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예로부터 동서를 막론하고 휴식과 휴양의 장소로 숲을 이용해 왔다. 마을 숲은 유년 시절의 가장 멋들어진 놀이터였고 친구들과 함께 매미와 사슴벌레 잡고 술래잡기하면서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의 타임머신이 존재하는 곳이다. 우리들에게 잠시나마 위안과 마음의 평안함을 제공하는 숲은 행복한 삶의 원천이기도 하다.

마을 숲은 오랜 인류의 역사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삶이 축적되어 형성된 문화적 상징물로, 마을의 특정한 장소에 조성되어 특별한 목적 아래 보호되거나 특별한 용도로 활용되어 오고 있는, 마을 문화의 요체이고 마을의 문화가 녹아있는 마을 문화의 구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는 장(場)이다.

물길을 돌려 마을에 복이 깃들게 하다

전남 나주시 다도면 판촌리 고마(叩馬)마을 전통숲은 유별나다. 보통의 마을숲들이 지형적인 결함을 보완하고자 산자락 사이 계곡을 이어주거나 기의 흐름이 완만하지 못한 산자락을 보완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고마 마을숲은 마을 뒤쪽 끝자락 막음창의 병목골에서 흐르는 물줄기와 거룡골에서 흐르는 물이 동네 바로 뒤쪽에서 합쳐진 후 큰 물길을 만들어 마을을 270여도로 마을을 크게 돌아 다시 산자락으로 연결된다.

뒤쪽에서 마을을 향해 내려오는 물살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숲을 조성하였으나, 그 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버리는 것은 아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물길을 다시 마을 앞으로 돌리고, 이렇게 물이 돌면서 많은 곡식을 키우고 가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고마마을 숲은 수령이 300여년 된 느티나무(흉고:583cm.수고:16m.수령:300년), 푸조나무 8주, 팽나무 4주, 말채나무 1주, 쉬나무 8주, 소태나무 2주, 굴참나무 1주, 아카시나무 1주 등 132주가 600m 길이의 줄나무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산초나무, 소태나무, 장구밥나무, 사위질빵, 마삭줄, 댕댕이덩굴, 청미래덩굴 등의 덩굴식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지석강으로 흘러가는 물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으나 그 물이 마을의 복락과 함께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물길을 다시 마을 앞으로 돌린 것이다. 물길을 돌려 수해를 막고, 물길을 다시 돌려 마을의 복락을 머물게 하면서 마을 앞 들판의 곡식을 키운 것이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석축제방과 마을숲을 보호하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정월 열나흩날 밤 11시에 당산제를 지내는데, 동쪽 마을에서는 마을 뒤쪽 마을 숲속에 있는 할머니 당산(봉분)에 제의를 올리고 서쪽 마을에서는 마을 앞 할아버지 당산(느티나무)에 제의를 올린다.

고마마을의 마을숲 노거수의 기능은 지표수와 지하수의 흐름을 느리게 하여 마을우물에는 항상 좋은 물이 넘쳐나게 하고, 마을에는 수리 상승 작용(밤 동안 나무들이 많은 양의 지하수를 흡수한 후 다음날 낮 동안 수분을 증발시켜 공기 중의 수분 함량을 높이고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신선한 산소를 담은 공기를 마을로 공급하는 역할)도 해준다.

소나무 숲으로 띠를 두른 아름다운 마을

광산구 명도동 명곡마을은 경치가 빼어나 신선이 노닐 만큼 풍광이 좋아 대명동천(大明洞天)이라 부른다.

나주 오씨 집성촌인 명곡(明谷)마을은 멀리서 보면 드문드문 색깔 조각이 보일 뿐, 그곳에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짙푸른 소나무숲 때문이다. 긴 소나무숲 ‘띠’가 일품인 곳이 명곡(明谷)마을이다.

“동네를 가려놔야 좋다고 조상들이 마을 입구에 심었다고 그래. 언젠가는 동네 훤하라고 나무 몇 그루를 베었는데 남자들이 많이 죽었다는 얘기도 들었어. 또 그 옆 팽나무가 비 때문에 가지가 부러지거나 상하면 동네에 꼭 안 좋은 일이 생긴다.” 마을 주민들은 항상 이런 이야기를 들려쥔다.

여기 마을숲은 수구막이 기능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논과 논 사이에 둔덕을 마련하여 소나무를 울창하게 심은 것을 보면, 아마도 비보 수림의 용도였던 모양이다. 예전에는 나무가 무성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농로를 내면서 베어냈고, 3년전 볼라벤 태풍에 아름드리 노거수들이 거센 비바람에 쓰러져 듬성듬성한 구석이 있기도 하다.

소나무의 수령은 대개 100~150년 정도로 여겨진다. 소나무[소나무과 소나무(Pinus Densiflora Sieb. et Zucc)]라는 이름은 나무 중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도 을미사변의 주동자이자 매국노인 조중응의 지시에 따라 붙인 일본 이름인 [적송(赤松, Akamatsu)-융희 4년(1910년) 농상공부 대신 조중응의「농상공부 고시 9호-和韓韓名 대조표」에서 비롯되어 지금도 적송이라고 자랑스럽게 부르고 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명곡마을의 자랑인 아름드리 팽나무가 우람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고, 골짜기가 길어 장탄(長灘) 골짜기 깊숙이 자리한 영사재도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팽나무는 관련 단체들의 노력으로 ‘2010-12’라는 표식을 달고 지금은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노거수가 마을의 문화를 키우고!

