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태어나, 가족의 호기심 많은 둘째 아이로 자랐다. 유난히 노래와 춤을 좋아하던 언니와 나는 항상 가족의 화목한 분위기를 이끌었고, 그런 재주를 더 키우시려고 엄마는 나를 무용학원으로 데려가셨다.

그렇게 박은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전통무용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때가 내 나이 7살 때였다. 박은하 선생님은 그 시대 이매방류의 전통춤을 열성으로 가르쳐 주셨다. 다양한 춤들을 접하게 되어 호기심 많은 나로서는 어린 나이지만 모든 것이 흥미롭고 즐거웠다. 춤의 가치를 깊이 있게 알지도 못하면서 마냥 즐겁기만 했다.

각종 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냈고, 남도 국악제라는 그 시대 가장 큰 국악 콩쿠르에서 최고상까지 받게 되었다. 겨우 초등학교 5학년에 불과했지만 난 아직도 그때의 흥분과 감격을 잊을 수 없고 상금으로 10만원을 타게 되어 선생님께 내복을 사드린 기억도 새롭다.

춤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도 화려한 무용의 날갯짓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한국 창작 신무용이었다. 나는 그 춤을 보자마자 심장이 떨렸고 그 세계에 빠져보고 싶은 충동이 생겨났다. 그래서 선생님 곁을 떠나게 되었다. 바로 찾아간 곳은 박금자 무용 학원이었다. 발레 위주의 학원이긴 했으나 한국 무용 분야에도 쟁쟁한 선후배들이 많이 무용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해볼 각오로 새로운 도전을 했으나 중고 시절 내내 슬럼프에 빠져들게 되었다. 내 신체가 무용을 하는데 미흡하다는 자격지심이 생겨나면서 자꾸 자신이 없어지고 대회 성적도 2~3등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평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뮤지컬 배우처럼 연예인이 되고 싶은 생각으로 서울로만 가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로 조선대학교 무용과로 진학을 하게 되었고 입학을 하고 나서도 대학 생활이 그리 흥미롭지 못했다. 졸업 후 딱히 취업도 되지 않자 점점 춤꾼의 길과는 멀어지고만 있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후배를 만나게 되었는데 광주시립국극단 무용 오디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절친이었던 학원 선배의 도움으로 광주시립국극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시 무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섰는데, 여기는 신기루 같은 곳이었다. 어릴 때 내가 느꼈던 그 흥분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모든 것에 호기심으로 가득차서 일했다. 무용 동작 하나하나에도 즐겁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동안 방황이 심했던 탓에 춤의 근본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내 춤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절실히 스승이 필요했다. 수소문 끝에 전라도의 명인 김덕숙 선생님을 2001년도 겨울에 만나게 되었다. 첫 인상은 너무도 무서웠다. 풍겨져오는 그 카리스마가 나의 기를 확 꺾어버렸고, 스승 앞에 나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품격 있는 전통춤의 학습 깊이와 방법에 매료되어 나는 또다시 흥분의 도가니 상태가 되었다.

전통은 진리다, 인생의 진리가 펼쳐진다

내가 어렸을 때 만났던 이매방 선생의 춤이 이렇게 깊이 있는 춤이었는지를 그제야 할게 되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선생님의 따뜻한 인품마저도 나를 사로잡았다. 시립국극단에 있는 동료들도 선생님의 춤을 만나고 싶어 했고, 모두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의 춤 인생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셨다.

항상 선생님의 가르침 속에서는 이매방 선생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존경심이 느껴진다. 그 마음이 너무도 지극함을 느끼고 전통의 숨결을 그대로 전수해 주시려는 진실이 느껴져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스승은 특히 승무는 전통춤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말할 만큼 고귀한 춤이라고 강조하신다. “그래서 함부로 임할 수 없다.”는 마음인 것이다. 이 춤을 추기 위해 장삼을 입고 북 앞에 엎드려 있을 때에도 마음의 무게가 느껴지며 장삼 끝자락의 여운에는 무언의 인생이 묻어난다.

선생님이 우직하게 한길만을 걸어오신 춤의 세월을 감히 제가 뒤따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선생님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새롭게 생겨나고 드디어 나도 춤의 깊이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뿌듯함이 자라나고 있다. 지금은 전통춤의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보면서 안무자의 길도 걸어보려 한다.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한명선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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