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홍탁삼합’의 고장 목포

목포는 항구다

동살이 트기 훨씬 전부터 바다는 깨어있었다.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는개인 듯 박무인 듯, 하얀 거품을 연신 내뱉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미 많은 배들이 선착장에 몸을 맸고, 또다른 많은 배들이 다른 배에 곱살이끼듯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무엇인지 모르는 일로 저마다 분주했고, 그로 인해 바다는 언제부터인가 겉잠과 괭이잠 사이를 오가는 깰머리에 있었다.

바다는, 길이었다.

누구든 지나고자 하면 낮게 숨죽인 채 한 켠으로 비켜서 길을 열어주었고, 어부의 굵은 핏줄과 달뜬 목소리에 따라 어창(魚艙)의 어획량 정도도 가늠할 수 있었다.

지난 겨울동안 바다는 유독 바람의 몽니에 시달렸었다. 하루 걸러 한 번씩 싹쓸바람으로 거칠게 일어나 어부들의 발을 묶기 일쑤였고, 잠시 잠잠한 틈새를 노려 근처에 나갔던 어선에게는 심상치 않은 눈구름, 비구름으로 늧을 보여 중동무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봄이 되면서 달라졌다. 지난 겨울의 강짜를 보상이라도 하듯 바람은 잔잔해졌고, 바다는 바빠졌다. 서남해역의 수많은 섬들 사이로 흐르는 난류를 따라 북상하는 회유성 어류들이 많아지면서 어선들은 줄지어 항구를 떠났고, 어창을 가득 채운 배들은 만선의 깃발을 올린 채 하나 둘 돌아왔다.

바다는, 시장이었다.

목포 바다는 서해로부터 육지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자연스럽게 커다란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민어, 조기, 삼치 등 제철의 어종들이 풍어를 이루면서 바다에선 파도 위의 시장인 파시(波市)가 열렸다. 수십, 수백 척 만선의 배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엔 부두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사서 싣고 떠날 상인들에게도 험한 육로를 돌아가기보다는 해로가 훨씬 더 편했다.

동편에 햇살이 올라오면서 목포항은 배와 사람, 고기로 가득찼다. 신안과 영암, 해남 등 주변의 어장에서 잡아온 해산물들이 한 데 몰려있었다.

어부는 자신의 배를 묶은 뒤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파시가 열린 바다는 물건을 팔려는 이들과 살려는 이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마구잡이로 뒤엉켜 몸이 상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혼란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규율을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고기는 많이 가져왔는가?”

금방 파시에 들어선 듯한 김가(金家)가 걸어오며 말을 붙였다. 그는 신안 사람으로 조기를 주로 잡는데 나이가 같은데다 파시에서 자주 만나면서 친해진 사이였다.

“글시, 뭐 조금 시늉만….”

“뭔 소리여? 솔찬허구만.”

"솔찬은 무슨…."

어부는 김가가 눙치는 소리를 싫지 않게 받아들였다. 어창을 들여다보던 김가는 코를 벌름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아따 냄시여, 코가 그냥 뻥 뚫리는디.”

김가가 코를 만지작거리며 즐거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홍어는 겨울이 제철인디 인자 한물 갔제.”

“그래도 홍어는 요새 값도 좋고 그런 것 같든디…. 상갓집이나 잔칫집에 홍어 안올라가고 된당가?”

“그래봤자 설 대목 앞둔 때와 같겄는가. 나야 그렇고 김가 자네는 재미좀 봤는가?”

“아, 지금 아니믄 언제 돈좀 만져보겄는가. 암튼 각자 일 보고 이따 주막에서 같이 한잔 허드라고 잉.”

물덩범술덤벙 하던 김가는 한껏 기대에 부푼 듯 고기를 팔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어부도 마음이 바빠졌다. 홍어를 팔아 구입할 물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쌀도 필요하고 돼지고기도 사야 할 것이었다. 둘째 녀석은 평소 감기를 달고 살더니 요사이 부쩍 야위어가던데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라도 사서 먹여야 하나? 마누라에게는 어떻게 하나? 큰 맘 먹고 하얀 고무신이라도 한 켤레 사야 하나, 아님 돈 좀 쥐어주고 단 소리로 눙치고 말까.

어부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낯익은 시장 상인 몇 명이 다가왔다. 홍어를 판매하는 이들이었다.

어부는 가져온 물건 중 일부는 상인들에게 팔고, 나머지는 중개인들에게 넘겼다. 흑산도 앞 바다에서 잡아온 찰진 홍어인 만큼 가격은 나쁘지 않았다.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나니 어느덧 해가 하늘 가운데 걸려 있었다. 필요한 일을 거충 매조지 했다고 생각하니 적잖이 배가 주렸다. 뱃가죽도 등가죽에 붙을 지경이었다.

