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고종 황제가 조선의 임금이던 시절에 전남 영광에 판소리(서편제) 명창 배희근이 살았고, 담양에는 박원석이 살았다. 배희근 명창은 딸 금순을 박원석의 아들 박장원의 배필로 보낸다. 박장원과 배금순은 동실, 영실 두 아들과 방초, 요초, 지초 3녀를 두게 되는데, 현재까지 이어지는 소리 집안의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

장남 박동실(1897∼1968)은 외조부 배희근, 부친 박장원, 외조부의 제자 김재관에게서 김채만 소리를 배우며 판소리 명창으로 성장한다. 박동실이 배운 김채만 소리는 동향 담양 출신이었던 이날치에게서 전해져 온 서편제의 본류 소리였다. 박장원은 동편제의 중심이었던 송우룡에게서 소리를 배워 아들 동실에게는 서편제와 동편제의 유산이 함께 전해진다.

박동실 임방울로 이어지는 판소리 가계

화순 능주에는 명창(名唱) 공창식(1887∼1936)이 살았다. 능주의 소리는 담양·광주의 소리와는 또 달랐다. 공창식 명창은 서편제의 김채만과 동편제의 송만갑에게 소리를 배우고, 5명창의 뒤를 잇는 장판개, 박중근, 김정문 명창과 어깨를 겨루었다. 서편제·동편제를 모두 아우른 그의 독특한 성음은 제자 임방울에게 전해졌다. 임방울은 국창(國唱)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명창이 되었다.

공창식 선생은 딸 영순을 박장원 선생의 둘째 아들 박영실에게 시집보내고, 1941년 광주에서 아들 박종선이 태어나는데, 명창으로 이름을 날리던 영실은 아들이 세살 때 창극 ‘일목장군’을 연습하다가 세상을 뜨고 만다. 박동실이 어린 조카를 거두어 부모 대신 담양의 집에서 키우게 된다. 종선은 할머니 배금순 여사의 굿판을 따라다니며 소리를 듣고 자란다.

공창식 선생의 아들 기남(1917∼1971)은 19세 때 부친이 세상을 뜨자 사돈인 박동실의 제자가 된다. 동실의 제자 중에는 옥과 출신의 명창 한애순(1924∼)이 있는데, 동실의 막내 동생 지초는 한애순 명창의 오빠인 명무(名舞) 한진옥(1910∼1991)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박종선에게는 고모부가 된다.

공창식에게는 공대일(1910∼1989)이란 조카(어느 자료에는 사촌동생으로 나온다)이 있는데, 슬하에서 1인 창무극(병신춤) 명인 공옥진(1931∼2012)이 태어난다. 공옥진은 박종선에게는 외척 이모 아니면 누나가 되는 것이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공씨 집안에서는 민지(1994∼)라는 아이가 태어나는데 ‘2NE1’이라는 아이돌 그룹 멤버로 유명한 스타가 된다.

6‧25가 터지자 박동실은 사돈이자 제자인 공기남을 데리고 월북을 하게 된다. 담양·창평·화순·능주·승주를 아우르는 명창 집안에 큰 상처가 남게 된다. 박동실 집에서 자란 조카 종선은 1965년 무렵 화순 출신의 아쟁 명인 한일섭의 제자가 되어 아쟁을 배우게 된다. 한일섭은 박종선의 고모부인 명무(名舞) 한진옥의 친척이었다.

조부는 가야금 명인이 한덕만(1867~1934)이었고, 숙부는 판소리 명창 한성태(1890~1931), 창극배우 한갑순(?~1946),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 산조 예능보유자 한갑득(1919-1987),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한승호(1923~2010)는 사촌이었다. 한일섭에게서 아쟁을 배운 종선은 박종선류 아쟁산조의 창시자가 될 만큼 아쟁에 있어서는 최고의 명인이 된다. 후일 국립창극단 단장까지 지내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같았던 큰아버지 박동실과 외삼촌 공기남이 월북을 했는데 편하게야 살 수 있었겠는가?

