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가게 이야기를 들으면 오롯이 자신의 것을 지키며 살아 온 명인의 솜씨와 고집스러움을 엿볼 수 있어 좋다. 묵묵히 제 길만 고집한 사람들, 그들의 삶은 언제나 타인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들이 만들어 낸 상품의 품질은 언제나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찾는 이들의 마음을 충족시킨다.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군산의 이성당, 전주의 풍년제과, 대전의 성심당, 순천의 화월당, 서울의 태극당에 이어 목포의 코롬방제과, 광주의 궁전제과 전국 5대 빵집을 넘어 7대 빵집을 두루 찾아다니는 골목여행이 유행처럼 번졌다.

젊은 여행객들은 전국 곳곳을 누비며 언제나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힘, 창조란 바로 젊음이다. 본연의 것을 변형시키지 않고 끊임없이 지켜내려 노력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오랜 세월 변하지 않고 우리의 맛과 멋을 지켜온 사람들이야기가 그래서 늘 새롭게 다가온다.

오랜 세월 한결같은 빵집

전남 순천에도 100여년 가까이 오로지 외길만 걸어온 맛집 명가가 있다. 화월당과자점이 그곳이다. 3대째 그 맥을 이어왔으니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제법 전통이 오래된 가게다. 순천시 원도심 중앙에 위치한 화월당(花月堂, 순천시 남내동)은 1920년 지금의 자리에 일본인이 문을 열었다.

1928년부터 여기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조천석씨가 광복 때 이곳을 인수한 후 3대째 그 맛을 이어오고 있다. 화월당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옛것이 퇴보하고 있던 시기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난립으로 동네 빵집들이 죄다 구닥다리로 내몰려 사라지고 나자 의외로 더 알려진 맛집이란 점이 흥미롭다.

여느 빵집과 다르게 이곳의 메뉴는 딱 두 가지뿐이다. 단팥의 팥소를 듬뿍 넣은 하얀색 모찌와 노르스름하고 구수한 향이 그윽한 볼카스테라이다. 쿠키나 팥빙수, 크림빵 같은 다양한 종류의 빵들은 이곳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화월당 문을 여는 순간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은은한 카스텔라향이 뇌파에 전달되는 순간 그것은 안식향이였다. 이곳을 찾아오기 위해 복잡한 도로를 질주하며 바쁘게 뛰었던 가슴이 이내 진정된 느낌이다. 화월당을 들어서는 순간 이런 기분을 느꼈다면 그 사람은 필시 음식의 맛을 평가할 수 있는 맛객임이 틀림없을 터.

어떤 존재를 알아보고 또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들로 인해서 가치가 평가되어지듯 이곳에 오면 오랜 세월 외길만 고집한 장인의 솜씨가 은은한 안식향으로 전달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말로만 전해 들었던 순천 화월당을 처음 방문한 필자의 진솔한 느낌이기도 하다.

1920년 일본 시마네 현의 고바야시가 가족들을 이끌고 순천에 이주하여 문을 연 것이 화월당과자점의 시작이다. 고바야시는 원래가 건축기술자였지만 이곳에 와서 일본인들이 즐겨먹는 모찌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그의 빵집에서 전남 승주 사람인 지금의 사장 조병연(70세)씨의 선친이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1928년 15세의 나이로 이 가게에 취직하게 되면서 1대 사장 조천식씨는 일본인들에게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근로자의 날에 신사에서 표창을 받을 정도로 부지런 했다. 화월당 가게 안에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옛날의 사진들과 선친의 물건들이 한쪽에 장식되어 화월당 계보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 고바야시 가족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이후 선친 조씨는 화월당을 새롭게 단장하고 다시 문을 열었다.

그 시절 화월당 빵은 순천의 유지급이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이었다. 서민들이야 밀가루를 반죽해 군불을 피고 남은 잿더미에 살짝 얹어 밀병을 구워 먹던 때이므로 화월당 빵은 언감생심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묘하게 생긴 빵이란 음식을 사람들은 ‘서양떡’이라 부르며 한 번이라도 맛보고 싶은 마음에 군침만 꿀꺽 삼켰을 뿐이다.

화월당의 명물 모찌와 볼카스테라

새롭게 화월당 문을 연 1대 사장 조천식씨는 일본인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 그대로 빵을 구워 팔았다. 메뉴가 단출한 지금과는 달리 빙수, 케이크, 도넛 등 제과점의 다양한 종류의 빵들을 만들어 판매했고, 화월당은 중산층 사람들이 애용하는 만남의 장소로 60~70년대를 풍미한 순천의 명소가 되었다.

