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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전, 빛고을 정신 세세연년 굳건히 지켜주소서다향만리-신흠, 신익성・신익전, 신정
학동 느티나무와 선정비에 깃든 삼대(三代)의 차 정신
백승현 기자 | 승인 2016.07.07 17:37

광주 읍성 터에서 동구 남광주역 사거리를 지나 화순 방향으로 가는 길을 남문로(南門路)라고 부른다.

이 남문로의 입구쯤에 350년쯤 된 느티나무와 함께 1640년대 광주목사를 지낸 신익전(申翊全;1605~1660)의 선정비가 서 있다. 신익전은 본관이 평산, 호는 동강(東江)이었다.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냈다.

신익전의 신도비에 ‘광주 목사로 나갔을 때 숨은 장정을 모두 찾아내어 여러 군대의 궐원(闕員)을 보충하고 경내를 독려하여 기한 내에 조적(糶糴, 환곡을 꾸어 주고 받아들이는 일)의 환곡(還穀)을 수납케 한 것이 거의 수만 곡(斛)이었는데도 감히 뒤지는 자가 없었으며, 죽었거나 딴 곳으로 이사하여 절가(絶家)된 경우가 있으면 번번이 모곡(耗穀, 소모될 것을 감안해서 더 받는 곡식)으로써 상환케 하고, 학교를 세워서 제생(諸生)들을 모아 학업을 장려하여 온 고을이 잘 다스려졌으므로 돌아올 때에는 백성들이 비석을 세워 송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세토록 굳건하게 고을을 지켜주소서

‘선정비’는 이때의 송덕을 새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비석은 광주사람들에게는 광주의 남문 밖을 진호하는 비석이란 의미로 진남비(鎭南碑)로도 불렸다. 실제로 신익전의 선정을 기리는 비문 뒤편에는 ‘천년완골(千年頑骨)’이란 큼직한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이 말은 ‘세세토록 이곳을 굳건하게 지켜주소서.’, ‘무궁한 뜻 천년 동안 이어지소서.’라는 뜻이다. 그 앞에 잡귀를 쫓고 도읍의 안녕을 지키는 신성의 의미를 기려 커다란 홍살문도 하나 서 있었는데 1900년대까지만 남아 있다가 철거되었다고 한다.

남문 밖 마을이었던 서남리(瑞南里)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이 느티나무를 성스런 나무로 섬겼다. 그래서 이 나무엔 따로 이름까지 있었는데 ‘궁수(弓樹)’가 그것이었다. 활을 들고 광주 남문과 광주읍성을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신성한 나무’라는 뜻일 것이다. 이 느티나무는 ‘우환’이 오는 남쪽을 지키면서 왜구, 변고, 역병, 도적, 가뭄과 흉년을 제압하고 진압하는 역할을 했고, 이 문 앞에 신익전의 선정비를 세워 그 뜻을 기린 것이다.

신익전은 병자호란 때 청에 잡혀갔다가 돌아와 도승지에까지 벼슬을 했던 선비로 <동강유집>, <밀양지>를 남겼다. 신익전의 아들인 분애(汾厓) 신정(申晸;1628~1687)도 바른 정사로 이름난 재상이었고, 시문과 글씨에도 뛰어났던 선비였다. 예조판서와 한성 판윤을 거쳐 강화부유수로 재임 중에 죽었다.

신정도 호남에 흉년이 들자 발탁되어 전라 감사가 되었다. ‘명성과 치적이 크게 떨쳤다. 누로(樓櫓)를 수리(修理)하고 학렬[鶴列, 좌우(左右)로 벌인 진형(陣形)의 이름]을 성히 하여 무릇 시설한 바가 모두 가히 법도가 될 만하였으며, 요언(妖言)으로 군중을 현혹하는 자와 오랑캐의 세력을 끼고 간사스러운 짓을 하는 자는 모두 목을 베어 돌리니,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고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차 한 잔의 청빈함과 부귀를 바꿀 수 없네

신익전과 신정은 부자 사이에 다정한 다인(茶人)이었다. 신익전의 다음 다시(茶詩)에는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겼다.

‘마음먹고 떠난 긴 여정이 험하고, 수자리의 병사들 혹독한 추위에 괴롭네. 역참에서 차 끓이니 한가한 흥이 전혀 없고, 오직 피리 소리 심한 추위를 녹여내네.’-도중봉대설(途中逢大雪)’ 한시 번역-

아들인 신정은 다음과 같은 다시를 남겼다. 가난하지만 청한한 삶을 살아가는 선비의 넉넉한 차흥(茶興)을 노래했다.

