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설립된 명필름은 그간 한국영화의 폭과 넓이를 확대시킨 영화사라고 할 수 있다. 명필름이 제작한 몇 편의 영화들만 언급해 보아도 그것은 쉽게 확인된다.

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두 남녀가 컴퓨터 통신을 통하여 가까워지게 되는 과정을 그린 <접속>은, 남녀가 서로 만나지 않고도 사랑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멜로였고, <공동경비구역 JSA> 역시 분단이야기를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내 공전의 히트를 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영화였다.

여기에다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면 안된다는 불문율을 깨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성공 역시 명필름의 도전정신이 빛을 발한 결과였고, 고전을 면치 못하던 한국애니메이션의 연대기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이 거둔 성취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밖에도 명필름은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건축학개론> 등의 영화들에서도 기존의 한국영화들이 시도하지 못했던 영역에 도전하며 한국영화의 토양을 풍부하게 했다.

그러니까 명필름의 20년은 한국영화의 소재나 주제를 다양하게 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고, 한국영화의 금기를 깨트리고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를 개척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이름을 얻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만한 제작사라는 것이다.

부당해고에 장기파업으로 맞선 노동자

이런 명필름의 전례에 비추어 본다면, <카트> 역시 명필름이 도전해 볼만한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천만시대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의 아픔과 설움을 상업영화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다는 것은 분명 모험이긴 하지만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획과 마케팅 능력에서 수십 년의 노하우가 있는 영화사답게 명필름은 <카트>를 제작하고 개봉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남다른 비법을 발휘한다. 우선 이름난 배우들과의 출연 계약을 개봉 이후 수익이 발생하면 배분하는 방식으로 체결하며 제작비의 리스크를 줄였고,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디오(도경수)를 출연시켜 <건축학개론>에서 발휘되었던 ‘수지효과’를 부활시키려고 했다.

여기에다 클라우드 펀딩으로 관객들이 제작비의 일부를 충당하는 방식을 도입하여 홍보를 겸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숱한 화제를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개봉 전의 시사회를 통해 오피니언 리더들이 입소문을 내도록 하는 영악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카트>는 개봉 전에 관객들에게 충분히 노출되며 영화의 궁금증을 한층 고조시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트>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영화의 만듦새가 신통치 못한 것에서 찾아진다.

영화는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그룹으로부터 부당 해고를 당한 홈에버 마트 노동자들이 장기 파업으로 맞서는 이야기를 극적으로 재구성했다.

실재의 이야기가 가공의 이야기로 옮겨지면서 이 영화는 선희(염정아)라는 인물을 탄생시킨다. 하여 그녀는 모범적인 마트 직원으로 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회사에 충성했지만 회사의 구조조정 중 벌어진 정리해고에서 예외가 되지 못하는 인물의 역할을 부여받는 것이다.

이에 그녀와 동료들은 노조가 무엇인지, 해고통보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머리를 맞대고 헤쳐 나가고, 회사는 해고자들의 집단농성에 강경책과 회유책을 번갈아 쓰면서 이들의 분열을 조장한다.

노동쟁의 영화의 관습 십분 활용

그러니까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해고통보와 투쟁 그리고 회사의 회유책과 분열조장이라는 노동쟁의 영화들의 익숙한 풍경들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카트>가 노동쟁의 영화의 관습을 십분 활용하고 있고,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투쟁을 대중영화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트>는 극의 추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주요 인물들의 처지를 악조건에 놓으며 현실감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먼저, 선희를 보자. 남편이 돈 벌러 나가 부재한 것으로 설정하여 그녀가 겪는 삶의 고초가 만만치 않도록 했고, 심지어는 수학여행경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들도 챙기기가 벅찬 엄마로 설정한 것은 무리가 따른다.

선희의 아들인 태영(도경수)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편의점사장의 부당한 처우에 반응하는 장면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악조건으로서의 노동의 조건을 중첩시켜서 고발하고자 했던 의도가 읽혀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카트>는 편의점의 일화에 정성을 쏟는 만큼 노동쟁의와 관련한 극적인 농도가 줄어든다는 점을 간과했다.

여기에다 유치원생인 아들을 돌보며 계산원의 업무를 봐야 하는 혜미(문정희)의 딱한 처지 역시 영화의 극적인 효과를 노리다가 현실감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 온 경우다. 유치원이 아닌 농성장에 함께 있던 아이가 현장을 덮친 용역깡패들로 인해 심한 부상을 당하게 되는 장면은, 극의 막바지를 향해가기 위한 사건치고는 억지스럽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규직 사원인 동준(김강우)이 노조위원장의 역할을 맡아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다가 정규직원들의 비아냥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맥없이 물러나는 것 역시 무기력한 설정이긴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이 영화의 선택은, <카트>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노사의 지난한 싸움이 단순화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 영화는 분명 우리 시대의 노동의 조건이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왜 문제인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에서의 노동쟁의는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집중하여 비중 있게 극화시켰으면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하여, 마트로 복직한 혜미와 마트 밖에서 싸우고 있던 선희가 카트를 밀며 공권력에 부딪치는 영화의 끝 장면은 연대(連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지만 큰 울림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대동문화 86호 [2015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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