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락 타운으로 ‘죄수’를 이송해가던 ‘교수형 집행인’은 설원 속에서 우연히 ‘현상금 사냥꾼’, ‘보안관’과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거센 눈보라를 피해 산장으로 들어선 4명은 그곳에 먼저 와있던 또 다른 4명, ‘연합군 장교’, ‘이방인’, ‘리틀맨’, ‘카우보이’를 만나게 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는 일찍이 비디오가게 점원을 하며 섭렵했던 수많은 영화들을 자양분 삼아, 이를 인용하고 비틀어서 현대적으로 재창조해 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감독이다.

이는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에서부터 계속 되어왔던 것이고, 이탈리아 서부극의 영웅인 ‘장고’가 미국 남부의 흑인 장고로 다시 태어났던,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타란티노의 일곱 번째 재능이었다.

타란티노의 여덟 번째 영화인 <헤이트풀8>에서도 ‘장르 비틀기’와 ‘인용’은 멈추지 않는다. <헤이트풀8>은 남북전쟁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역마차가 등장하며 현상금사냥꾼과 보안관 등이 활보하는 것으로 보아 서부극이 분명하다.

한데 이 서부극은 인물들이 흙먼지를 풀풀 날리며 모뉴먼트 벨리를 횡단하는 것이 아니라,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치는 설원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타란티노답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눈 덮인 산야(山野)를 몇 개의 쇼트로 보여준 다음, 눈이 내려앉은 나무로 된 십자가예수상(crucifix)의 얼굴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예수의 얼굴을 포착했던 카메라가 완만한 속도로 뒤로 물러나면, 광활한 눈밭에서 역마차가 전진해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카메라는 계속 물러나면서 역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십자가예수상을 응시한다. 약 4분여에 달하는 이 롱테이크는 타란티노가 심혈을 기울여 연출했음이 역력하다.

이 도입부의 십자가예수상은, 반전(反戰)영화의 걸작인 샤뮤엘 퓰러의 <지옥의 영웅들>(1980)을 의식하고 있다. <지옥의 영웅들>은 전장의 십자가 예수상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이다. 1차 세계대전의 종전 소식을 접하지 못한 파섬(리 마빈)이 무장해제한 적군을 살해하는 장소를 십자가 예수상 아래로 설정했었다.

그러니까 타란티노는 자신의 신작을 십자가 예수상으로 시작하며, <지옥의 영웅들>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야심찬 주제를 담아내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 예수상으로 영화의 문을 열었던 타란티노는, 이어지는 전개에서는 서부극의 고전에 딴지를 건다. 침체되어 있던 서부극을 부활시켰던 <역마차>(1939)의 이데올로기를 따져 묻는 것이다.

존 포드의 <역마차>는 역마차에 탑승한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고난을 거치며 공동체의식을 회복하고, 아파치의 위협에 하나로 뭉쳐 대응한다는 긍정의 세계관으로 일관하는 영화다.

이에 대해 타란티노는, 존 포드와는 판이한 인물들을 배치하며 각을 세운다. 역마차를 타고 산장에 모인 인물들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서로를 신뢰하지 않으며, 공동체의식도 희박한 인간들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타란티노는 서부의 소박한 공동체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한다.

이 거짓말쟁이들이 거센 눈보라를 피할 수 있는 산장에 모여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다가 결국에는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헤이트풀8>은 <역마차>로 대변되는 미국서부극의 신화를 해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타란티노는 서부극의 공동체의식을 부정한다.

그리고 타란티노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흑인과 백인을 대치시킨다. 남부군의 전직 장교 샌포드(브루스 던)와 현상금 사냥꾼인 워렌(사무엘 잭슨)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설전은 꽤나 오래 지속되며 흥미를 자아내는데, 이들의 이력을 보면 증오로 가득 차 있음이 확인된다.

백인인 샌포드는 북부군의 흑인병사 수백 명을 재판 없이 총살했었고, 흑인인 워렌은 남부군의 교도소를 탈출하면서 백인병사 수십 명을 불태워 죽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두 인물로 대변되는 흑인과 백인들은 서로에게 증오의 감정을 떨쳐내지 못한다.

이렇게 타란티노는 미국의 고질병의 하나인 ‘흑백갈등’을 연출하며, 인종차별이 야기하는 심각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와의 연장선에서 검토해 볼 수 있는 것으로서, 미국인들이 피부색깔에서 해방되기를 염원하는 타란티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타란티노는 이 지점에서 심각한 논의를 잠시 거두고, 산장 안을 추리극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러니까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긴장감 높은 밀실극을 만들어내기 위해, 폐쇄된 상황을 설정하여 독자들에게 극적 긴장과 쾌감을 선사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장기를 영화 속에 녹여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타란티노는, 자신의 장기인 시간과 시점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한다. 시간은 당일 오전의 산장으로 되돌리고, 도머그(제니퍼 제이슨 리)의 시점을 활용하여 누군가가 커피에 독약을 타는 모습을 지켜보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헤이트풀8>은, 인물의 관계도가 새롭게 재편되면서 호기심과 궁금증이 증폭되는 이야기로 거듭난다. 이쯤 되면, 쿠엔틴 타란티노를 아가사 크리스티의 영화적 재림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타란티노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엇나가는 것은 아니다. 산장 안 인물들의 근본이 바뀌는 것은 아니며, 그들은 불신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서 파국을 향해 치닫기 때문이다.

결국 <헤이트풀8>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혹은 대의를 위해 싸웠던 남북전쟁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들을 산장 안에 모아놓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싸우다가 자멸하도록 하는 이야기다. 타란티노는 '증오'가 만연한 미국역사의 한 페이지를 오늘의 시점에서 상상했던 것이고, 현재의 미국이 서부 시대와 비교했을 때 더 나아졌는가를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대동문화 93호 [2016 3,4월호]

조대영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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