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요의 근저에는 비탄조가 깔려있다. 일본의 엔카[演歌]류 대중음악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을 때는 조선은 국권을 잃어버린 뒤였다.

망국은 유랑을 불러왔다. 많은 사람들이 만주 등지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뜻있는 사람들은 국권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고향을 등졌다. 망국의 한, 실향의쓰라림 등은 민족의 정조(情操)를 무력감, 자학적 패배주의 쪽으로 이끌었다.

이런 때에 트로트풍의 새 음악이 들어왔다. 트로트 리듬이 주류를 이루는 엔카에는 비애미가 흘렀다. 비탄과 탄식이 알게 모르게 녹아들어 전달됐다. 나라 잃고, 고향 잃은 젊은이들이 이런 류의 새 음악에 휩쓸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작사 작곡을 하고 노래한 우리나라 첫 가요곡으로는 ‘유랑길 5천 킬로’(반야월 작사‧이재호 작곡‧노래 채규엽)를 든다. 1920년대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히트곡은 이애리수의 ‘황성옛터’(왕명 작사‧전수린 작곡)가 꼽힌다. 두 노래 다 망향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들 노래 이전에도 창가류에 가까운 번안곡들이 있었다. 1926년 윤심덕의 ‘사의 찬미’, ‘학도가’, ‘희망가’ 등이 그것이다. 물론 우리 가요사에 포함시키기엔 어려운 것들이다.

어쨌든 ‘황성옛터’ 이후 가혹한 식민지 시대를 살아오면서도 우리의 가요계는 대단한 발전상을 보였다. 1920년 총독부의 ‘문화정책 표방’도 영향은 있었지만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 말까지 그 사이에 겨레의 가슴마다에 파고든 ‘주옥같은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다.

북방 대륙(만주)을 무대로 한 망향곡이 많았다. 고복수의 ‘타향살이’, ‘사막의 한’, 백년설의 ‘고향설’, ‘나그네 설움’,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등이 그것이다.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 고복수의 ‘짝사랑’ 등은 서정곡으로 유명하다.

만주 이주를 재촉 독려한 ‘복지 만리’ 등 친일 가요가 많았던 것은 흠이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일면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난영의 ‘해조곡‧목포의 눈물‧목포는 항구다’, 장세정(연락선은 떠난다), 황금심(알뜰한 당신) 등 대형 여가수가 발굴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콜럼비아(1927년), 빅터(1928년), 오케(1932년) 등 레코드 제작사가 있어서 일제 강점기 우리 가요사 발전에 도움을 준 것도 특기할 만한 사실이었다.

전쟁 이후 서구풍이 밀려오다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분단’이라는 ‘비극’에 직면했다. 북한에서는 ‘대중가요’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유행가라는 이름 속의 우리의 대중가요는 남한에서만 해방의 감격, 분단의 아픔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노래에 있어서도 미국풍이 밀려왔다. 트로트 일변도의 가요 세계에도 변화는 불어왔다. 남한에서만이라도 우리 가요계는 신경지를 열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인 등이 서구적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인권의 ‘귀국선’, 현인의 ‘고향만리’ 등은 해방이 주제였다.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 ‘달도 하나 해도 하나’와 현인의 ‘비나리는 고모령’, 한정무의 ‘꿈에 본 내 고향’은 분단의 노래였다. 현인의 ‘럭키 서울’, ‘서울 야곡’, ‘신라의 달밤’은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모던한 리듬이었고, 장세정의 ‘샌프란시스코’는 이국을 동경한 정서를 대변한 것이었다.

고복수‧김정구‧백년설‧남인수‧장세정‧황금심 등 일제 강점기 크게 활약했던 가수들 중 일부는 친일 가요 가창 시비로 자숙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건재해서, 우리 가요계의 해방 전후의 불필요한 단절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이때는 불멸의 작곡가 박시춘의 존재가 돋보인 시기였다. 순수 국내파인 그는 해방 뒤에 밀려든 블루스‧탱고‧지루박‧폴카‧차차차 등 그 당시 유행했던 서구의 유명 댄스곡까지를 소화해서 우리 가요를 일본 냄새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한 천재성을 보여줬다.

‘신라의 달밤’이 일곱 번의 커튼콜을 받게 하고, 격동의 고비마다에서 남인수와 현인을 적절하게 등장시켜 국민적 대히트곡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그였다. 그가 발굴한 해방 직후의 여가수 옥두옥은 말 그대로 혜성이었다. 1948년 8월 15일, 우여곡절 끝에 정부는 수립되고, 옥두옥의 우수에 싸인 듯한 블루스 ‘애수의 네온가’는 명동의 아스팔트 위를 적시며 흘러가고 있었다. 허리가 잘려버린 이 땅 위에도 그래도 얼마만이나마 평화가 지속될 것처럼….

전쟁의 폐허를 딛고 흘러온 가요의 물결

6.25가 발발했다. 3년 전쟁 끝에 휴전이 성립되었다. 피난민 등 엄청난 실향민이 생겨났다. 우리 가요의 팔자에는 여전히 망향 정서가 따라붙어 있었다. 고향 그리는 노래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전쟁 노래도 많이 불리워졌다.

대중문화의 전반에 미국 류의 영향은 커져만 갔다. 가요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8군부대를 통한 새로운 양식의 노래들이 노래 세상을 지배해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트로트 기조와는 다른 구미식 분위기의 새 노래가 환영을 받았다. 한국적 팝 양식이 주류를 이루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전쟁의 고통은 역사에 남을 ‘큰 노래’도 남겼다. 1‧4 후퇴 뒤에는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가 나왔다. 그리고 9‧28 수복 직후에는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 히트했다. 두 노래 모두 경쾌한 팍스 트로트 곡조다. 경쾌함으로 슬픔, 그 쓰라림을 순화시키고 있다. 모두가 박시춘이 지은 곡이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반야월 작사‧이재호 작곡‧이해연 노래)는 잊을 수 없는 노래다. 신세영의 ‘전선야곡’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눈시울을 적셔주었다.

가슴 아픈 노래를 너무 많이 간직하고 있는 민족은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연이 많은 노래들을 간직해왔다. 6.25 이전까지의 노래 가운데 그런 것이 많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버릴 수 없는, 그런 귀중한 노래들은 그것을 간직하고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귀중한 민족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대중문화의 영역은 넓어지고 그 중요성과 함께 영향력 또한 커져가고 있다. 우리의 대중가요 역시 문화사적 가치가 새로 규명되고, 가치 서열은 높아져야 한다는 주장이 커져가고 있다.

가요 하면 낮추어보는 그런 풍조는 사라져야 한다. 따라서 우리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고난 속에서도 사랑 받아온 훌륭한 우리 가요들을 아껴줘야 한다.

20세기 말에 선정된 21세기까지 잊히지 않을 아시아의 노래 다섯 곡 중에 우리나라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노래)가 뽑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찌 그 노래뿐이랴! 여기에서 언급된 노래만 해도 우리 민족의 눈물 어린 자산이요 보배다. 또한 유산이다. 일제 강점 시기부터 6.25 후까지 반세기 동안의 가요는 특히 그렇다. 1백년은 더 잊히지 않고 전해 내려가야 옳을 것이다.

대동문화 84호 [2014 9,10월호]

신용호 언론인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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