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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면 미끄럽고 쓸수록 윤기 자르르…호남 문화원형을 찾아서-함평 월야면 외세마을
왕골돗자리 명성 불구 현재 정일범․김용남 부부만 명맥
김만선 기자 | 승인 2016.07.12 17:09

마을은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봄 햇살이 골고루 비쳐 따뜻하고,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퇴비 냄새가 구수했다.

함평 월야면 외세마을. 솜털구름이 바람 타고 흐르는 하늘을 따라, 흐드러진 벚꽃이 이끄는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이곳에는 5대째 왕골돗자리를 만들고 있는 정일범(67)․김용남(63) 부부가 있다.

정씨는 곰살궂게 손부터 잡더니 그대로 방으로 이끌고 들어간다. 커피와 설탕이 적당히 섞인 차가 나오더니 먹기 좋게 손질된 딸기도 한 접시 따라 나온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 모두 왕골돗자리 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힘들고 수요도 많지 않아 우리 한 집만 하고 있죠. 한 6~7년 된 것 같아요."

정씨는 부부는 현재 왕골 모종을 가꾸고 돗자리를 만들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왕골 돗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뽑고, 찢고, 말리고, 층잡고, 짜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부분 사람의 손길과 정성이 모아져야 하는 것으로, 육체의 고단함이 묻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우선 왕골을 밭에서 뽑은 후에는 이를 같은 크기로 길게 찢는 순서를 거친다. 찢기는 대체로 두 과정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숙달된 사람들은 2인 1조를 이뤄 곧바로 죽침으로 뜨면서 얇게 찢기를 반복하고, 기술이 손에 덜 익은 사람은 죽침 뜨는 사람과 찢기만 하는 사람이 구분돼 작업을 이어간다.

"왕골을 찢는 작업은 아무나 하지 못해요. 얼핏 보기에는 쉬운 것 같아도 아무나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매번 같은 분을 모셔서 도움을 받죠."

뽑고, 찢고, 말리고, 층잡고, 짜고 찢어진 왕골은 말리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햇볕이 좋을 때는 3~4시간으로 충분하지만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더 오랜 시간 말려야 한다.길이를 균일하게 맞추는 작업을 뜻하는 '층잡기'는 남편인 정씨의 몫이다. 층잡기 역시 왕골을 고르게 하는 훑어내기와 굵기에 따른 선별 작업 등이 병행돼야 하므로 쉽지 않은 작업이기도 하다.

특히 왕골돗자리 만드는 일은 '시기'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왕골은 4월 말이나 5월 초에 심어 7월 중순이나 8월 초에 수확하는 데, 층잡기까지 보통 25일 이내에 작업이 마무리된다. 수확 시기를 놓치면 왕골이 질겨져 상품성이 떨어지고, 곧바로 농번기로 이어져 일손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정씨 부부가 재배한 왕골 면적은 노지와 비닐하우스를 합쳐 3500여 평(1만1570㎡). 본격적으로 왕골을 채취해 일을 하게 되면 하루 40~50명이 투입돼 새벽 4시부터 오후 7시까지 작업을 진행한다.

"예전에는 마을사람 모두 부업으로 왕골돗자리를 짰습니다. 농한기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인근의 동산면이나 해보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에 손을 댔죠. 학교 교사까지 돗자리를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외세마을이 고향인 정씨는 고조할아버지부터 시작해 5대째 왕골돗자리를 만들고 있다. 아홉살 때 돗자리를 짤 정도였다는 게 그의 기억이다. 시계가 없던 시기라 작업에 몰두하다 새벽닭 목 빼는 소리를 들은 것도 부지기수였다.밤 새워 짠 돗자리는 문장 5일장에 내놓기 바쁘게 모두 팔려나갔다. '돗자리가 없으면 시집도 안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전라도는 물론이고 서울이나 대구, 부산 등 대도시 중간 상인들이 거리낌없이 주머니를 털었다.

1970년대 말에는 전국 돗자리 생산량의 70%를 차지할 정도였다.하지만 왕골돗자리도 1980년대 값싼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함평의 5분의 1 가격에 불과한 돗자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가 줄어드는 만큼 돗자리 만들기를 포기하는 가구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한 때 돗자리 짜는 기계를 구입할 때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기도 했지만 어느 사이엔가 모두 값싸게 되팔아버렸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더욱이 이제는 중국산뿐 아니라 베트남, 캄보디아산까지 들어와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래도 정씨 부부가 지금까지 왕골돗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은 '신토불이'의 장점을 아는 소비자가 꾸준히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고"값싼 중국산을 써 본 사람은 우리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것은 만지면 미끄럽고 쓸수록 윤기가 나거든요. 하지만 수입 제품은 표면이 껄끄럽고 쉽게 꺾어져 버리죠. 색이 쉽게 변하는 것도 단점이구요."

정씨의 말처럼 함평 돗자리는 촉감이 부드러우며 왕골자체에 염분성분이 함유되어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땀 흡수력이 좋아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며 사용 및 보관이 간편하고 반영구적이다.

지난해에는 문화재청 종묘관리소에서 종묘에 사용하기 위해 정씨를 찾기도 했다. 그만큼 함평 왕골돗자리가 명성을 얻고 있다는 의미다. 정씨 부부는 왕골돗자리를 만드는 작업이 무척 힘들다고 말한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인근 마을에서 일손을 구해다 쓰고 그 뒤엔 일일이 뒤처리를 해야 하는 데 작업을 마치고 보면 밤 12시가 가까워지기 일쑤이다. 또 다음날 새벽 4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니 잠은 3~4시간이 고작인 셈이다.현재 정씨 부부가 만드는 돗자리를 크기가 다양하다.

1인용과 2인용이 있는가 하면 3단, 4단이 있고 왕3단, 왕4단 크기도 있다. 또 제사용ㆍ차례상용 등이 제작되고 있다. 자투리로 남은 왕골로는 똬리나 각종 소쿠리 등을 만들기도 했다.정씨는 "옛날에는 제사 자리도 많이 팔렸지만 값싼 수입산에다 나일론 자리까지 등장하면서 찾는 발길이 줄었다"면서 “함평 축제 현장 등지에서 할인 판매를 계획하고 있으나 성과가 나타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힘들고 수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도 “대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얼마 전 이 일을 한 번 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동문화 88호 [2015 5,6월호]

김만선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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