‘납월매가 화사하게 사람을 향해 웃으니, 등불을 마주한 내 마음 아득해지네. 차가운 집에 내린 눈으로 차 달이는 흥은, 값비싼 금휘장 속의 따뜻함과 비교할 수 없네.’-‘독야(獨夜)’ 한시 번역-

신익전의 형이 신익성(申翊聖;1588~1644)이다. 병자호란 때 주화파(청나라와의 화친파)에 칼을 겨누며 척화를 주장한 다섯 신하 중의 하나였다.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에 올랐으며, 오위도총부부총관이 되었다. 광해군 때 폐모론에 반대했다. 또 인조반정 이후 재등용되어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궁을 호위했다.

정묘호란 때는 세자를 모시고 전주로 피했고, 병자호란 때는 인조를 호종하여 끝까지 성을 지키고 청과 싸울 것을 주장했다. 1642년 최명길, 김상헌 등과 함께 심양에 붙잡혀 가서 억류당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의 남편이 되어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졌다. 심양에서 돌아와 시와 다주(茶酒)로 세월을 보냈다.

높은 자리는 근신하는 데 도움이 안 되니, 늦어서야 농사짓고 누에를 칠 생각했다네. <우경(牛經)>과 <다보(茶譜)>을 뒤적이며, 농사와 시와 글씨를 쓰며 편안히 산다네. - ‘병중차간재서회기우운(中次簡齊書懷寄友韻)’ 한시 번역-

세 사람 다 목민관으로서는 백성의 칭송을 받았고, 외세에는 저항하며 자존을 지켰으며, 벼슬을 떠나서는 한가함을 벗하여 지낸 선비들이었다.

신익성과 신익전의 아버지가 신흠이다. 영의정이었던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은 정주학자로 이름이 높아, 이정구, 장유, 이식과 함께 한문학의 태두였다. 학문에 전념했으며 뛰어난 문장력으로 외교 문서의 제작, 시문과 예문의 정리 제작에 참여했다. 신흠은 또 다시를 썼고, 차도 즐겨 마신 다인의 표상을 보여주었다.

‘시(詩)로 메마른 창자를 찻물이 적셔주고, 병든 다리 의지해 걸어본다네. 남은 인생 헛된 세상이 이 같을지니, 오리처럼 짧거나 학의 긴 다리 같을 수는 없겠지.’-‘수춘서사(壽春書事)’ 한시 번역-

독서와 차와 한가로움은 처사의 벗이라네

차시도 그윽하지만, 문장가답게 산문도 돋을새김된 멋스러움이 넘친다. 산문집인 <야언(野言)>의 차에 대한 한 대목이다.

‘차가 익어 향기 짙을 때 손이 문 앞에 이르면 기쁘고, 꽃이 떨어지고 새가 우는데 사람이 없으면 또한 그윽해진다. 좋은 샘물은 맛이 없고, 좋은 물은 냄새가 없다.

좋은 밤 편안하게 앉아 등불을 밝히고 차를 달인다. 모든 사물이 조용하고 개울물 소리만 들리는데, 이부자리 깔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는 것은 첫째 즐거움이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 문을 닫고 집 안을 청소하고, 책을 펼쳐놓고 흥에 겨우면 시를 읊어보는데,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주위가 그윽하니두번째 즐거움이다. 해 저무는 공산에 가는 눈발 흩뿌리고, 앙상한 가지 바람에 흔들리고 추위에 우는 새소리 들려오는데, 방안 화롯가에 술 익고 차 향기 풍기는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 ‘<야언(野言)>’의 번역-

‘야언’이라는 말 속에는 전원생활을 좋아하는 그의 마음이 서려 있다. 야인으로 살아가는 야언은 그러나 속되지 않다. 다우(茶友)를 만나는 것도, 다향 속에 독서하는 것도, 바람과 새소리 들으며 고요히 차를 마시는 것도 만족할 만한 삶 속에 들어간 처사의 살림살이의 멋이다.

신흠, 신익성・신익전, 신정으로 이어지는 삼대는 선조, 광해, 인조 연간에 활약하면서 삼대를 거쳐 목민관으로 엄격한 치율로 탐관을 다스렸고, 백성들에게는 덕을 베풀었던 가문이다. 또 하나 이들은 대를 이어 차인이었다. 신흠의 차 정신과 철학이 삼대를 이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하는 마음과 함께 했다.

광주의 남문 밖을 진호하는 ‘천년완골’ 비석은 그래서 더 뜻밖의 차 이야기를 담고 의미심장하게 21세기를 바라보며 서있다. ‘광주를 세세토록 굳건히 지켜주소서’, ‘평화 민주 인권의 광주 정신이 천년 동안 이어지게 하소서.’ 남문 밖을 빠져나가는 옛 광주 선조들은 이곳에서 비손을 했으리라. 차향으로 맑아진 정신으로 선정을 베푼 선조들과 그 목민의 뜻을 기린 백성들의 한량없는 마음 때문에 스스러워진다.

대동문화 84호 [2014 9,10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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