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나라에 욕심 많은 임금이 있었다. 하루는 거짓말쟁이 재봉사와 그의 친구가 임금을 찾아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하며, 그 옷은 입을 자격이 없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임금은 기뻐하며 작업실을 내주고, 신하들에게 두 사람이 작업하는 것을 살피라고 명령한다. 아무리 보아도 신하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리석음이 탄로 날까 두려웠던 신하들은 모두 멋진 옷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재봉사는 임금에게 옷이 완성되었다며 입어볼 것을 권했고, 옷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임금 역시 어리석음을 숨기기 위해 옷이 보이는 척 한다. 결국 임금은 입을 자격이 없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새 옷을 입고 거리 행진을 하고, 그 모습을 본 한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소리치자, 그제야 모두 속은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안데르센이 1837년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통해 발표한 작품이다. 권력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꼬집어 표현하고 있다.

진실하고 싶은 날, ‘열화당’ 대표 이기웅 씨는 옥과 미술관을 찾고 싶어한다. 옥과미술관은 그가 마음으로 좋아하는 곳이다. 거기 갈 때마다 그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이면으로 꿈꿨던 진실한 세상과 만나게 된다.

아산 조방원, 그 진실의 산과 마주치다

남도 화단의 큰 어른이었던 아산 조방원 화백이 5월 9일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이기웅은 아산 선생의 흔적이 있는 곳, 곡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옥과면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옥과 미술관이다. 한국화가 고 아산 조방원 (雅山 趙邦元) 선생이 예술 활동을 하면서 평생 동안 수집한 6,801점의 소장품과 부지 4,263평을 1988년 전라남도에 기증해 설립된 곳이다. 넓은 전시 공간에는 서첩과 서찰, 목판각이 전시되어 있다. 아산의 소장품들을 보고 있으면 그 해 아산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모든 순간에 한 마음을 지키면 그것이 곧 선(禪)이야. 생활이 곧 선인 거지. 그림도 마찬가지이야. 그림 그릴 땐 모든 잡념에서 벗어나야 해. 가장 순수한 마음의 상태를 수묵으로 옮기면 그것이 곧 묵선이지”-《한겨레신문》 2004. 12. 22. 기사 중-

아산 선생의 순수함이 그의 눈빛에도 축축하게 젖어 온다. “아산 선생은 서화가로 호남에 맥을 이은 분입니다. 그림과 글씨만큼 글도 대단하지요. 그 분의 호는 감동입니다. 우아하다 아(雅)라는 뜻에서 말 못하는 벙어리 아(啞)로 바꾸셨습니다. ‘할 말이 없는 산이다’라면서 쓰셨지요. 5·18 이후에 바꾸셨어요.” 이유를 구구절절 듣지 않아도 그 뜻을 알겠고, 마음이 아프다.

“자주 못 와서 서운했는데 아산 선생께서 떠나셨다는 핑계로 방문한다는 것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이기웅에게 아산 선생은 예술에 대한 진지함으로 기억된다. 그 중에 하나는 가치다.

자기반성이 깃든 책이 진짜 책이다

말과 글이 넘치는 이 세상, 모든 글의 원천이 되는 책이 있을까? 그는 48년 동안 책을 만들고 공급하는 일에만 몰두한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책이 제 구실 못한다는 문제의식에 괴롭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은 이미 인간을 망가뜨리는 도구가 됐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실 때 했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내 책 모두를 절판하라, 내가 쓴 말 모든 게 다 거짓이고 허위다.’ 인간이 어찌 이리 아름다울 수 있나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책다운 책이 무엇일까. 일기이건 자서전이건, 자기 반성을 위한 글쓰기라면 책다운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기웅은 굳이 자서전이 아니더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잘 만든 책이라면, 참된 자서전의 가치와 진실에 가깝다 생각한다. 그는 사람이 모든 것에 있어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진실을 말하고 싶은 사람이 그다. 진실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 무의미의 행진곡이다. 의미 없는 행진곡,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사람의 희망 또한 자라나지 못한다.

“책을 보게 하려면 요체들만 말해야 합니다. 얇고 짧은 글로 이루어져야 하지요. 독자들도 그것을 바랍니다. 작게 만들더라도 귀하게 만들면 됩니다. 일자리 탓을 할지라도 말입니다. 일자리는 농촌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나의 지론입니다. 다른 쓸 데 없는 일은 줄이고 밤에 하는 일도 줄이고 생산하는 일에 많이 투여해야 합니다. 기계로 생산해 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정성을 들이는 농작물들을 많이 생산해야 합니다.”

욕심은 영원히 나락을 부른다

사람의 노동력은 뻔하다. 기계로 하다보면 모든 것들의 본질이 파괴될 수도 있다. 일시적으로 물건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결국 관리하기 위해서는 농약을 뿌려야 하고 또 방부제를 섞어야 한다. 창고를 크게 지어야하고 그러다보면 남아서 버리는 일이 많아진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왕창 돈을 벌자는 식으로 나아가면 그 끝에 나락이 있다. 세월호도 다르지 않았다. 세월호를 보며 그는 무서워진다. 욕심이 있는 한 욕심이 불러온 사고들이 많아질 것이다.

“내가 잘 나서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에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슬프고 힘듭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게 너무 부끄럽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인간은 다 똑 같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압축 성장하기도 했지만 짧은 시기에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급한 것도 사실입니다. 내심 불안했습니다. 내 얼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서로 피해를 주는 일이 많잖아요? 지금이라도 서로 따뜻하게 이야기하고 쓰다듬어주어야 합니다.”

그가 느끼는 광주도 다르지 않다. 내심 불안하다. 그래서 늘 <벌거벗은 임금님>을 떠올린다. 그는 광주를 좋아한다. 그가 보았던 광주는 아름다운 고을이었고, 상처도 많은 도시였다. 그 안에 진실도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는 오늘도 광주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벌거벗은 임금님>을 꺼내 읽길 바란다.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한경숙 기자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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