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짝사랑을 심하게 앓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아주 중증이다. 이런 현상은 나이 40 이후에 처음인 것 같다. 10년 전 쯤 ‘나윤선’의 경우처럼 매일 심한 가슴앓이를 하면서 심상(心象)에 진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래도 피곤한 육신과 빈곤한 정신에 ‘최고은’, 아니 그녀의 음악은 더할 나위가 없는 청량제이다. 난 지금 대한민국 뮤지션 ‘최고은’의 음악과 짝사랑 중이다.

그녀의 음악을 처음 들은 건 차 안이었다. 무심코 틀어 놓았던 라디오에서 이름과 제목조차 새겨듣지 않았던 그저 그렇게 들려오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초 사이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전율을 경험했다.

그것은 무료한 일상을 깨부수는 소리, 즉 ‘음악’이었다. 최고은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악이 나왔다, 아니 제대로 된 ‘가수’가 나온 거다.”라고 미친 듯이 중얼거리곤 한다. 편견이겠지만 아주 즐거운 편견이다. 그녀는 내게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런 감정을 선물한 것이니까.

잃어버린 그리움과 추억들이 밀려왔다

그녀의 보컬은 시간을 정지시키는 마력이 있다. ‘대한민국에 이런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아직 있었나?’라는 의문으로, 노다지를 만난 것 마냥 설렘으로 그녀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녀의 이름은 ‘최고은’이었다.

광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황승옥 명창에게서 판소리를 배웠다고 했다. 판소리 전공으로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면서 소리를 그만뒀다고 한다. 그 후 대학에서 프랑스 문화를 전공하고, 교내 록밴드에서 활동을 하였으나 어쿠스틱 기타를 치면서부터 포크 음악을 했다는 게 알려진 그녀의 이력이었다.

지난 2010년 EP(Extended Play, 싱글 음반과 정규 음반의 중간에 위치하는 음반) 앨범인 ‘36.5℃’를 내면서 정식으로 음악계에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디지털 싱글 1장과 EP 앨범 3장을 내며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있다. 최고은의 노래 대부분은 가사가 영어로 쓰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장필순이 영어로 노래하는 듯한 착각이 인다. 아니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의 보컬 돌로레스 오라이어든(Dolores O'riordan)의 한국판 재림이랄까.

이것도 순전히 나의 착각이지만 그녀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수많은 착시 현상에 시달리는 것도 즐겁기만 하다. 그만큼 그녀의 음악 곳곳에는 아이리쉬 포크, 혹은 스코틀랜드 포크의 흔적이 배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결코 그것을 모방하거나 흉내는 것이 아닌, 그녀만의 소리로 그녀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랠 한다는 것이다.

해서 그녀의 음악엔 남들과 차별화된 콘텍스트가 있다. 대중음악 한 가운데 판소리의 진한 프레이즈와 그루브(Grooove)가 스며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이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뮤지션 최고은을 구별하는 매력이기도 하다.

당당한 보컬과 기타 하나의 승부사

분명 떼로 우르르 몰려나와 음악을 하는 것인지 엔터테인먼트를 하는 것인지 모르는 수많은 ‘가수들’ 사이에서 분명 그녀는 돋보이는 존재이다. 사실 작금의 한국의 오버그라운드 대중음악계, 즉 기획사와 K-Pop 아니면 기타 등등의 음악으로 분류되는 현실 속에서 기타 하나와 오로지 보컬로만 승부하는 음악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긴 하다. 그것도 기획사 소속도 아니고 맨땅에 헤딩하는 무대포 정신으로 무장하고 말이다.

그런 순수함 때문에 세계 최대 음악 페스티벌인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로부터 초청 받아 한국인 최초로 무대에 오른 건 그야말로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은은 글래스턴베리 무대에서 ‘Eric's Song’을 비롯해 미발표곡인 ‘아리랑’과 ‘뱃노래’ 등 한국의 정서를 전달했다.

글래스턴베리 무대 중 최고은이 오른 실버헤이즈(Silver Hayes)의 프레스 총괄 담당자인 샐리 프리먼은 이번 축제의 베스트 공연 3팀으로 미국 가수 ‘돌리 파튼(Dolly Parton)’, 아일랜드 출신의 밴드 ‘코달라인(Kodaline)’과 함께 ‘최고은’을 손꼽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12년에도 독일 음반사 ‘송즈 앤 위스퍼스(Songs & Whispers)’가 최고은을 초청하여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를 오가며 공연을 하기도 했다. 최고은의 음악은 이 땅에서보다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왕성한 해외 초청 공연 활동과 그간 내놓은 EP 앨범의 숨은 인기에 힘입어 올 11월경에 데뷔 4년만에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한다고 한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새 앨범이 이렇게 기대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음악을 구분 짓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음악이 있는데, 하나는 들리는 음악이고, 또 하나는 스스로 다가오는 음악이다. 그녀의 음악은 내게 그렇게 다가온 것이다.

대동문화 84호 [2014 9,10월호]

장용석 문화 기획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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