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그러니까 2010년, 한국영화는 걸출한 영화를 한 편 탄생시켰다. 촌스러운 제목이 정겨운 <아저씨>가 바로 그 영화다. 한국형 느와르를 표방한 <아저씨>는 차태식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한 원빈의 매력이 십분 발휘된 영화로서, 누구보다도 여성 관객들의 넋을 빼놓으며 그해 한국 영화의 정상에 올랐다. 설경구가 주연했던 <열혈남아>(2006)로 힘들게 데뷔전을 치렀던 이정범 감독의 회심의 일격이었다.

영화 <아저씨>의 동생뻘 영화

그리고 4년이 흘렀고, 이정범 감독은 또 다시 한국형 느와르를 표방한 <우는 남자>로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는 남자>는 자기 복제에 함몰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복제라고? 그렇다. 원빈은 장동건으로 대체되었고, 원빈처럼 비극적인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장동건은 소녀 대신에 여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이 <우는 남자>의 기본 골격이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이야기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을 설득시켜내는 힘이 있었다. 아내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던 태식이, 옆집 소녀를 괴롭히는 악당들을 처단하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는 빤하긴 하지만 공감대를 형성시켰기 때문이다.

한데, <우는 남자>는 관객들에게 공감 가는 이야기를 펼치지 못하며 좌초하고 만다. 냉혹한 킬러로 살아온 곤(장동건)은 타깃을 제거하던 중 예상치 못한 실수로 소녀를 죽이게 된다. 곤은 자신의 삶에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되지만, 조직은 그에게 또 다른 명령을 내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손으로 암살해야 하는 모경(김민희)을 만나게 된다.

영화는 바로 이 순간 모성(母性)의 정서를 도입한다. 곤이 실수로 죽인 소녀는 모경의 딸이고 모경이 그 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장면들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이 설정을 기본으로, 곤이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고 자라났다는 이야기가 플래시백으로 끼어들며 이 영화는 모성의 드라마를 구축한다.

펄떡펄떡 살아 있는 액션의 진수

<우는 남자>는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았던 곤의 상처를 딸을 잃은 모경의 모성애와 연관시켜, 곤이 모경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에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직업이 킬러인 남자가 자신이 실수로 죽인 소녀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조직을 배반하고 동료들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는 것은 쉬이 납득할 수 없다. 이는 곧 이 영화의 치명적인 결함이 된다.

사실 <아저씨>에서 태식이 소미(김새론)를 구하기 위해, 악의 소굴에 뛰어든 것도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태식이 처단해야 하는 인간들은 악의 덩어리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을 잔혹하게 처리하는 장면들에서 관객들은 주인공의 감정에 동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는 남자>에서 곤이 조직과 동료들을 배반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고, 조직원들 역시 관객들의 분노를 살만한 행동이 없다는 점에서 곤의 행동들은 방향을 잃고 헤매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곤과 차오즈(브라이언 티)가 나누는 대사에서 그 실마리가 찾아지긴 한다. 곤과 의리가 두터운 차오즈가 묻는다. 조직을 배신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타깃을 살리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곤이 대답한다. “조금 피곤해서…”라고. 이 대사는 곤의 행위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허한 말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이야기의 설득력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갈리는 두 편의 닮은 꼴 영화는, <아저씨>가 원빈의 매력이 도드라져 보이게 한 결과를 낳았다면, <우는 남자>의 장동건은 이름값에 걸맞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우는 남자>는 이렇게 허약한 이야기의 기반위에 화려한 액션이라는 탑을 쌓아 올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저씨>가 액션의 차별화를 위해 브루나이 실라트, 필라피노 칼리, 아르니스 등 아시아 지역의 전통 무술을 혼합해, 절도 있고 빠른 동작이 돋보이는 맨몸 액션을 선보였다면, <우는 남자>는 총기들이 화염을 내뿜는 액션으로 진부함을 탈피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장감이 느껴지는 사실적인 액션을 펼쳐내고 있는 것까지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야기의 맥락과 상업 영화의 운명

이 영화에 있어서 액션의 포인트는 산탄총 등으로 무장한 총기 액션이라는 점이다. 특히, 단층 아파트의 동과 동 사이에서 벌어지는 총기 난사 액션신은 액션의 볼거리나 스릴감에서 인상적인 구석이 있다. 여기에다 대형 빌딩인 벤추라 홀딩스 장면에 쏟아 부은 대규모의 물량 공세는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고자 했음이 확실하다. 이렇게 이 영화는 액션의 강도만 놓고 본다면, <아저씨>보다 한걸음 더 내딛기 위해 공들인 구석이 있는 영화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시 이야기의 중요성으로 귀결된다. 곤의 심경 변화에 대한 동기가 미약하다 보니, 곤의 행동 궤적에 동반되는 액션 연출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성들인 액션 장면들이 이야기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공허감을 안겨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영화의 결론은 내려진 셈이다. 그렇다. 결국 영화는 ‘이야기 산업’이다. 제아무리 빼어난 ‘스타’도, 공들여 찍은 ‘액션 신’도 좋은 이야기가 뒷받침 되지 않고는 빛이 날 수 없음을 <우는 남자>는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조대영 광주독립영화협회 대표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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