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잔뜩 안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모내기가 끝나고 제법 자란 논들의 파릇한 모와 바람에 흔들리는 옥수수대를 바라보면서 햇볕 쬐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강진 군동면 신기마을.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영농조합법인 사무실 앞에는 된장을 품은 옹기들이 줄지어 서서 그 모습처럼 후덕한 마을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해주 최씨 현감공파 종가 15대 맏며느리이자 강진 군동면 신기리를 된장마을로 만들어낸 주인공 백정자(78) 종부를 만났다. 첫 대면에 큰집에 와서 큰어머니를 만난 기분이 난다.

된장으로 부자가 된 마을의 사연

“처음에는 우리 집에 있는 콩을 소비하기 위해 메주, 된장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도 보내고 하다 보니까 친척들이 옷가지를 답례로 보내 주었는데 그게 재미있더라구요. 물물교환식이었어요. 그런데 서울 친척집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우리 된장 맛을 보고 아름아름 너도 나도 주문을 하는 겁니다.

그 바람에 우리 집 콩으로는 부족해서 점차 마을 콩을 사들이고 좀 더 나아가 군동면 지역의 콩을 사들이고 지금은 강진군내 콩을 매입하여 된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종부가 말하는 된장 마을이 된 사연이다. 처음에는 가정에서 부업으로 시작했다가 점차 마을부녀회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현재는 영농조합법인으로까지 성장하게 된 것이다. 부업이 커져 동네 살림 사업이 됐다.

지혜로운 종부의 부지런함으로 콩을 가공하여 팔면 부가가치가 더 높다는 사실을 알고 콩을 메주로, 메주를 장류로 가공하여 시장을 개척한 종부의 손길이 억척스럽고 야무지다.

백정자 종부는 장흥 수원 백씨로 1960년대 초에 해주 최씨 종가로 시집을 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으며 전통음식 제조 비법과 요리 비법을 전수받았다. 이제는 법인을 두고 아들인 현감공파 16대 종손 최진호(52) 부부와 마을 부녀자 10여명과 함께 전통의 솜씨를 담가 전국으로 그 맛을 전하고 있다.

전국을 제패한 전라도 된장 맛의 비법마을 부녀회장을 지낸 백 대표는 1980년대 초 처음에 36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대부분 작고하거나 이사하여 10여명이 함께 된장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마을 부녀자들 모두가 겨울에는 콩을 삶고 메주를 쑤었는데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을 했다며 월급쟁이들은 못할 것이라 한다.

왜냐하면 희생과 봉사가 더 요구되는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메주를 서울로 보내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강진읍내까지 나가서 정기 화물편에 탁송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점차 광주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직접 광주로 시장 개척을 나서기도 했다. 이스라엘 모샤브 운동과 같이 공동 작업을 통해 기반을 닦았다고 하는데 그 공동체 정신의 아름다움이 동네 사람들의 감소로 전통의 맥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진 전통 된장마을 백정자 씨는 “전통 장류가 건강식품으로 알려지기 시작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면서 전통장류를 제대로 담그고 싶은 분들을 위해 장 담그는 법을 알려 주셨다.

메주를 주문한 사람들은 군동 메주로 간장 된장을 담글 수 있도록 설명서를 함께 보낸다. 먼저 메주를 물에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린다. 간장 담그는 독에 말린 메주를 차곡차곡 쌓아 넣고 소금을 적당량의 물에 충분히 녹인 후(싱싱한 달걀이 약간 뜰 정도) 하루가 지나면 윗물만 독에 붓고 가라앉은 찌꺼기나 불순물은 제거한다. 불붙은 숯 서너 개와 마른 고추와 대추 대여섯 개를 띄운다. 메주가 뜨지 않으면 소금을 더 넣어 메주가 뜨도록 조치한다. 옹기에 망사를 덮어 맑은 날엔 뚜껑을 열어 햇볕을 숙성시킨다. 한 달 후(겨울엔 40일 이상) 된장을 가려 간장을 적당히 다린다.

<동의보감>에는 콩은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오장을 보하고 중초와 열두 경맥을 좋게 하고 중초를 고르게 하며 장위를 따뜻하게 한다. 콩에는 검은 것과 흰 것 두 가지가 있는데 검은 것은 약으로 쓴다고 전한다.

건강 만능 발효 음식, 된장으로 6차 산업 일구다

된장의 효능은 항암 효과, 고혈압, 간 기능 강화, 노인성 치매 예방, 소화제, 골다공증 예방, 당뇨 개선, 비만, 변비 예방, 심장병과 뇌졸중 예방, 기미, 주근깨 제거 등에 좋다고 전해오고 있다.

백 종부님은 “계절마다 나는 제철 콩을 즐겨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며 “완두콩, 강낭콩, 서리태가 밥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전한다. “우리 된장은 3년 묵은 것이 가장 맛이 좋아요. 그리고 신안에서 천일염을 들여다 간수를 빼고 3년을 묵히면서 염도를 낮추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통의 맛을 유지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 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37호 정윤석 옹의 강진 칠량 옹기만 구입하여 쓰고 있어요.” 이렇게 설명한다. 영농조합법인 사무실 마당에 즐비하게 늘어선 된장독을 열어 된장 맛을 보여 주었는데 짜지 않은 구수함이 입안 가득해진다.

강진 전통된장 영농조합법인에서는 도시민들을 위해 고추장 담그기, 농촌 체험과 된장 담그기, 메주 직접 쑤는 체험을 통해 방문객들과 함께 인심과 정을 나누고 있다. 생산되는 장류로는 국내산 콩 100%의 전통 된장, 일품의 깊은 맛을 내는 전통 고추장, 3년 이상 숙성된 전통 간장 등이 있고, 자연식품으로 메주, 청국장, 청국장분말, 메주가루, 엿기름, 고춧가루 등이 있으며 된장 고추장 간장으로 구성된 전통장 선물세트가 준비되어 있다.

명곡서원 중심으로 일군 해주 최씨 집성촌마을 뒤편 구릉지에는 해주 최씨 집성촌의 정신적 요람인 명곡서원이 있다. 명곡서원은 본래 장흥군 월평리에 건립하여 명곡사라 했다 한다. 1974년에 장흥과 강진 유림들이 발의하여 지방 유림의 뜻을 합하여 성균관의 통유로 건립했다. 그러나 후손들이 멀리 살고 있어 제사를 지내는 일에 제물을 준비하고 공급하는 절차 등에 어려움이 많아 1984년 유림들이 논의하여 사우를 현재의 자리인 신기리에 이축하게 되었다.

신기리 마을은 좌승지공 최우가 입향한 터로 윗대 선조들의 제답과 강당이 보존되어 있으며 해주 최씨 집성촌이다. 명곡서원에는 고려 문신으로 일생 동안 교육가로 이름을 남긴 해동공자 문헌공 성재 최충, 최충의 장남으로 사찰 건립에 따른 자연 훼손과 재정 낭비 반대 상소를 올린 문화공 송탄 최유선, 당대의 문필가로 보한집을 저술한 문청공 동산수 최자, 청백리에 선정되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부제학공 강호 최만리, 입향조 승지공 호은 최우 등 5위를 두고 음력 3월 상정일에 향사하고 있다.

대동문화 89호 [2015 7,8월호]

최성은 전문위원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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