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파이>로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며 데뷔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고뇌하는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다. 그가 2년 후에 연출한 <레퀴엠>은, 네 명의 마약중독자를 등장시켜 자기 안에 갇힌 현대인들의 불안 심리를 현란한 테크닉으로 담아냈었고, 최근 작품들인 <레슬러>(2008)와 <블랙 스완>(2010) 역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레슬러>는 자신의 삶과 내면을 스스로 구원하기 위해 링에 오르는 퇴물 레슬러를 담고 있고, <블랙 스완>에서는 발레리나의 강박증을 혼돈의 카오스로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인간의 불안한 마음에 관심이 많은 감독인 것이다.

대홍수, 그리고 타락한 인간 세상에서 살아남은 자

이렇듯, 번뇌하는 인간에 천착해온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이번에도 세계의 종말을 겪는 인간의 선택에 초점을 맞춘다. 창조주로부터 선택받은 자일뿐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자가 겪는 고뇌를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 <노아>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수록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착실하게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금지의 과실을 탐한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 내려온 아담과 이브는 카인과 아벨 그리고 셋을 낳았고,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서 타락한다.

카인의 후예들은 타락한 세상을 이루고, 셋의 후손들인 노아(러셀 크로우)의 가족은 신의 뜻을 구하며 산다. 한편 인간 세상에는 죄악이 만연하고, 창조주는 대홍수로 이를 심판하려고 한다는 것이, 익히 알려진 ‘노아의 방주’와 관련된 일화일 것이다.

하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노아의 방주’ 속 인물들을 극적 긴장감과 주제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재창조한다.

신의 뜻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에서

먼저 주목을 요하는 인물은 두발 가인(레이 윈스턴)이다. 성서에는 카인의 7대 손인 두발 가인이,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살해당한 것이 창조주를 노하게 하여 대홍수라는 재난을 맞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영화는 성서 속의 이 인물을 노아의 반대편인 타락한 인간의 우두머리로 설정하면서 대결 구도를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두발 가인이 내세우는 실존의 논리는, 신의 대리자로서 인류를 멸망시켜야 하는 노아의 맹목성과 비교했을 때 설득력이 있다. 그는 “신은 우리에게 노동을 해 먹고살게 하셨고,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으니 뭐가 문제냐?”며 반문하기 때문이다. 두발 가인은 신의 뜻 대신 인간의 자유의지를 피력하는 인물인 것이다.

노아의 세 아들 중, 둘째 아들인 함(로건 레먼)이 두발 가인을 따르도록 하면서 긴장감을 만들어낸 것도 흥미로운 요소다. 성경에 의하면 노아의 세 아들은 각각의 아내들과 함께 방주에 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영화 속에서는 함이 아버지인 노아에게 짝을 찾아달라고 조르고 이를 묵인하자 반항하는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큰아들인 셈(더그러스 부스)의 배우자인 일라(엠마 왓슨)가 새로운 인류가 될 2세를 잉태시키고 이를 만류하는 노아와 빚는 갈등 국면은, 이 영화의 가장 첨예한 지점일 것이다. 일라가 낳으려는 아이를 노아가 죽인다는 설정이 성경에는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감독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그려 내고 있는 노아는, 신의 대리자로서 인간은 모두 멸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는 자신의 자손을 죽이려고까지 하는 맹목적인 믿음의 대리자인 것이다.

속죄와 구원을 거듭하는 인간의 자리에서

바로 이 지점에서 노아의 고뇌는 극에 달하고, 신의 뜻과 인간의 길 사이에서 번민하는 것이다. 그는 결국 일라가 낳은 쌍둥이 손녀들을 살게 해주며 창조주의 심부름을 완성해내지 못한다. 그리고 노아는 자신이 신의 뜻을 저버렸다며 포도주에 취해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심지어는 술에 취해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는 등 속죄와 구원을 거듭하는 인간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렇듯, 선택받은 인간 노아는 주변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인간이 서있는 자리를 생각하도록 위치 지워졌고, 신의 명령과 인간적인 자비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인간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영화의 구경거리 측면에서 <노아>는 재난 블록버스터를 표방했다. 실물과 컴퓨터 그래픽의 합성을 통해 사각형의 거대한 방주로 들어오는 각종 동물과 조류, 엄청난 규모의 홍수 장면 등을 재현해내며 스펙터클을 전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길을 선택하는 노아의 우주적 고뇌 그려나가

그리고 재미있는 설정 중 하나는, 신이 세상의 빛으로 보냈지만 타락한 인간을 도운 죄로 바위 거인이 된 ‘감시자들’의 존재다. 이 캐릭터는 이 영화가 종교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 내용을 상쇄시켜낸다. 노아의 가족들이 지었다고 나와 있는 거대한 방주를 이들이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는 설정 역시 영화적인 실감을 더하고 있는 재치 있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폈듯이, <노아>는 기존의 창세기의 상당 부분을 새롭게 추가하고 해석하며, 종교적인 서사를 보편적인 서사로 탈바꿈시킨 영화다. 여기에다 노아의 인간적인 고뇌를 덧붙이며, 감독인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인간의 마음을 사유했던 것이다.

대동문화 82호 [2014 5,6월호]

조대영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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