그 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전남 동부권의 활발한 상권의 움직임으로 수많은 서구 음식점들과 제과점이 생겨나면서 차츰 그 명성이 시들해져 침체기를 겪어야 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서울 같은 큰 도심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90년대를 거치면서 경제위기는 더욱 악화되었다. 마케팅을 앞세운 기업 프랜차이즈 사업 때문에 동네 빵집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되는 위기도 맞이했다.

선친에게 제빵 기술을 물려받은 2대 조병연(70)사장은 처음 겪는 어려움 때문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지만 선친이 살아 계서서 차마 가게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굽자마자 순식간에 모두 동나던 빵들이 많은 양을 만들어 봐야 몇 개 팔리지가 앉자 조씨는 여러 종류의 메뉴를 정리하고 단출하게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IMF 이후 근근이 이어가던 화월당은 옛 메뉴인 모찌와 카스테라를 수수하게 다시 선보였다. 푸짐하고 알찬 단팥을 넣은 모찌와 샛노랗게 구수한 카스텔라는 선친이 일제강점기부터 만들어 왔던 화월당의 주 메뉴였다.

떡쌀의 피가 얇고 하얗게 생겨서 물컹거리는 모찌는 씹는 순간 입안에 살살 녹는 맛이다. 냉동 보관을 해두고 몇 날을 먹어도 그 맛이 변하지 않을 정도다. 샛노랗고 구수한 맛의 카스테라 역시 팥소를 넣고 둥글게 만들었다. 마치 테니스공처럼 생겨서 볼(ball)카스테라이다. 둥그렇게 세상을 껴안은 것처럼 가게 안에 들어가면 하얀색 모찌와 노란색 볼카스테라가 언제나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화월당이 명성을 되찾은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입맛이 식상해진 사람들이 다시 추억의 맛을 더듬기 시작했을까.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사람들은 옛 추억의 맛을 찾아 향수를 달래고 있었다. 화월당 매출의 80~90%가 택배 주문이다. 소문을 듣고 순천을 찾은 사람들이 관광 후 오후쯤 이곳을 들르게 되면 대부분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오전 10시부터 빵을 굽기 시작하지만 전국에서 쇄도하는 택배물량에 맞추다 보니 발품을 팔아 이곳까지 물어물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그 맛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다 마치 전리품이라도 얻은 듯 기쁜 마음에 박스가득 선물 꾸러미를 준비하는 관광객들을 이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화월당 빵 맛의 비결은 별 다른 게 없다. 첨가제를 넣지 않고 자연의 재료를 아끼지 않아 옛 맛 그대로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고 조씨가 말한다. 화월당은 이제 아들 형제에 의해 3대째로 접어들고 있다. 해외 유학으로 제빵을 배워 온 이들 역시 화월당의 옛 명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옛이야기 가득한 문화의 거리

화월당과자점 인근에는 순천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옛날부터 순천의 중심축이었다. 하나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고을은 일제에 의해 성벽이 허물어지고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화월당이 위치한 곳에 남문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고 오거리 웃장 인근에 북문표지석이 보인다. 순천 문화의 거리에는 많은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하는 갤러리가 생겨났고 분기별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이곳 문화의 거리를 차분히 둘러보면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순천의 역사가 한 눈에 보인다. 그 중에는 고려 충렬왕 때 청백리로 알려진 승평부사 최석의 팔마비에 얽힌 이야기와 임진왜란 때 조선수군재건을 위한 충무공이순신의 물자이동로, 일제 강점기 때 대한독립을 외치며 의사로 추대된 박항래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문화의 거리 웃장에는 난장마다 남도사람들의 이야기가 질펀하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행복해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웃장과 아랫장을 오르내리며 골골이 흐르는 옥천 따라 이곳의 역사가 희미한 물길을 이룬다.

문화의 거리를 차분히 걸으면서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순천만의 청정한 자연 바람과 함께 일어오는 이곳 사람들의 청렴함과 성실한 마음이 읽혀진다. 그러면서도 불의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강인한 근성들이 보인다. 사람들의 발길이 또 그렇게 흐르고 모든 이야기들은 이곳을 지난다. 어느덧 순천 명물이 된 화월당의 빵은 대대로 내려오는 이곳사람들의 정신문화와 어우러진 걸작이지 싶다.

어느 해 도심의 골목길을 무심코 걸으면서 느꼈던 달빛아래서 날리던 아련한 향기, 그것은 내 생애 처음 접하게 된 은목서 향기였다. 그 안식향을 처음 느꼈을 때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은은한 카스텔라향이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아마도 화월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대동문화 93호 [2016 3,4월호]

정지승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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