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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여인 마지를 기다리며 노래하는 악공표지 이야기-가수 김원중
데뷔 30주년 기념 음반 준비하는 광주 가객 김원중
김영순 광주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장 | 승인 2016.07.13 17:04

“1천 년 전 꿈에

그대 저 강물 거슬러

혼자 다녀갔다

이만 사천 번 보름달이 떴다 진 그곳에~”

광주 신창지구 유적지에서 고대 여성 미라가 발견됐고 현악기가 나왔었더랬다. 당시로 봐서 선진 문명이 싹트고 꽃피웠을 거라는 반증으로 비단도 있었고 금관도 나왔었다. 불에 그을린 쌀도 함께 출토된 것으로 보아 신창 지구는 고대에 꽤나 번영했던 문명지였음이 밝혀졌다. 그 여인과 로맨스를 나눈 악공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는다. 가칭 ‘신창지구에서 마지(고대 여인 이름)를 기다리다’에서 가객 김원중은 자신이 옛 여인 마지를 기다리는 악공이 되어 가사를 짓고 곡을 붙인다.

천년의 사랑 이야기를 노래 가슴으로 토해내다

그의 상상은 날개를 달고서 고대와 현대를 넘다든다. 서로 만나기로 했던 날이 맞지 않았다. 어찌하다가 ‘1천년’이란 차이가 생겨버렸다. 그래서 마지는 1천년 전에 다녀갔고 악공은 1천년 후에 나타나 여인을 그리워하며 노래한다. 광주가 자랑해마지 않는 고대사에서 팩트를 기반으로 픽션을 가미한 팩션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수없이 신창지구를 갔었다. 때로는 보름달 밝은 밤에도, 그믐달 기울어진 깜깜한 밤에도. 신창지구에서 산동교 사이를 헤매다 보면 어슴프레 동이 터오는 새벽녘이 가까워지곤 했다. 달빛이 그윽한 밤 옛 산동교에서 신창지구를 건너다보면 부서져 내리는 달빛 이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김원중은 1천년을 왔다갔다 하며 마지를 잊지 못하고 기다리는 악공이 돼 있었다. 신창 지구 옛 광주 사람들에게 있었음직한 사랑 이야기를 가슴으로 재연해낸 것이다.

광주 노래는 이번만이 아니다. ‘싱어 송 라이터’를 자처하고 나면서부터 그는 광주를 노래한다. 광주 인근 고을(담양)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그리고 광주를 노래하며 늙어간다. 결코 광주를 떠나지 않았으며 긴 세월 숨 헐떡이며 광주를 보듬어 안은 채 살아왔다. 광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광주가 온통 자신의 운명인 셈이다. 그런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의 가로수는 6월 중순의 녹음이 한껏 짙푸르러 간다. 그의 광주 사랑만큼이나 찐(?)해지고 있다.

요사이 가수 김원중은 광주에 푸욱 빠져 지낸다. 올해로 가수 데뷔 31년.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데뷔 30주년 기념 음반을 올 가을껜 반드시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순전히 광주 노래로. 광주는 그에게 모 아니면 도다. 아니 전부다. 반세기 넘게 살아온 광주는 그가 여태껏 지켜온 정신적 터전이고 영원히 함께 할 삶과 예술의 보금자리다. 그래서 기념 음반 모두 광주 노래 일색이다. 특히 무등산과 관련된 노래가 많다. 너덜겅 약수터에서 바라본 광주 풍경, 추석날 장불재에서 본 보름달, 원효사 주차장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 등을 노래한 광주 관련 12곡이 수록된다. 현재 한창 작업 중이다. 그중의 상당수는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에서 선보여진 것도 있다. ‘춤춘다’ ‘무등산’ ‘광주천’ ‘장불재’ ‘사직공원’ 등이 그것이다.

예술 텃밭 광주는 그의 모든 것

이 곡들을 담은 음반은 크라우딩 펀딩으로 제작될 터이다. 김원중 노래 30년을 함께 하면서 음반이 제작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동참해 만들어낼 참이다. 2008년 5집 음반 ‘느리게 걸어가는 느티나무’도 2010년 기획 앨범 ‘5월 광주 30’도 크라우딩 펀딩으로 제작됐었다. 기존의 음반 제작 형태인 기획사가 끼지 않고 노래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크라우딩 펀딩을 통한 음반 제작을 서두르고 있다. 대중이 함께 소셜 네트워크 기반의 모금 창구를 통해 음악과 대중을 이어주는, 음반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줄 형태가 아닌가 싶다.

광주 일색인 노랫말에 광주가 그렇게도 좋으냐고 물었다. 대답 대신 씨익 웃는다. 한 템포 쉬었다가 묵직한 목소리로 “좋다라기보다는 자랑스럽다는 게 맞다.”고 대꾸한다. 그 안에 살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한다. 그리고 광주의 어법을 노래 안에 살릴 수 있다는 점도 그를 기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어법을 살릴 수 있는 강점을 광주를 떠남으로 해서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지역의 장점, 즉 향토성을 잃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이점이 광주란 곳에서 가능하기에 그는 쉽사리 광주를 떠나지 못한다. 85년 ‘바위섬’을 히트시키며 인기 스타 반열에 올랐을 때도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했다. 후속곡 ‘직녀에게’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광주를 아예 떠나지 않았다.

문병란 시인의 시를 딴 ‘직녀에게’(곡 박문옥)는 발표 직후 금지곡이 됐다. 견우와 직녀의 설화를 빌려 통일을 염원한 가사 때문이었다. 그는 짧지 않은 3년 간의 화려했던 생활을 접고 90년대 이후 방송 활동을 멈췄다. 방송 활동 대신 공연 활동을 펼쳤지만 광주를 떠나지 않고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활동했다.