어부는 자신이 남겨둔 홍어 한 마리를 들고 시장 한 켠에 들어선 주막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여관과 유곽, 요릿집, 잡화상, 이발관을 지나 주막이 있었고, 주변에 선구상(船具商)과 염상(塩商), 목욕탕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막에 들어서니 김가가 누군가와 이미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김가는 어부를 보더니 얼른 일어나 옆의 주인 없는 자리로 이끌었다. 김가는 어부의 손에 있는 홍어를 빼앗더니 주인에게 건넸다.

“쥔장. 알제? 잘 익은 머릿고기에 푹 삭은 김치도 같이 내놓드라고.”

김가는 어부에게 술을 따르더니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안주로 놓여진 국물을 집어왔다. 김가는 오랜만에 목돈을 쥐니 기분이 좋다며 가납사니처럼 잡다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주인이 홍어와 머릿고기를 내온 것은 그 때였다. 김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젓가락을 집어 홍어와 머릿고기, 김치를 한데 말아 입으로 가져갔다.

“오매 오매, 징헌거 톡쏘는 이 맛….”

바다 위 시장, 파시(波市)

‘파시’는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을 말한다. 어장에서 어선과 상선 사이에 어획물의 매매가 이뤄지던 곳을 말하지만 어장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육상에서 어업자와 어부를 고객으로 한 각종 상행위가 이뤄진 곳도 포함된다.

‘파시’라는 말이 최초로 나타나는 문헌은 <세종실록>이다. 전라도 영광군에 관한 글에서, ‘조기는 동군의 서쪽 파시평(波市坪)에서 산출된다’고 하고, 할주(割註)를 단 설명에서는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시기에 여러 곳의 어선이 모두 여기에 모여 그물로 이를 잡는데 관에서 그 세금을 징수해 국용(國用)에 쓴다’고 하고 있다.

근대에는 매일 수백 척의 고깃배가 모여들어 각자가 잡아올린 물고기를 하역한 후 보통의 시장에서처럼 거래를 했다. 서해는 봄철부터 서남해역의 수많은 섬들 사이로 흐르는 난류를 따라 회유성 어류들이 북상하면서 어종과 어획량이 많았다. 이에 따라 서해 파시는 큰 규모의 거래량을 보였고, 그만큼 큰 돈이 오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어부와 상인, 중개인은 물론 온갖 상인들이 몰려왔다. 해변가에도 일반 음식점은 물론 선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불야성을 이뤘다.

목포는 개항 이후 자연스럽게 파시가 형성됐다가 내륙에 사통팔달의 도로가 뚫리고 냉장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교통 발달․냉장술 발전으로 사라져

목포 시민들은 여전히 파시를 기억하고 그 비릿한 날내음의 흥청거림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 파시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장이 지난해 8월 1~5일 목포항과 삼학도 일원에서 열린 ‘2014 목포해양문화축제’에서 펼쳐졌다.

목포시는 축제 기간 동명동 종합수산시장 앞에서 삼학도 물양장까지 190m거리가 되는 해상에 150여 척의 배들과 푼툰(부잔교) 등을 연결시켜 바다 위 거대한 시장을 조성, 과거 파시의 왁자지껄하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파시에서는 제철 생선 및 수산물 경매, 홍어 및 민어 해체쇼, 나이롱 극장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져 주목을 끌었다. 선창 파시의 첫 번째 부선에 마련된 선술집 ‘추억의 동천주막’에선 홍탁삼합, 세발낙지, 꽃게무침, 갈치조림, 민어회 등 목포의 오미(五味)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육상시장인 ‘추억의 선창거리’에서는 다방, 삼학분교, 교복사, 미장원, 점방, 만화방 등 1960∼1980년대 선창이 재현됐다. 삼학분교에서는 축제 참가자들이 동창회 모임을 열었고, 미장원에서는 500원에 앞머리를 다듬었다.

이에 앞서 지난 2003년에는 8월 2일부터 6일까지 삼학도와 평화광장 일원에서 행사가 열렸다.

목포항 해상 파시 행사로 해상도교에 먹거리 기행, 수산물 경매, 추억의 선창 등 옛 파시를 재현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또 목포항 맛 기행으로 목포오미 등의 맛길과 소포장 음식 코너 등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2년 8월에는 태풍 ‘나크리’의 영향으로 이틀간 축제 일정을 중단하기도 했으나 파시 개장식과 남도갯길 길놀이, 축제서막 ‘풍어제’ 등을 성황리에 마친 바 있다.

