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이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았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후 한눈팔지 않고 꾸준하게 달려온 결과, 20년 동안 17편의 연출 목록을 쌓아올린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한국영화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자랑한다. 지식인들이 일상에서 펼치는 허위의식과 자기기만을 일관되게 전시하며, 영화적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이 그간 탄생시킨 인물들의 면면은 우리 시대의 장삼이사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소설가이자 감독이었으며, 교수이자 예술가로 등장해서 비루한 욕망에 노출되는 것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홍상수는 자신이 주변에서 만나거나 경험했던 인물들을 유심히 관찰하여 이를 객관화시켰고, 출연배우들에게 이식시키는 과정을 거치며 ‘홍상수표 인물’들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짝짓기에 매달리는 ‘홍상수표 인물들’

이러한 홍상수 영화 속의 사내들은 짝짓기에 매달리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홍상수 감독이 그간 자신의 영화 속에서 전시했던 인물을 재차 되살린 것은 물론, 이 인물의 발전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는,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와 화가 윤희정(김민희)이 두 번에 걸쳐서 상황을 반복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 때문에 두 인물의 태도와 제스처 그리고 얼굴 표정과 말투 등에서 미묘한 차이가 드러나며, 관객들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두 세계와 마주할 수 있게 된다.

1부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속에서 보여지는 함춘수는 그간 홍상수영화에서 욕망 앞에서 허우적거렸던 인물의 재연이다. 함춘수는 화성행궁(華城行宮) 안의 복래당(福內堂)에서 윤희정을 만나게 된다. 이때 춘수가 희정에게 수작을 걸고 있음이 감지된다. 그리고 희정의 화실로 장소를 옮겨서도 그녀의 그림을 칭찬하며 환심을 사고자 하는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술집으로 이동해서도 희정이 듣기 좋은 언설을 늘어놓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희정 역시 이 달콤한 언어가 싫지 않다.

이렇게 1부의 춘수는 희정을 어떻게 해보려고 용을 쓰고 있는 인물이다. 춘수는 그간의 홍상수 영화 속 주인공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수컷 본능’에 충실한 인물인 것이다. 가관인 것은, 춘수가 기혼자임을 숨기고 있다가 그 사실이 알려지며, 희정이 춘수를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1부에서 보여 지는 춘수와 희정은 홍상수 감독이 그려왔던 인물들의 판박이인 셈이다.

알몸의 퍼포먼스를 벌이다

2부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상황이 좀 다르다. 함춘수가 화성행궁 안의 복래당에서 윤희정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이동하는 동선은 똑같다. 한데 춘수가 희정에게 대하는 모습이 1부보다는 들떠있지 않고 차분하다. 희정의 그림에 대한 춘수의 품평 역시 냉정하다. 희정의 입장에서는 매몰차다 싶을 정도다. 술집에서도 춘수는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복래당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사랑하고 있었고,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하지만 이미 결혼한 몸이라는 것까지 말한다. 그러니까 2부의 춘수는 가식으로 상대를 대하지 않는다.

1부에서 춘수가 노림수가 빤한 방식으로 희정에게 접근했고, 희정 역시 자기를 칭찬해 주고 예뻐해 주는 것에 마냥 좋아했다면, 2부에서 춘수는 솔직함을 무기로 상대에게 다가갔고, 이를 받아들이는 희정의 반응 역시 진솔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춘수가 술집 ‘시인과 농부’에서 보여주었던 기이한 행동은 설득력이 있다. 1부에서 춘수는 숨기고 싶었던 진실이 들통이나 속마음이 발가벗겨 졌다면, 2부의 춘수는 답답한 마음속을 드러내고자 ‘알몸의 퍼포먼스’를 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대목은 감독이 부러 관객들을 당황스럽게 하려고 연출한 장면이 아니다. 이는 홍상수 감독이 확인할 길이 없는 인간의 속마음 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행동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인 것이다. 홍상수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하지 않고, 옷을 벗어서 답답함을 표했던 춘수를 제시했던 것이다.

함춘수가 주영실(서영화)에게 선물 받은 시집에 적혀 있는 문구를 확인하다면 이는 좀 더 명확해 진다. ‘우리의 삶의 표면에 숨겨진 것들의 발견만이 우리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길’이란 글귀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2부의 춘수는 홍상수가 그간 그려온 인간들에 비한다면, 분명 획기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족보에 없는 인물을 탄생시켰는지가 궁금해진다. 이는 올해로 영화 연출에 있어서 성년을 맞이한 감독으로서 자신의 영화 속 인물을 성장시키고 싶은 욕구의 반영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자신이 선보였던 기존의 인물을 먼저 보여주고, 한 뼘 더 자란 인물을 2부에서 제시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분명한 것은, 홍상수가 20년 동안 자신이 즐겨 다루었던 ‘찌질한’ 인물형이 아닌 이상적인 인물을 그려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분명 2부의 춘수는 홍상수의 이전 영화들에 비해 자신에게 솔직하고 욕망에 정직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홍상수 감독의 다음 영화가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지가 자못 궁금해지는 것이다.

대동문화 91호 [2015 11,12월호]

조대영 광주독립영화협회 대표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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