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테너 조용갑(44) 씨는 권투 선수 출신 음악가로 유명하다. 2011년 국내 무대에 데뷔할 때 음악보다는 드라마틱한 그의 삶, 특히 권투 선수에서 오페라 테너 가수로 변신한 인생 역전이 더 화제가 됐다.

그는 음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전남 신안 가거도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마쳤다. 그 후 서울로 올라와 신문 배달, 세차 등을 하며 생활하다 열여덟 살 때 권투를 접했다. 3년 후 그는 스파링 상대로 링에 올랐고 프로 무대에도 데뷔했다. 5년 간 9전 5승을 거두며 한국 챔피언 전초전까지 치렀지만 홀연 링을 떠나 새로운 길을 택했다. 성악가로 삶의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 교회에서 그가 부른 성가를 들은 목사가 재능이 있다며 성악 공부를 권유했고, 유학비용까지 후원해주었다. 그렇지만 본인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난 13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그가 걸어온 길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강연을 겸한 공연이 이어져 일정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날도 약속한 시간을 한 시간 뒤로 조정한 뒤 만날 수 있었다.

악보도 읽지 못하던 복서의 화려한 변신

-일정이 빡빡하신 듯합니다. 매일 공연하시는지요?

“지난 9월부터 12월까지 하루 쉬었습니다. 서울, 지방 공식 강연만 연간 300회 넘게 했습니다. 국내 대기업이 초빙한 강연에는 거의 다 응한 것 같습니다.”

그는 ‘공연’이 아니라 ‘강연’이라고 표현했다. 성악가는 대개 성악만 하지만 그는 노래를 할 뿐만 아니라 강연도 한다. 국내에서는 그가 처음 이를 시도했는데 반응이 좋다고 한다.

- 국내 데뷔 당시 ‘복서 출신 오페라 가수’로 화제가 됐습니다. 악보도 읽지 못한 상태에서 외국 유학 결심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주위에서 나이가 많다고 말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꿈을 펼칠 기회가 열렸는데 거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당시 외국에도 가본 적이 없고 비행기도 타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신안 가거도에서 나와 생활하면서 낯선 곳에 적응하는 데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외국에 간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또 힘들게 벌어서 생활하는데 공부만 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만 계셨는데, 나이 먹은 것을 걱정하셨지만 반대는 안 하셨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스스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하다 보니 어머니는 반대를 안 하신 것입니다. 도와주시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듯했습니다.”

-산타 체칠리아 학교에는 유학 1년 만에 합격하셨는데요?

“1997년 1월 15일에 이태리로 떠나 1998년에 산타 체칠리아 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입학 준비를 하면서 한 곡을 선택해 1,000번 이상 불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 곡을 선택해서 부르는데 나는 시간도 없고 기본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또 늦게 시작하여 나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 곡에만 집중한 것이 주효했는지 운 좋게 합격하게 됐습니다.”

산타 체칠리아 학교는 조수미 씨 등 세계적인 성악가를 배출했다. 조용갑 씨는 이곳에서 세계적인 테너 거장 ‘잔니 라이몬디’에게 사사했다.

그는 운 좋다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성실하고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1분, 10분이면 한 곡을 외우지만 그는 10분, 1~2시간이 걸렸고, 또 외워도 금방 잊어버렸다. 그는 두 배, 세 배 더 반복된 훈련으로 이를 극복했다. 그는 하루 8시간 넘게 노래를 불러 성대가 상할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 같은 자세를 그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 결혼 후 성악가인 그의 아내가 매일 10시간 넘게 연습을 하는 그를 보고 너무 많이 한다고 말려 8시간으로 줄였다고 한다.

무한 반복 연습의 힘으로 새 세계 열어가

-한 곡만 잘 불러도 되겠다는 확신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이탈리아어도 서툴렀을 텐데요?

“이탈리아에 도착하니 5년 10년 유학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유학 생활, 음악 학교 등의 이야기를 매일 밤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나니 어떻게 하면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골프, 야구 등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먼저 한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듣습니다. 그 조언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실행하는 것이지요.

이탈리아어는 국내에서 전혀 배우지 못했지만 현지에서 부딪히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나 우리나라 생김새는 다르지만 감정은 똑같습니다. 안 되면 글자를 써서 통하면 됩니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 사람과 함께 방을 썼고, 또 학원도 다니며 배웠습니다.”

-유럽 무대는 2000년 ‘라보엠’으로 데뷔를 했는데요, 학교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일찍 무대에 서신 거네요?

“이탈리아에서는 작은 무대라도 준비가 된 사람만 씁니다. 공연 배우가 아프다든지, 문제가 생겨 출연할 수 없을 때 다른 출연진을 부릅니다. 극장에서 ‘라보엠’ 악보를 보여주며 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당시 나는 준비가 안 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고 그날부터 악보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3시간짜리 공연 악보는 분량이 500쪽에 달했고, 전 그 악보를 일주일만에 다 외웠습니다. 가사, 음정, 박자, 동작, 그리고 상대역 분량까지도….”

그렇게 무대에 선 그는 공연에 몰두하여 열연하다 상대방이 해야 할 바리톤까지도 그가 불러버렸다고 한다. 밤낮으로 몰두해서 연습하니 불가능한 것 같은 일이 이루어졌다. 열정을 가지고 무조건 해야 된다고 마음먹고, 도전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되었다고 했다.

준비한 자만이 미래의 주인공이 된다

-성악을 선택한 후에는 계획을 세워 살아오신 듯합니다.

“목사님으로부터 미래는 준비된 자만이 미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당시 나이가 많고 5년 후원이라는 제약이 있었는데, 이 5년을 어떻게 잘 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안에 학교를 마치고 오페라 무대에 서서 활동하겠다는 꿈을 구체적으로 그렸지요. 5년이다, 나이가 많다, 기본기가 없다, 그런 제약이 있어 남들보다 더욱 노력했습니다.”

유럽 무대에 데뷔한 그는 300여 차례 오페라 주역으로 활약하고 국제 콩쿠르에서 20여회 입상하며 ‘동양의 파바로티’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화려한 유럽 무대를 접고 귀국했다. 귀국 후 2011년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베세토 오페라단이 공연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의 남자 주인공으로 데뷔해 호평을 받았다.

-유럽 생활을 접하고 귀국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 ‘다리’에 문제가 생겨 치료를 했는데 낫지 않아 절단 위기에 처했습니다. 피부암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3일간 정리를 하면서 죽기 전에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했습니다. 내가 후원을 받아 오페라 테너가 되었으니 후원한 것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남은 기간 사람을 키우고 나누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하던 사업까지 정리하고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번호부에서 ‘교도소’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한 후에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또 콘서트를 겸한 강연을 통해 그동안 체험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공연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또 성악에 재능이 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등 8명을 후원한다. 외국 유학까지 보내 자신이 잘 아는 유럽 무대에도 진출시킬 계획이다.

그는 재능 기부와 함께 클래식을 위한 기획사를 운영한다. 클래식 분야에서는 기획에서 공연까지 혼자서 하는데 이를 시스템화하겠다는 것. 여기에 이탈리아 유학하여 유럽 무대에 섰던 자신의 경험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 클래식 음악가들을 이끌고 유럽 순회공연을 하는 모습이 기다려진다.

대동문화 81호 [2014 3, 4월호]

정유철 기자  hsp3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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