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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차(茶)와 선(禪)의 경지, 5절을 이루었네다향만리-자하 신위
조선 후기 차문화사의 경지 이끈 차인 이야기
백승현 기자 | 승인 2016.07.11 05:57

관악산은 서울대학교 정문 옆 호수 공원[자하연(紫霞淵)]에서 산우를 만나 연주암과 연주대로 짚어가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다. 관악산 서북쪽이다. 동남쪽 과천에서는 시흥 향교에서 자하동천(紫霞洞天)의 계곡을 따라 연주암과 연주대에 오른다. 자하연에서 자하동천까지 아예 종주 능선으로 이어가기도 한다.

관악산은 기상이 굳고 바위가 빼어나다. 형세가 불의 기운이라 선조들은 관악산 옆에 ‘한우물’이라는 연못을 설치했고, 주봉 연주대에는 ‘방화(防火) 부적’을 넣은 물단지를 아홉 개 설치하기도 했다. 숭례문 밖에 인공 연못인 남지(南池)를 조성했고, 사대문의 글씨 중에서 유일하게 숭례문은 세로로 써서 관악산 화기와 맞불로 맞섰다. 조상들의 방화 비보들을 없애고, 불을 조심하라는 경고의 뜻을 지키지 않아서인지, 숭례문이 방화범이 지른 불에 타는 비운을 우리 시대에 겪었다.

관악산의 물, 바위, 나무를 사랑한 선비

서울대 호수 공원 자하연(紫霞淵) 옆에는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5)의 시문표지석(詩文標識石)이 있다. 조선후기 시(詩)·서(書)·화(畵)의 대가인 자하 신위가 어릴 때부터 경기 시흥 자하동(紫霞洞)에서 학문과 예술을 연마했으며 아호 ‘자하’ 역시 자하동에서 따와 지었기 때문이다. 표지석은 2008년 8월 세워졌다.

‘이곳 자하골의 물, 바위, 나무를 사랑한 한 선비가 시와 글씨와 그림으로 세상을 울렸기에 여기 그 표석을 세운다.’는 문구와 함께 자하의 그림과 한시, 번역문이 새겨졌다. ‘시와 글씨와 그림으로 세상을 울리다.’는 글귀에서 묘한 울림이 인다. 자하동의 자연 풍광을 생생하게 담은 자하의 시 ‘溪南(자하동 개울에서)’이라는 시를 새긴 표지석도 함께 세웠다. 서울대와 이곳이 인문학 정신의 역사 맥으로 서로 잘 어울린다.

과천 향교에서 연주대까지의 계곡도 자하동천(紫霞洞天)으로 불린다. 20여리의 골짜기를 자하시경(詩境)이라고 부르며, 이곳의 바위에는 4종의 암각글씨가 새겨져 전하는데 단하시경(丹霞詩境), 자하동문(紫霞洞門), 백운산인 자하동천(白雲山人 紫霞洞天)은 신위의 글씨고 우암서(尤庵書)는 송시열의 글씨로 추정되고 있다. ‘자하(紫霞)’는 ‘신선이 사는 곳에 서린 노을’이라는 뜻으로 ‘선계(仙界)’를 말한다. 이곳은 신위에게 고향이자 선계였다.

자하 신위는 본관이 평산이고 자는 한수, 호는 경수당 또는 자하이다. 소낙엽두타(掃落葉頭陀)라고 자호할 정도로 불법(佛法)에도 열중했다. 장절공 신숭겸을 시조로 해서, 1796년 영조 45년 8울에 서울 장흥방에서 참판 신대승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위는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불렸다. 그러나 서른이 넘은 정조 23년(1799)에야 문과에 급제했다. 1812년(순조12)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갔는데, 이때 학문과 문학의 안목을 높였다. 특히 당대 대학자 옹방강과 교유했다.

병조참지, 곡산부사, 승지, 춘천부사를 역임했다. 1822년 병조참판, 1828년에는 강화유수에 임명 받았고, 이어 대사간, 이조참판, 병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서서화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산수화와 묵죽에 천재성을 발휘했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꽃을 피워 추사 김정희의 화가들의 글씨와 그림에도 영향을 미쳤다.

노년에는 관직을 모두 버리고 ‘자하산장’에 내려와 시, 글씨, 그림으로 낙을 삼고 여생을 보냈다. 시서화에 불교, 도교적 세계관을 총합하여 시화(詩畵), 시선(詩禪)의 경지에서 노닐었다. 저서로는 <경수당전고>와 김택영이 600여수를 정선한 <자하시집>이 간행되었다.

