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칸느가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긴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놀라운 것은, 3시간의 상영 시간 동안 아델(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의 얼굴 클로즈업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클로즈업의 미학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은, 영화의 표현에 있어서 얼굴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소재라도 되는 양, 압도적인 ‘얼굴의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것이다. 이로서 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의 얼굴은 영화적 공간이 되어 무궁무진한 표정의 전시장이 되는 것이다.

무궁무진한 얼굴의 스펙터클 전시

그렇다면, 표정의 다양한 변화를 담아내기 위한 이야기는 어떤 것이 좋을까. 그것은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사랑과 이별이라는 인류 보편의 이야기가 안성맞춤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감정의 파고는 심하게 요동치기 때문이다. 이 사랑 이야기를 취하면서 감독이 고민한 것은, 이성의 사랑이 아닌 동성의 사랑을 그려냄으로서 식상함을 피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델과 엠마(레아 세이두)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서로에게 끌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가고, 온 몸을 탐닉하는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되며, 서로의 다름에서 생겨난 균열과 집착, 이별 후에 찾아오는 아픔과 미련 등 말 그대로 사랑의 전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렇게 케시시 감독은, 사랑의 기쁨과 슬픔으로 인해 파생되는 얼굴의 변화를 고집스럽게 추구했던 것이다.

무궁무진한 얼굴의 스펙터클 전시

한데 이 ‘얼굴의 스펙터클’만 가지고는 세계적 권위의 최고상의 주인공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감독은 이들이 서로에게 끌리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계급의식에서 찾으며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보여지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감독은, 연인들이 서로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을 애써서 마련한다. 아델이, 엠마의 집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자유스런 집안의 분위기다. 엠마의 엄마가 남편과 헤어진 후 새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 역시 여유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엠마는 그런 프리한 환경에서 그림을 비롯한 문화 예술을 향유하며 교양을 쌓았을 것이다.

호소력 강한 격정 멜로 영화

이에 반해, 아델의 집은 서민적이다. 밥을 먹으면서 시끌벅적한 TV쇼를 즐겨보는 것부터가 그렇다. 여기에다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엠마에게, 아델의 아빠가 늘어놓는 이야기는 세속적인 천박함이 묻어난다. 그는 엠마에게 예술은 돈이 안 되니 먹고 살길을 구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독은, 두 가정을 비교해서 보여주며 아델과 엠마의 계급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아델의 엠마에 대한 열등감은 파티 장면에서도 확인된다. 피카소밖에 모르는 아델은, 엠마와 그 친구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그림 주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대화에 끼지 못하며 소외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인 장벽은, 뜨겁게 타올랐던 사랑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케 하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렇게 계급에서 오는 차이가 이들을 갈라놓게 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 말고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 명제를 영화 속에 대입시키며 텍스트에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것도 이 작품의 미덕이다.

엠마는 자신이 고교시절 읽었던 사르트르의 구절들에서 삶의 방향을 설정한다. 특히‘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인간의 본질이 결정되어 있다면 개인은 다만 그 결정에 따라 살면 되지만, 본질이 결정되어 있지 않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존의 존재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전언일 것이다.

이에 영향 받은 엠마는, 본질에 앞서는 자신의 실존을 실천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본질론적 문제가 아닌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우선시하는 것이 엠마의 태도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엠마는, 인간적인 정이 아닌 실리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별 후에 다시 만난 카페의 대화에서, 엠마의 입장은 확인된다. 아델이 엠마에게 묻는다. “새 여자친구 리즈(모나 월레이빈스)와의 섹스는 어떠냐.”고. 이에 대해 엠마는 리즈에게서는 육체적인 사랑보다는 정신적인 만족을 얻고 있음을 내비친다.

화가인 리즈는 아델이 채워주지 못했던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엠마에게 해주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엠마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줄 뮤즈가 아델에서 리즈로 이동했음이 확인되는 순간인 것이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퇴색하지 않는다

그렇다. 엠마는 자신의 실존이 중요했기에, 아델의 외도를 문제 삼아 관계를 정리했던 것이다. 그 번민의 시간을 통과했기에 엠마는 자신의 전시회를 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아델이 등장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 아델은 파란색의 원피스를 정성스럽게 차려입기도 했다. 이 파란색은 엠마와 사귀고 있을 때, 엠마가 머리색으로 하고 있었던 색깔이다.

아델이 아직도 엠마를 그리워하고 있음에 대한 시각적 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델은 엠마의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을 재차 확인한다. 아델의 삶을 온통 푸르게 물들였던 엠마의 머리색은 더 이상 푸르지 않고, 전시된 그림에서도 색의 변화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결국 아델은 과거의 지워질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으되, 예전의 관계로 회복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는 것이다.

대동문화 81호 [2014 3,4월호]

조대영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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