목포는 목포해양문화축제 개최 10주년을 맞는 올해 행사부터 ‘목포 항구축제’로 이름을 바꿔 행사를 치른다.

파시는 흑산도와 목포에서만 형성된 것이 아니었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전북 부안군 위도·흑산도의 조기 파시와 전남 여수시 거문도·완도군 청산도의 고등어 파시, 제주 추자도의 멸치파시, 경북 울릉도의 오징어 파시, 신안 비금도 깡다리 파시, 신안 임자도 민어 파시 등이 성행했다. 전남 영광의 칠산바다, 충남 보령 녹도, 전북 군산의 고군산제도, 황해 용호도 등은 파시에서 유래돼 유명해진 곳들이다.

신안 민어 파시의 경우 일제 때 임자도 대광해수욕장 앞에 있는 타리도에서 열렸다고 한다. 민어가 잡히는 6월부터 10월 하순까지 계속됐는데 특히 8월에 정점을 찍었다. 마치 집시처럼 철 따라 임자도를 찾은 사람들이 하우리 북쪽에 400여 채에 달하는 임시 천막가옥을 세웠으며, 해변에 몇 백여 척이 한꺼번에 정박해 섬과 섬 사이를 배를 밟으며 건너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계절의 순환을 따라 해수욕장에 모여든 사람들로 섬은 작은 도시를 방불케 했으며, 1947년 무렵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 강점기 흔적들

목포는 1897년 개항과 함께 만들어진 도시다. 그 이전까지 서남 해안의 중심은 영산강을 따라 깊숙이 들어간 나주 영산포였다.

유달산 자락에 작은 어촌만 있던 목포가 도시의 규모를 키운 것은 근대의 이름으로 일본의 침탈이 가시화되던 19세기 후반이다. 목포가 영산포에 비해 큰 배를 접안할 수 있고, 앞바다의 수많은 섬들이 천연 방파제를 이뤄 최적의 항구를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포는 개항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호남 곡창의 쌀과 면화, 소금은 목포로 모였고, 거대한 화물선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갔다.

항을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목포는 1930년대에 전국 6대 도시 안에 들었고, 4대 항구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커진 목포항의 또 다른 주인공은 어선들이었다.어선들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파시를 형성했고 오랫동안 목포의 번영에 일조했다.

생선 보관 이송을 위해 1929년 1월 목포제빙냉장주식회사가 창립된 후 당시 하루 15톤의 얼음을 생산했다고 한다. 전국에서 가장 컸다는 목포 파시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파시가 사라진 건 넓고 빨라진 육로가 뚫리고, 냉장 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삼학도가 몇 해(1968~1973)에 걸친 연륙공사와 간척공사로 육지가 되고, 1970년대 목포에 수산물공판장이 들어서면서 수산물의 거래는 해상이 아닌 육상으로 옮겨졌고, 파시는 소리없이 사라졌다. 파시의 비릿한 냄새와 땀과 휴식이 이어졌던 유달산 입구 오거리의 예술인촌과 막걸리집들도 하나 둘씩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목포는 아직도 일제 강점기의 번성했던 흔적을 갖고 있다. 살아있는 역사의 교육장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 흔적 생생히 살아

목포시 영산로에 가면 근대역사거리가 이어진다. 일제가 만든 반듯반듯한 도시의 구획 안에 옛 가옥 풍경들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목포 영산로는 식민시대에 첫 삽의 상징으로 대한민국의 국도 1·2번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국도 1호선은 목포에서 북쪽으로 대전을 거쳐 서울을 지나 신의주로 이어지는 길, 국도 2호선은 부산을 종점으로 향하는 길이다. 1, 2번 국도의 출발점이 바로 목포다. 남북방향의 국도는 홀수번호, 동서방향의 국도는 짝수번호를 부여하고 있다. 도로원표에는 국도 1호선의 종점으로 신의주를 기재하고 있는데 판문점까지는 여기서 498㎞, 신의주까지는 939㎞라고 한다.이 길이 처음 만들어질 때 국도 1호선 구간의 공사는 일본인들에 의해 1904년부터 3년간 전 구간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1호선 공사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투입됐고, 목포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국도 2호선의 경우 동학농민 전쟁 때의 포로들이 주요 노동력이었다고 한다.국도 1·2호선 기점을 알리는 표지석 위편에는 옛 일본 목포영사관 건물(국가사적 제289호)이 아직도 붉은 벽돌의 건물로 남아 있다. 르네상스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일제가 목포항을 개항한 이후 1900년 1월 이곳에 일본영사관을 착공한 뒤 열 달 만에 완공했다.

