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창평면은 곡창지대였다. 삼지천(월봉천, 운암천, 유천)이 흘러 물이 풍부했고 월봉산과 국수봉 아래 펼쳐진 넓은 들판은 기름졌다. 마을 아래로 삼지천 물길이 모인다고 해 이름붙여진 삼지내 마을의 고택은 곳간이 크고 쌀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겨울이면 쌀을 이용해 엿을 만들고 한과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창평은 지난 2007년 12월 1일 '치타슬로(Cittaslow) 국제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인정받으면서 ‘자연과 함께 하는 느림의 미학’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됐다.

창평이 ‘슬로시티’라면, 한과와 엿은 ‘슬로푸드’이다. 사람의 손과 정성이 담긴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 완성되는 먹거리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 중 엿은 중장년층에게 많은 흑백의 기억을 심어준 먹거리라고 할 수 있다.

냄비나 주전자, 술병 등을 들고 엿장수 가윗소리를 쫓던 일이며, 자신의 구멍이 더 크다며 친구와 말다툼을 벌이던 엿치기의 추억이 있다. 시험을 치르는 가족의 합격을 기원하며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 때처럼 많은 이들에게 애용되는 먹거리는 아니지만 장터나 나들이 장소 등에서 판매 중인 것을 보게 되면 한 번씩 손이 가는 ‘별미’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입에 붙지 않고 찌꺼기도 남지 않아

창평에서 3대째 쌀엿을 만들고 있는 송희용(58)․조성애(55)씨 부부는 설을 앞두고 분주했다.

그동안 송씨의 어머니 김정순 여사가 쌀엿 만드는 일을 이끌었지만 건강과 연세 등의 문제로 손을 떼면서 오롯이 송씨 부부의 몫이 됐다. 전통쌀엿에 대해 설명하는 송씨의 표정에는 자긍심도 가득하다.

“엿을 백여시(백여우)라고도 해요. 엿이 온도에 민감하고 문을 여닫는 것을 먼저 알아봐 그렇게 부른답니다. 백여시(백엿)라는 말에는 ‘흰엿’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지요.”

엿은 허한 데를 보충해주며 기력도 보강해주는 영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엿을 씹는 동안 많은 침이 분비되면서 위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특히 창평쌀엿은 바삭바삭해서 입에 달라붙지 않고, 먹은 뒤에도 찌꺼기가 남지 않아 개운한 점이 장점이다. 입에 달라붙지 않는 비결은 엿을 늘이는 과정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서로 밀고 당기고를 반복하는데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당김질 횟수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엿 늘이기 작업은 가마솥 아궁이에서 꺼낸 숯불을 화로에 옮겨놓고 그 위에 물에 적신 수건을 펴놓은 채 진행된다. 이렇게 앞뒤로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엿에 김이 스며들어 파삭파삭해지고, 엿 속의 구멍도 숭숭 뚫리게 된다.

“엿은 구멍이 중요합니다. 옛날에 엿치기 할 때 구멍이 큰 사람이 이겼잖아요. 엿은 구멍이 있어야 보기도 좋고 파삭해서 맛도 좋습니다."

직접 재배한 쌀과 엿기름으로 맛 내

창평 쌀엿의 역사는 600여 년전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양녕대군이 이곳에 낙향하여 지낼 때 함께 동행했던 궁녀들이 전수해준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지역에 부임한 현감들이 궁중에 상납할 물건을 마련하면서 제일 먼저 찾았다고 할만큼 그 유래가 깊고 명성이 높다.

“지금이야 쌀이 흔하지만 예전에는 어디 그랬습니까? 오직 쌀로만 엿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죠. 창평은 곡창지대였으니 가능했던 겁니다.”

오늘날에는 쌀엿을 자유롭게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과정이 너무 힘들고 수익에도 한계가 있어 해마다 가구 수가 줄고 있다. 송씨가 유년시절을 보낼 때만 해도 엿을 만드는 집이 30여 가

구에 달했으나 현재는 4가구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전통쌀엿은 겨울이 제철이어서 이 맘때만 일을 하는 것으로 알지만 준비과정은 가을부터 시작된다.

먼저 10월께 친환경 농사로 걷어들인 겉보리를 씻어서 엿기름을 만든다. 그리고 햅쌀로 고두밥을 지어 미리 만들어놓은 엿기름과 섞어 식혜를 만든다. 이 식혜를 숙성시켜 즙을 짜내고 가마솥에다 달이면 조청이 만들어진다. 이 조청을 저으면서 계속 달이면 색이 어둡고 끈적끈적한 갱엿이 된다.

전통쌀엿을 만드는 가구가 줄고 워낙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보니 두어 해 전부터 초벌기계가 들어왔다. 갱엿이 흰 색을 띠는 과정까지 늘이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후 엿을 조금씩 뜯어내 화롯불 위에서 늘이면 공기가 들어가 부피가 커지고 먹음직스럽게 된다. 짧은 시간동안 방문 여닫기를 되풀이하며 ‘백여시(?)’를 적당히 조절하는 것도 이 때다. 이렇게 만들어진 엿은 일정한 크기로 잘라 다시 길게 늘이고 판매를 위한 상품으로 만든다.

“전통쌀엿은 직접 재배한 쌀과 엿기름만으로 맛을 내는 점이 특징입니다. 물엿이나 화학감미료, 설탕은 전혀 사용하지 않죠.”(조성애씨)

“저희는 지금도 쌀엿을 궁중음식이라 생각하고 만들고 있습니다. 그만큼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다고 봅니다.”(송희용씨)

창평쌀엿에 대한 명성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전국의 소비자들이 주문을 해온다. 특히 가장 맛이 돋보이는 시기는 설을 전후한 때라는 게 송씨의 설명이다. 값은 1㎏에 2만원.

체험관과 숙박시설도 갖춰 방문객들이 엿 만들기에 대한 호기심을 채울 수 있도록 한 점도 특징이다.

송씨 부부는 전통 쌀엿이 ‘겨울철 주전부리’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또다른 준비도 하고 있다.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엿을 개발 중인 것이다. 소비자들의 기호만 맞춘다면 전통 쌀엿의 활로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엿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입니다. 이곳이 슬로시티로 잘 알려진 만큼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엿 등을 개발해 향후 6차산업으로 발전시켜볼 계획입니다.”

창평은 전통가옥과 아름다운 옛 돌담장이 마을 전체를 굽이굽이 감싸고 있다. 3.6㎞에 달하는 아늑한 돌담길(등록문화재 265호)을 걷다보면 시간마저 쉬어가는 듯하다. 슬로시티에서 생산되는 슬로푸드 ‘창평쌀엿’이 더욱 맛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동문화 87호 [2015 3,4월호]

김만선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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