마을 뒤 죽령산에 옻돌이라 부르는 까만돌이 많아 칠석(漆石)이라 부른다는 칠석동의 옛 모습을 가만히 보면 소가 앉아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지형들은 기가 세고, 소가 움직이면 마을의 기가 빠져나간다는 속설이 있어 이 기운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소머리 앞에 구유 모양의 연못을 만들고 소머리 위에는 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삐를 매놓는 나무의 역할을 은행나무가 하고 있어 옛부터 이 은행나무는 서낭나무로 신격화되어 마을사람들이 매년 정월 대보름 전날 할머니 당산과 뒷산의 할아버지 당산나무에 성대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신격화된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문화가 광주 지역을 대표하는 광주칠석고싸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이다. 또 마을 앞에 부용정(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을 세우고 여기서 지방자치의 기초가 되는 향약을 가장 먼저 시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고싸움놀이는 정월 대보름 전후에 전라남도 지역에서 행해지는 격렬한 남성성을 나타내는 집단놀이로 당산제가 끝나면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누어 용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형상화한 놀이판을 벌인다. 풍년농사를 기원하고 마을 주민들의 대동 단결심이 이듬해 농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풍수적인 면에서는 마을의 거센 가운을 누르기 위한 비보풍수적인 의미가 있다.

부용정을 세운 김문발은 이곳에서 지금의 지방자치제의 기초가 되는 향약을 가장 먼저 시행한 기록이 있으나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

이처럼 독창적인 문화를 키워온 칠석동 은행나무(광주광역시 지정기념물 제10호, 흉고: 약 6,9m, 수고: 약 25m, 수령 약 600년)는 세계적으로 1목, 1과, 1속,1종 밖에 없는 나무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잘 자라는 잎 떨어지는 큰키나무로 암수가 따로 있고 꽃가루 속에는 움직일 수 있는 정충을 가지고 있는 유별나고 독특한 풍매화 나무이다.

은행나무(은행나무과:Ginkgo biloba L)는 중국에서 들어와 우리나라를 거처 일본으로 전해져 유독 세 나라에 수령 1,000년이 넘는 노거수들이 자라고 있고, 약 1억 5천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서 공룡과 함께 살아온 나무로 공룡은 지구상에서 멸종이 되었지만 은행나무는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화석나무이다.

열매 속에 들어 있는 종자가 은백색이므로 백과(白果), 또는 열매의 겉모양이 살구와 비슷하기 때문에 은빛 살구란 의미로 은행(銀杏)이라 부르고 있으며, 중국 춘추전국 시대 노나라의 사상가이자 학자인 공자는 항상 제자들과 은행나무 아래에서 글을 읽고 학문을 가르쳤기에 행단(杏壇)이라고 하였기에 은행나무와 공자를 동일시하였고 공자를 모시는 향교에는 공자를 상징하는 은행나무를 반드시 심고 길렀다.

이렇듯 은행나무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손을 빌어 번식을 했기에 자연 상태에서는 스스로 번식을 하지 못하고 인간들이 생장을 도와주지 못하면 다른 나무들과의 생존 경쟁에서 이겨내지 못하고 모두 고사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민가 주변에서는 은행나무를 쉽게 볼 수 있지만 나무들이 밀집한 숲속이나, 야산에서는 스스로 자라는 은행나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가 부르는 은행(銀杏)나무 이름은 중국의 한자 이름이다. 은행나무의 처음 이름은 압각자(鴨脚子)였다. 이는 은행나무의 잎이 오리의 발을 닮아서 붙인 것이다. 또 다른 이름인 공손수(公孫樹)는 열매가 손자 대에 가서야 열린다고 붙인 것이다. 그만큼 이 나무의 성장이 더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거수가 위인을 만드는 대지마을 마을숲

남구 대지동 대지마을(상촌, 중촌, 하촌)에는 등룡산(해발 112m)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칠봉이 있는 등룡산은 일곱 봉우리가 있어 예로부터 7명의 고시합격자가 나올 것으로 주민들은 믿고 있다.

세 개의 자연부락 입구에는 광주광역시 보호수로 지정된 아름드리 느티나무[느릅나뭇과:Zelkova serrata Makino]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정자도 자리하고 있다.

그중 하촌 마을은 등용산 자락의 용머리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마을로 광주광역시농업기술센터가 올해 ‘농촌건강 장수마을 사업’을 선정할 정도로 장수촌이다. 더불어서 시 보호수이면서 당산나무인 느티나무(흉고: 706cm, 수령 약 450년 정도)의 위용도 대단하다.

중촌마을 입구에서 자라는 느티나무(흉고: 600cm, 수령 약 400년 정도)도 광주광역시 보호수이다. 상촌 마을 입구에는 세 그루의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한 그루의 팽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 당산나무의 기운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동량지재(棟梁之材)의 기운을 받았기에 마을에 인재가 끊임없이 나온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전국에 자생하며 가을에 노랗고 빨갛게 물드는 단풍이 매우 아름다운 잎떨어지는 큰키나무로 정자목으로 가장 많이 심는 나무이다. 느티나무의 한자명은 중국 한자에는 없는 나무 ‘목(木)’ 변에 10장생 중의 하나인 거북 ‘구(龜)’자를 합쳐 느티나무 ‘귀(櫷)’ 자이다. 느티나무라는 이름은 노랗다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 숲속에서 살아왔고, 문화 역시 숲과 함께 했기에 숲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숲 안에서 자라는 나무를 신목으로 정한 것은 신목(神木)은 지상과 천상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우주 나무로 마을 사람들의 신성한 숭배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남도의 나무는 우리 나도 땅과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목격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무를 이용하게 된 역사와 나무에 기대어 살아온 역사를 나이테에 담고 있다. 남도 나무들이 우리와 함께 해온 세월을 잊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김세진 환경부 환경교육 홍보강사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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