수탈물자와 전쟁물자의 수송 근거지로서 목포의 입지가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영사관, 목포이사청, 목포부청사 등으로 활용됐다가 해방 후에는 목포시청,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으로 이용됐다. 곳곳에 남아 있는 장식이나 문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벽돌에 새겨진 일본어의 흔적이나 국화, 벚꽃 등 일본을 상징하는 문양들을 찾을 수 있다.

현재는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목포의 근대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당시 번화가였던 옛 영산로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영사관 건물 뒤편으로는 일제의 전쟁 준비 흔적인 인공동굴(방공호)이 남아있다. 공중에서 가해지는 폭격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적 목적의 방어시설이다. 이곳은 단순히 공습을 피하는 곳이 아니라 비상시에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준비를 한 점이 특징이다.

인근에는 호남 최대의 일본식 정원인 이훈동 정원(전남도 문화재자료 제165호)이 있다. 1930년대 일본인 우찌다니 만페이(內谷萬平)가 만든 일본식 정원으로, 해방 후 해남 출신 국회의원 박기배씨가 소유하던 것을 1950년대 이훈동씨가 매입했다고 한다. 일본식 석등과 5층탑, 7층탑 등이 배치됐다. 야인시대 등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5분 남짓을 다시 걸으면 번화로 길 한 켠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전남도 기념물 제174호)이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본이 한국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해 1908년에 설립한 특수 국책회사이다. 동척 목포지점은 본래 나주 영산포에 설립되어 있던 것을 1920년 6월 1일자로 옮겨온 것이며, 17곳의 농장을 관리하며 가장 많은 소작료를 거둔 제1위의 지점이기도 했다. 현재는 목포근대역사 2관으로, 내부에는 목포의 개항과 당시 조선의 역사, 일제의 야욕과 수탈의 상징적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목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인물로 이난영(1916~1965)을 들 수 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부두에 새아씨 아롱젖은 옷자락/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목포 출신 이난영이 부른 노래 ‘목포의 눈물’은 1927년 오빠 이봉룡의 친구 문일석이 공모에서 당선한 노랫말에 손목인이 곡을 붙인 것이다. 지직거리는 유성기 음반을 타고 가파르게 오르다가 휘어져 내려오는 오묘한 가락에 아름답고 가녀리면서 비음섞인 노래는 일제 치하의 우리 민족에게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주었다. 목포의 노래만이 아닌 민족의 노래로, 1세기가 가까운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기도 하다.

아쉽게 짧은 생을 마감한 이난영의 혼백은 지난 2006년 ‘이난영기념사업회’에 의해 경기도 파주 공원묘지에서 41년만에 목포 삼학도의 백일홍 아래 수목장으로 귀향했다. 유달산에 노래비가 있고, 삼학도에 이난영 공원이 지난 2006년 조성됐다.

목포종합수산시장 100년

목포시 동명동에 위치한 목포종합수산시장은 홍어 유통의 메카다. 말 그대로 톡 쏘는 맛의 홍어 천지, 전국 최대의 홍어시장이다. 최고급 흑산도 홍어에 이어 칠레산, 아르헨티나산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1908년 일제 때 수협 공판장이 들어서면서부터 동명동 어시장이 형성돼 100여 년의 역사를 지녔다. 개항 후 바닷가 근처 백사장에서 수산물 노점상을 하던 상인들이 뭍으로 올라와 장사를 시작한 게 그 시작이다.

당초 건어물 도매시장으로 홍어, 젓갈, 선어, 건어물 가게들이 자리잡았다가 2004년 6월 시설 현대화사업을 통해 새롭게 변모했다. 이 곳에서는 ‘동명동 어시장’으로 더 유명하며, 맛 좋고 품질 좋은 수산물과 오랜 전통의 고집이 오랜 역사를 유지하는 비결이 됐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목포수산시장 내 도소매 업소 130여 곳 중 홍어를 취급하는 곳만 100여 곳에 달한다. 나주가 30여 곳에 달하는 것과 비교할 때 엄청 많은 셈이다. 영산포는 냉장 규모가 큰 데 비해 이곳은 협소하지만 전체 매출액은 결코 적지 않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또 중매인 2~3명은 흑산도에서 직거래를 통해 싱싱한 국산 홍어를 전국으로 보내고 있다.

