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중에 퓨전 요리라는 것이 있다. 동서양의 요리 재료와 맛, 색을 조화시켜 전혀 새로운 맛을 창조해내는 요리를 말한다. 음식에 비유하긴 좀 그렇지만 ‘군도: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는 바로 이 퓨전 요리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영화다.

이 말은 결코 어불성설이 아니다. ‘군도’는 영화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요소가 혼성모방(패스티시-pastish)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뼈대부터가 그렇다. 군도(群盜), 다시 말해 도적떼가 백성의 편이 되어 탐욕이 많고 부정을 일삼는 무리들을 처벌한다는 이야기는, 조선의 3대 의적들인 장길산(張吉山)과 홍길동(洪吉童) 그리고 임꺽정(林巨正)의 이야기를 기초로 했음을 우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독은, 이 억압받는 다수의 민중이 소수의 기득권을 처단한다는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대로 전개시킨다. 그것은 자신이 좋아했고, 영향 받았던 영화와 장르들을 재배치시키는 것을 통해서이다.

서부극 같은 조선 액션 활극

도둑의 무리가 황야에서 말을 타고 뿌연 흙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도입부부터 이는 분명해진다. 그러니까 윤종빈 감독은 세르지오 레오네가 할리우드 서부 영화를 이탈리아로 가져오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주했던 마카로니웨스턴을 한국적으로 변용 적용시키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마카로니웨스턴풍의 음악이 줄기차게 울려 퍼지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이밖에도 감독은 자신이 좋아했던 장르 영화들의 관습들을 체제에 대한 불만의 이야기에 녹여내며, 친숙한 요소들이 모여서 새로운 맛이 나도록 고민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영화 말미에 도치의 기관총 난사 장면은 세르지오 코르부치의 ‘장고’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가 의식적으로 연상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윤종빈 감독이 ‘장고’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군도’는 영화광 감독의 영화 유희를 만날 수 있긴 하지만, 다수의 관객들에게 감정의 정화를 선사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이 영화가 모순되는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에서 기인한다.

에피소드들의 연결고리 헐거워

도치(하정우)와 조윤(강동원)이 바로 그들이다. 먼저 도치를 보자. 백정인 그는 조윤의 인정 투쟁의 희생양이 되어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고 불탄 집에서 겨우 살아나 군도의 일원이 된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는 기필코 자신의 원수인 조윤을 처단해야 하는 목적이 있다.

다음은 조윤을 보자. 그는 양반인 조대감(송영창)과 색주가의 여인에게서 태어난 서자다. 이 출신 성분은 아버지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물론 세상의 주류 질서에 편입되기 힘든 조건이다. 이는 결국 더 악랄한 방법으로 세상을 착취하여 아버지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비틀린 욕구로 표출된다. 그런 점에서 조윤은 태생적으로 비극적인 인물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민중들을 억압하는 자리에 있는 자가 상처 있는 문제적 개인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조윤이 내뱉는 대사인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생을 걸어본 자가 있거든 나서 거라.”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의 민초들에 대한 억압이 자신의 콤플렉스에서 연유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조윤이 기필코 처단해야 하는 인물로는 부적절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민중 혁명 서사극이 갖는 운명은?

이렇게 ‘군도’는, 도치로 대변되는 민중들이 자신들이 벌해야 할 적을 상처투성이의 인간으로 설정함으로서, 공공의 적을 처단하는 순간 발생하는 카타르시스가 사라져 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도치가 양반들의 상투를 싹둑 자르는 행위를 통해 관객들이 쾌감을 느꼈다면, 조윤의 상투를 자를 수 없는 도치의 심경에서는 관객들 역시 착잡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군도’는 조윤의 곡절 많은 사연에 무게중심을 두며, 정작 민중들의 혁명의 서사가 힘을 잃고 마는 형국을 방치시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의적떼의 무리가 백성들을 수탈하는 기득권들을 처단하면서 얻어지는 카타르시스 대신에 서자의 사연에 귀 기울이는 영화인 셈이다. 억압 받는 자들이 운명을 바꾸려고 몸부림치는 서자를 벌하는 모순의 이야기가 과연 매력적인가를 ‘군도’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것이다.

대동문화 84호 [2014 9,10월호]

조대영 광주독립영화협회 대표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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