조선 차문화의 백미로 칭송되는 차시(茶詩) 남겨

그뿐만 아니라, 자하 신위는 <경수당전고>의 시 4백여 수 중에서 차(茶) 관련 시문이 1백 10수나 될 정도로 차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우리 차문화사에서도 다산으로부터 다시 일어난 차문화의 맥을 추사와 초의로 이어주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시와 차와 그림과 글과 학문의 선비적 교양을 보여주었다.

 

當車緩步處 수레 멈추고 천천히 걸어가는데

如笠小亭開 갓처럼 생긴 작은 정자 하나 있다네

選石安詩硯 시를 쓰려고 바위 골라 벼루를 놓고

㪺泉注茗杯 샘물 길어 찻잔에 붓는다네

-한보정(閑步亭)-

 

이 시에는 이런 부기가 달려 있다. “관아 서쪽 조그만 물을 건너서 둑길을 따라가면 가마에서 내려 한가로이 거닐 만한 곳이 있는데, 바로 남산의 북쪽이다. 바위 밑에 샘이 있어 고을에서 첫째로 꼽으니 오래 마시면 온갖 병에 좋다. 그 옆에 정자를 지어 샘물로 차를 끓이는 곳으로 삼고서 예천명의 ‘서쪽 성에 한가로이 거닌다.’는 구절을 취해 ‘한보정’이라고 한다.” 산행을 하면서 느끼는 감흥을 시로 쓰고, 시를 쓰면서 차향을 즐겼다. 산이 있고, 좋은 샘이 있어, 그곳에 다정(茶亭)을 지었다. 초탈의 경지에서 자연과 정자와 시와 차가 함께 하는 청복을 지극히 즐기고 있다.

자하는 또 초의와 교유했다.

 

戀情刊落略無痕 세속의 정은 깎이어 흔적도 없지만

未足平生茗事存 평생에 찻일은 싫증 내지 않고 있다네

香積飯過淸佛座 공양을 마치고 불전을 깨끗이 하고

松風湯熱淨詩魂 송풍탕을 끓여 시혼을 맑히네

評品得聞於鴻漸 품평은 육우에게 이미 들어서 아니

氣味相投借壑源 학원차의 맛과 함께 섞었네

此是藏收又一法 이는 다른 차 보관법의 하나이니

侍童秘勿俗人言 아이야 속인들에게는 아무 말 하지 말아라

-초의다미태눈(草衣茶味太嫩)-

차향기 하늘에 퍼지고 비는 하늘을 청소하네

‘초의차의 맛이 크게 여리다’라는 제목의 시이다. 초의가 보낸 차맛이 너무 여려 가지고 있던 ‘학원차’에 섞어 새것과 옛것을 어울리게 만들어 마신 풍미를 읊은 것이다. 초의차를 품평할 정도에서 더 나아가 초의차와 자신의 옛차를 섞어 더 고아한 맛을 우려내는 묘미의 경지를 얻었다. 온고지신 법고창신이라는 성어가 떠오른다.

綠陰如水鶯聲滑 녹음 속 앵무새 소리 윤기가 흐르고

芳草和烟燕影消 안개 속 향기로운 풀숲 위로 제비 그림자 스쳐가네

短句分明猶在記 짧은 시구 아직도 분명히 기억하는데

香初茶半雨瀟瀟 깨어나보니 차 향기 무르익고 비가 하늘을 청소하네

처사가 자연을 벗 삼아 시심과 다향에 숨고, 그림 뒤로 숨어 지내며 그 그림 속 주인공의 살아가는 선의 세계가 그대로 한 편의 절구에 녹아 있다. 김택영이 <자하시집>을 간행할 때 자하 신위의 그림을 평가한 글은 이렇다. ‘그림은 시에 버금가는데, 묵죽화에 더욱 묘하여 중국인들이 다투어 보배로 삼았고, 글씨 또한 그림에 버금가므로 세상에서는 삼절이라고 말한다.’

옹방강은 자하의 시화를 보고 ‘푸른 대숲 깊은데 물 한 굽이 흐르고 안개 비낀 곳 해동에 밝은 달 솟았네. 담묵과 청풍으로 마음 속 뜻 드넓게 펼쳤다.’고 높게 평가했다.

시서화에 차(茶)와 선(禪)에 오절(五節)의 경지에 이르렀다. 자하 신위의 인문학 정신의 경지이다. 이 신위의 인문학 정신을 서울 시민에게 선보이는 문화 사랑방이 세워져야 한다. 그러면 그때 관악산을 등산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자하 신위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차 한 잔에 시 한 수를 감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등산 내내 차향과 시묵의 향기가 그윽해질 것이다.

대동문화 85호 [2014 11,12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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