1970년대 싱어송라이터 김정호의 탄생

월북한 박동실에게는 숙자(희숙)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조용호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의 판소리와 외당숙의 아쟁을 들으며 자란 조용호는 장성하자 음악을 하겠다고 나섰다. 노래를 만들어 가까이 지내던 임창제 형에게 주는데 ‘저 별과 달을’, ‘작은 새’, ‘사랑의 진실’ 등과 같은 곡은 히트를 치게 된다. 그룹 어니언스의 등장이었다. 어니언스가 성공을 거두자 조용호는 본인이 직접 ‘이름 모를 소녀’ 등을 발표하고 화려하게 등장한다. 이름도 조용호에서 김정호로 바꾸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아는 ‘남도의 소리 영혼’이라 불리는 위대한 스타 김정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1920∼30년대 젊은이들과 엘리트들이 즐긴 음악은 트로트였다. 식민 지배국인 일본에서 들어온 음악이었지만,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고 선진적인 음악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이 흐르면서 트로트는 더는 젊은이들과 엘리트들만의 음악이 아니었다. 무수한 국민 가수들 중에서도 가장 앞자리에 있는 이미자를 탄생시킨 서민의 음악이 되어 있었다. 더는 남의 음악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제 젊은이들과 엘리트들에게는 자신들을 서민들과 구별해 주는 새로운 음악이 필요했다. 그들은 밖으로 눈을 돌렸다. 1969년 클리프 리챠드가 내한 공연을 했을 당시의 분위기에서 젊은이들의 욕구를 읽을 수 있다. ‘광란’이라고 표현된 자료도 찾을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젊은이들의 갈구를 읽어야 한다. 여러 외국음악이 젊은이들에게 어필했지만, 장르적으로 본다면 젊은이들의 갈구를 가장 크게 채워준 것은 포크였다. 포크는 미국에서 건너온 음악이었는데, 우디 거스리에 의해 현대적 모습을 갖춘 미국 포크의 당신 모습은 반전(反戰; 베트남전)과 히피로 상징되는 젊은이들의 문화였다. 젊은 세대들은 외국 음악, 미국 음악에 이미 귀가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김정호의 음악은 포크 계열로 분류되지만 1970년대 포크를 주도했다고 하는 이들의 음악과는 많이 달랐다. 1970년대 주류 포크 가수들의 음악은 도회적(도시적)이고, 젊은이들의 감성을 순수하게 이야기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김정호의 음악은 자세히 살펴보면 본질적으로 그러한 음악이 아니었다. 김정호 음악의 본질은 시골(고향)에 있었다. 젊은이들의 감성으로 보인 것의 밑바닥에는 ‘아리랑’ 등의 전통음악에서 만날 수 있는 정한(情恨)의 세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요소들을 김정호는 현대적인 음악 장르에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었다.

전통음악 이은 포크송 시대 열어가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는 김정호의 감성이 이성적으로는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감성적으로는 바로 젖어들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에 맞닿아 있는 선율과 가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이론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체감했다. 김정호의 음악은 낯설지만 가장 익숙한 음악이었던 것이다. 김정호의 음악에서 남도의 유산을 읽을 수 있는 배경이다.

김정호처럼 한국의 전통적 음악 유산인 국악·아리랑·무가(巫歌)의 혼을 현대적으로 잘 살려낸 이가 정태춘이다. 그런데 정태춘의 음악과 김정호의 음악은 또 다르다. 정태춘의 음악을 들어보면 상당히 절제되어 있으면서 정형화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경기도 소리의 전통을 느낄 수 있다. 김정호의 음악은 절절하고, 애절하다. 사람의 감성에 짙은 호소력을 남긴다. 정한(情恨)의 세계에 보다 더 가까이 있다. 남도소리의 특징이다.

김정호는 죽기 전 국악에 대한 애정을 말했다. 시골 출신이라고 누구나 다 국악에 대한 애정을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자신도 잘 몰랐을 수 있지만, 김정호의 음악에는 처음부터 그것이 담겨 있었다. 김정호를 만든 문화적 뿌리와 환경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대동문화 91호 [2015 11,12월호]

천세진 문화비평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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