“저에겐 광주도 부산도 대구도 모두 동 개념입니다. 대한민국의 광주동, 부산동, 대구동일 뿐입니다. 광주에 거점을 두고 필요에 따라 전국의 동을 돌며 공연을 하지요.”

스스로 광주를 지키고 광주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서 광주 사직골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지난 84년이란다. 사직골 크라운 광장에 노래 좀 한다는 치들이 모여들어 괜시리 통키타 튕기며 노래를 불러 제끼던 시절 선배들과 작당을 했다. 당시 음반은 서울에서만 만들어지던 때 광주촌놈들이 반란을 꾀했다. 김원중을 비롯해 박문옥 김종률 신상균 김정식 등이 모여 ‘예향의 젊은 선율’이란 음반을 냈다. 지방이란 곳에서 처음으로 내는 음반이었고 그곳이 바로 광주의 사직골이었다. 바로 그 음반에 ‘바위섬’이 실려 있었고 지역에서 먼저 붐을 일으킨 뒤 85년 서울에 입성하는 기염을 토하며 프로 가수로 등극한다. 그런 맥락에서 사직골 통키타촌은 부각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원중 광주 노래, 더 볼륨을 높여라

김원중의 광주 사랑은 ‘달거리 공연’을 통해 볼륨이 커지고 튼실히 다져지고 있다. 다소 민망하면서도 섹시한 타이틀의 이 공연이 시작된 것은 2003년. 시기적으로 유의미한 때였다. 2002년 미선 효순이 미군의 장갑차에 의해 세상을 떠났었다. 부시가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던 때 반전에 대한 예술적 액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결코 구호로 끝나버릴 수 없는 지속적인 액션을 진득하게 펼쳐내고 싶었다. 그래서 진정성 있는 무대의 이벤트를 꾸렸고 시한은 1년을 잡았다. 혼자서 죽어라고 했다. 힘들고 벅찼다. 숨이 컥컥 막혔지만 1년을 버티며 해냈다. 힘들게 해냈지만 12월 마지막 공연 때 보니 세상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이렇게 끝낼 순 없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올라갔던 마지막 공연에서 “1년 더 하겠습니다”를 외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해서 1년이 더 연장됐다. 다달이 한 번씩 노래로 앓고 노래로 쏟아내고 노래로 흐르고 싶어 했던 그는 매달 한 번씩 상설공연을 어렵사리 토해내길 반복했다. 2년차에 달라진 게 있다면 ‘북한 어린이 빵 만들기’란 부제가 따라붙었다는 거다. 북한 어린이들에게 광주의 손길을 전해주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달거리 공연은 휴지기에 들어간다. 혼자서 준비하고 노래하기가 너무나 벅찼다. 모든 밑천이 바닥나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쉼을 하다가 2010년 달거리 공연이 재개되기에 이른다. 당시 광주문화예술진흥위로부터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1,2차 공연 때 단독 공연인 까닭에 유지하기가 힘든 점을 감안해 지역의 여러 예술가들의 재능 기부와 참여라는 도움을 받았고 그 형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2011년 광주문화재단 출범 이후 지원이 지속되면서 빛고을시민문화관이라는 그럴듯한 공연장에서 정기 무대를 꾸린다. ‘예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무대에 올려보고 싶었고 그것을 위한 파격적인 시도와 다른 장르와의 만남, 그리고 소통을 실천해 광주에서의 소소한 브랜드 공연으로 발돋움시켰다.

2015 달거리 공연,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2015년의 첫 달거리 공연이다. 6월 무대를 준비하는 김원중의 얼굴이 미소가 번진다. 이번 주제는 ‘이렇게 좋은 날에·…’다. 6월 한낮의 더위와 저녁의 선선함 사이에 신록은 눈부시게 짙어가고 몸속을 헤집는 저녁 바람이 소슬한 때 맞춰 올해 첫 무대가 열린다. 6월 29일 2015년 첫 번째 달거리 초대 손님은 여성 디바들의 모임인 ‘더 싱어즈’ 와 미디어아트의 신예작가 신창우 작가다.

그렇게 시작된 2015년의 달거리는 여전히 지역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세대를 아우르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통섭하여 의미 있는 무대로 꾸린다. 아날로그의 대표적인 감성 코드인 추억과 향수를 일깨우고 디지털에 익숙한 신세대엔 잠재되어 있는 감성을 깨우는 무대가 될 터이다. 신나면서도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일렉스트릭 사운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느티나무 밴드’와 ‘프롤로그’, 미래를 준비하는 신세대 아날로그 록으로 대중음악에 새바람을 몰고 올 ‘바닥프로젝트’와 ‘우물안 개구리’,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현재의 국악을 창조해나가는 ‘루트머지’, 샌드애니메이션의 주홍, 소프라노 유형민, 광주 알핀로제 요들클럽 등이 2015년 달거리 무대를 빛낸다.

그간 달거리 공연으로 모은 시민 기부 성금은 모두 8천 5백여만 원이다. 지난 해 4월 공연의 성금을 세월호 유가족 후원금으로 낸 것을 제외하곤 모두 북녘 어린이 영양빵 공장 사업본부에 기증했다. 지역의 예술가, 시민들과 함께 엮어낸 커뮤니티 아트는 우리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북녘 어린이들을 돕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를 지속하고 있다. 이 달거리공연은 김원중에 의해 씨앗이 뿌려졌으나 이젠 스스로 뿌리를 내려 제2, 제3의 달거리 공연으로 확대 재생산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니 기다린다. 달거리 공연과 함께 광주의 아름다운 초여름 밤이 깊어간다.

대동문화 89호 [2015 7,8월호]

김영순 광주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팀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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