목포에 이처럼 홍어 판매업소가 많은 것은 서해에서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이라는 데 있다. 흑산도에서 홍어를 잡은 배가 제일 먼저 닿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도 초부터 목포항으로 수입산 홍어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홍어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수입 홍어가 적지 않는데도 목포 홍어가 전통 음식으로 인식된 데에는 현대인의 소비성향에 걸맞게 상품화된 영향이 크다.

전국 거래량 80% 차지 ‘홍어 메카’

시장 역사가 깊은 만큼 상인들의 이력도 짧지 않다.

김하경(56) 상인회장은 “3대째 하고 있는 업소가 2곳이며, 2대를 잇는 곳은 많다.”면서 “40~50년 이상 종사하신 분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흑산도산이 비싼 만큼 수입산 홍어를 많이 찾는 실정이다. 칠레산이 많이 알려졌지만 2~3년 전 큰 지진이 발생한 이후 어종이 고갈되면서 수출이 중단됐고, 그로 인해 아르헨티나산이 증가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가 칠레와 근접해 비슷하긴 하지만 칠레산에 비해 뻐세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일부 업소에서 그나마 제3국을 통해 수입된 칠레산을 소량이나마 보유하고 있다.”면서 “흑산도산은 어획량에 따라 가격 등락폭이 큰 데 비해 수입산 홍어 가격은 꾸준히 오르는 편”이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산의 경우 어획량이 줄고 있고 미국은 쿼터량의 제한이 있는데다 국내 업자들의 저장 물량 확보경쟁까지 겹치다보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이곳에서 거래되는 홍어량이 전국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며 “그만큼 각 업소마다 나름대로 노하우를 갖고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목포의 홍어(홍탁삼합)가 세발낙지, 꽃게무침 꽃게장, 민어회, 갈치조림 등과 함께 오미(五味)로 소개되고 있지만 신안과 나주의 '홍어축제‘와 같은 행사가 없다는 점이다. 수년 전 목포에서 개나리꽃 축제, 해양문화축제, 도자기 축제 등의 행사가 이어질 때는 홍어 관련 이벤트가 있었으나 축제행사 수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사라졌다.

김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재래시장 100곳을 대상으로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사업을 펼쳤는데 곡성과 목포 두 곳이 선정됐다.”며 “시설 보완은 물론 라디오 생방송, 토요야시장, 홍어마당극 행사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다.”고 밝혔다.

그는 “행사가 지속되면서 만족할만한 성과로 이어졌어야 했는데 1년만에 그쳐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상인회 차원에서 할인행사 등을 계획해 ‘동명동 어시장 축제’로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목포 홍어는 돼지고기에 김치를 곁들여 먹는 삼합으로 유명하다. 홍어가 밥이 아닌 술과 함께 소비되는 안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하지만 삼합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등장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윤형숙 목포대 교수는 ‘홍어요리의 상품화와 전라도’라는 글에서 ‘옛날부터 전라도에서 홍어를 삼합으로 먹었는가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 이야기는 엇갈린다’고 썼다. 그는 홍어 관련 종사자와의 인터뷰 결과를 토대로 ‘흔히 잔치에 돼지고기, 김치가 나오는 데 홍어와 같이 먹어보다가 삼합이라는 말이 나온 듯 하다’고 밝힌다.

삼합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막걸리(탁주)다. 음식궁합으로 봐도 홍탁삼합은 찰떡궁합이다. 기름지고 차진 돼지고기와 성질이 찬 홍어를 김치에 곁들어 먹고, 따듯한 성질의 막걸리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가 된다.

영산포에 홍어의 거리에 식당이 밀집해 있어 이 중 한 곳을 골라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지만 목포는 뿔뿔이 나뉘어져 아쉽다. 그러나 오랜 기간 영업을 통해 명성을 쌓아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많다.

목포의 대표적 홍어명가로 ‘금메달식당’이 있다. 한동안 국내에 홍어 배가 한 척만 남았을 때, 그 배에서 잡은 귀한 홍어를 팔면서 명성을 쌓아온 집이다. 흑산도 홍어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명가이기도 하다.

‘덕인집’은 서민적인 홍어 요리를 대변하는 곳이다. 흑산도 홍어만 취급하지만 가격이 저렴해 투박한 선술집 같은 이미지를 주는 곳이다. 흑산도 홍어를 삼겹살, 묵은 김치와 함께 내놓는 ‘홍어삼합’이 주요 안주지만 꽃게무침, 고래고기, 민어찜, 가오리찜 같은 다양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덕인집은 희곡작가였던 고(故) 차범석씨 등 문인들이 홍탁을 즐기던 곳이라고도 한다.

목포종합수산시장 주변에도 저렴한 홍어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다.

대동문화 88호 [2015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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