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내게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와 같은 음악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뭔가가 생겨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말이다. 내게 있어 재즈란 애호가들 사이에 회자되었던 이른바 ‘명반’이라고 일컬어지는 음반 몇 개를 소장하고 가끔 듣는 정도의 음악이다. 사실 이 정도의 노력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내게 몇 해 전 재즈 음악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이 추천해준 뮤지션이 있었다. 그리고 내게 건네준 음반 한 장. 기타리스트 짐 홀(Jim Hall)의 ‘Concierto’였다.

귀와 몸을 음악에 맡기세요

원래 짐 홀이 40대 중반이었던 1975년에 발표한 음반인데, 1997년에 디지털 사운드 리마스터링(Digital Sound Re-mastering : LP를 CD로 디지털 복각)한 음반이었다. 그가 내게 짐 홀의 음반을 건네주면서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귀와 몸을 맡기세요. 그럼 음악이 들립니다. 그리고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을 난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덕분에 기타리스트 짐 홀을 알았지만, 그의 음악은 아직도 내겐 ‘재즈’로만 읽힌다. 그게 내공의 차이인지, 관심과 열정의 방향이 달라서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음악이란 것이다. 분명 같은 음악이지만 항상 다른 음악이다. 그게 재즈의 매력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기도 한다.

기실 재즈란 뮤지션이 연주하는 순간의 음악이다.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연주해도 감동과 느낌, 질감과 공기, 연주자의 감정과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즈 음반이란 그저 한 순간의 버전 하나를 기록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최고의 순간을 기록한 음반을 듣는다는 것은 비록 라이브는 아닐지라도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즈음 음악을 드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처럼 음악을 듣는 사람도 들을 때마다 감정과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음악이라도 감동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짐 홀의 음악도 내겐 그런 음악이지만 여타의 기타리스트들과는 조금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을 반복된 청취로 말미암아 느끼게 되었다.

지루하지만 세련된 연주의 매력

짐 홀은 기존의 비밥 재즈 기타의 정수를 총망라해 학구적인 접근을 취함으로써 재즈 기타의 교과서와 같은 존재로 자리해왔다. 그는 100여년이 넘는 재즈의 역사에 있어서 찰리 크리스찬, 장고 라인하르트, 웨스 몽고메리, 조 패스 등과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다.

그의 음악을 처음 듣는 이들은 그의 연주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사실 그게 매력이기도하다. 쿨 재즈(Cool Jazz)에 가장 어울리는 것이 기타 아니던가. 짐 홀은 기타리스트 중 가장 쿨 재즈다운 연주를 하는 뮤지션일 것이다. 부드럽고 유연한 코드 진행과 안정된 프레이징(Phrasing)은 확연히 다른 연주자와 구분 짓게 하는 그만의 장점이다.

해서 많은 연주자들이 그와의 협연을 즐거워하고 존경해 마지않는다. 특히 컴핑(Comping : 다른 연주자가 솔로일 때 받쳐주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연주는 매우 세련되었다. 내가 그의 음악에 매료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짐 홀(Jim Hall)의 ‘Concierto’가 재즈 역사상 최고의 명반에 회자된다는 사실을 불과 몇 달 전까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뭐 창피한 일은 아니니 주눅들 필요는 없지만 위대한 기타리스트에 대해 조금은 미안한 맘이 들었다.

재즈 역사상 최고의 명반의 하나

그런 차에 그가 최근에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다시 그의 음반을 반복적으로 듣고 있는 중이다. 1975년도 작인 ‘CONCIERTO’ 앨범은 재즈 명문 CTI 레이블을 통해 발매되었는데, 쳇 베이커(Chet Baker, trumpet), 폴 데스몬드(Paul Desmond, alto sax), 롤란드 한나(Roland Hanna, piano), 론 카터(Ron Carter, bass), 스티브 개드(Steve Gadd, drums) 등과 같은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했다.

이 음반의 최고의 넘버는 스페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의 ‘아랑훼즈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 2악장을 변주한 곡일 것이다. 리마스터링된 음반에는 7분 정도로 컷돼 있지만 원래는 19분이 넘는 대곡이다. 특히 쳇 베이커의 우수에 찬 트럼펫은 전율이 일 정도다. 그러니 이 곡의 주인공은 역시 짐 홀이다. 몽롱한 짐 홀의 기타는 드라마틱하며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클래식 넘버와 짐 홀의 ‘아랑훼즈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을 비교해서 듣는 것도 재미있는 듣는 작업일 것이다.

내가 재즈를 좋아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짐 홀의 음악 덕분이다. 아직 그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순 없지만, 그의 음악엔 실험과 혁신에 대한 열정과 진정성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을 듣는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행복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대동문화 81호 [2014 3,4월호]

장용석 문화기획가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