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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통 송단마을 복조리로 福 받으세요”<호남문화원형-화순 송단마을>
중국산에 밀려 하향길…이제는 맥 끊길 위기 놓여
김만선 기자 | 승인 2016.07.12 05:53

화순 송단마을은 백아산 줄기 차일봉 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다. 500년 전부터 복조리를 전문으로 만들어 ‘복조리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12월, 마을은 이른 아침부터 내리는 눈으로 인해 온통 하얀 빛깔이었다. 마을은 그냥 자연의 일부분으로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낮게 엎드려 숨을 고를 뿐이었다. 누구라도 손을 대지 않으면 항상 순백의 색을 간직하고 있을 듯한 마을, 조그만 외지 바람에도 눈가루 툭툭 털며 뒷걸음질부터 칠 것 같은 마을은 시간마저 멈춘 듯 묵연히 제자리에 있었다.

송단마을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주민 전체가 복조리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벼농사를 지어 올린 수익에 비해 복조리 수익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앞다퉈 복조리를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복조리의 인기가 시들어가고 중국산이 점령하면서 지금은 마을 전체 26가구 중 5~6가구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전체 가구 중 5~6가구만 명맥

최기현(66) 이장은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때는 마을의 모든 농가가 복조리를 만들었다.”면서 “산죽을 채취하러 아침 일찍 산을 올랐다가 해질 무렵에야 내려와 밤새 복조리를 만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복조리의 재료는 산죽(山竹)이다. 송단마을은 주변에 다년생 산죽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데 주민들은 11월 말 김장이 끝날 즈음부터 산으로 올라가 재료를 구한다.

복조리용 산죽은 반드시 1년생으로 해야 한다. 1년이 넘으면 산죽 옆에서 가지가 나기 시작하고 그만큼 억세지기 때문에 복조리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복조리는 재료 채취부터 제품을 완성할 때까지 100% 수작업을 통해 이뤄진다. 대부분 손으로 작업이 진행되는데 도움을 받는 도구라고는 조그만 칼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채취한 산죽은 우선 네 조각으로 쪼개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김용임(68)씨는 송단마을에 시집 온 이후 복조리를 만들기 시작해 40여 년의 경력을 갖고 있는 베테랑. 그는 오른 손에 칼을 잡고 왼손으로 산죽을 잡더니 능숙하게 산죽을 쪼개 한 쪽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산죽 쪼개기는 두 조각으로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칼날을 산죽의 정 중앙에 찔러 넣어 두 조각으로 나눈 뒤 껍질을 털어내듯 벗겨내면 회색빛 산죽은 어느새 연두색으로 변하게 된다. 다시 산죽의 두 조각을 맞댄 상태에서 가운데 칼날을 찔러 쪼개면 네 조각으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쪼개진 산죽은 햇볕에 말리는 과정을 거친다. 햇볕이 좋을 때는 2~3일, 날씨가 궃을 때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햇볕에 말린 산죽은 다시 10시간 가량 물에 담궈야 한다. 이를 통해 복조리가 쉽게 부러지지 않고 부드러워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송단마을의 복조리가 유명한 것은 이 지역에서 생산된 산죽의 빛깔이나 강도 등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대나무를 대충 얽어서 파는 중국산과는 아예 비교할 수가 없다.

대나무 얽은 중국산과 비교 안돼

김씨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복조리 인기가 많아 일을 하는 게 흥이 났었다.”면서 “가구마다 수입에 차이는 있었지만 그 돈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이 산죽 쪼개기 작업을 하고 있던 김맹순(74)씨는 “과거에는 주문이 밀려오면 마을회관에서 단체로 작업을 많이 했다.”며 “하지만 요즘에는 물량이 많지 않아 각자 조금씩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말처럼 송단마을의 복조리는 급격한 하향세를 걷고 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설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되면 집집마다 안방 문 앞에 복조리를 걸어놓고 만복이 집안에 깃들기를 기원했었다. 그만큼 수요가 끊이지 않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가의 중국산이 밀려오면서 국내산 수요가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복조리 2개가 한 쌍인데 송단 복조리에 비해 중국산은 턱없이 낮은 가격에 판매되기 때문에 소비자의 눈길이 중국산으로 돌아선 것이다.

여기에 복조리의 본래 기능이 쌀을 씻어낼 때 돌 등의 이물질을 걸러내는 도구에서 관상용으로 변한 점도 하향세의 원인이 됐다.

우리의 전통 복조리가 걸러낸 것은 단순한 쌀이 아니었다. 쌀이 담겨 있는 물을 둥글게 원을 그리며 휘휘 저으면 물살에 일어선 쌀들이 하나 둘 씩 조리에 담기고, 어느새 하얀 눈처럼 소복하게 쌓여져 있게 된다. 우리 어머니들의 이같은 반복적 행위는 불필요한 이물질을 버리고 정갈하고 소복한 복(福․밥)을 건져 올린다는 깊은 의미를 지니기도 했던 것이다.

소비자 기호 맞춰 크기 다양화

복조리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송단마을은 한 때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2012년 화순군이 복조리를 계승시키기 위해 '문화유산'으로 지정, 다시 제작하고는 있으나 언제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최 이장은 “일단 산죽이 예전처럼 많지 않은데다 복조리를 만드는 주민 대다수가 70~80대에 달한다.”라며 “복조리 만드시는 분들이 고령이다 보니 한꺼번에 2,000~3,000개씩 많은 물량을 요청할 경우 해줄 수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겨울 송단마을이 주문받은 물량은 3,000여개에 달했다. 올해는 설까지 주문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물량은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햇볕에 말리고 물에 담겨졌다 나온 산죽은 마침내 복조리로 탄생과정을 거친다.

김용임씨는 자신 앞에 놓인 산죽을 능숙하게 씨줄 날줄로 엮어 복조리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만드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용어는 몰라도 솜씨만큼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빠르고 정확하다. 복조리 한 개 만드는 데 소요되는 산죽은 20여 개. 만드는 시간도 5분 가량이면 1개가 완성된다.

김씨는 “최근의 복조리는 소비자 기호에 맞춰 고동대 기준으로 10㎝, 15㎝ 등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진다.”면서 “대부분 보통 크기인 15㎝를 찾기 때문에 소비자 기호에 맞추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복조리가 쌓여가는 만큼 걱정도 쌓여간다. 12월 중순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한 곳에서도 주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 이장은 "500년 전통을 이어온 송단 복조리의 명맥이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많은 국민들이 복조리를 통해 더욱 행복해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동문화 86호 [2015 1,2월호]

김만선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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