 상의 형태가 완성되면 섬세하게 옻칠을 하고, 사포로 다듬어 완성한다. 그러나 이것은 공정상의 이야기일 뿐 나주반장은 이 과정의 하나가 잘못되면 무조건 상을 깨버린다. 그러니 공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상을 세는 단위는 나뭇잎을 셀 때처럼 ‘한 닢, 두 닢’ 하는데, 일년 이상 나무를 잘 말려 준비한 이후에도 한 닢 만드는 데 사흘이 걸린다.

문화재가 된 이후에도 많은 고통이 있었다. 부도를 맞은 적도 많고, 작업장이 홍수에 휩쓸려가 재기하기 힘들 정도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굴하지 않았다. 알지만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힘든 일이 문화이고 전통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힘겹게 그 뿌리를 쥐고 한 평생의 자기 집념을 불사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 늙어서 할 일이 있다는 이것이 첫째 즐겁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나를 보고 염려해주는 사람이 있어 즐겁고, 자식이 나를 이어 나주반의 전통을 이어주는 기쁩니다.”

넷째아들 김영민(34) 씨가 작업실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그러나 김 명인은 쉬지 않는다. “전통의 명맥이 지켜지려면 장인의 작업이 계속 이어져야 가능한 것이 아니지요. 모든 국민들이 전통을 아끼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전통을 죽고 맙니다. 그런 날까지 나는 죽을 때까지 연장을 놓지 않는다 그 말이오.”

김 명인의 당찬 목소리에서 자기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장인정신을 읽게 된다. 변죽(그릇이나 상의 가장자리)을 울리지 않고 한복판을 울리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당당함이다.

[대동문화 31호, 2004년 가을호]

백승현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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