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 그런 의미가 있죠. /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응답하라 1988>이 끝났다. <걱정 말아요 그대>가 흐를 때 금방이라도 터질 듯 먹먹해졌던 가슴은 아직도 뻐근하고 촉촉하다. <걱정 말아요 그대>는 2004년에 들국화가 발표한 곡이지만 이제 그 노래는 1988년의 노래가 되었다. 1988년을 추억할 때마다 뇌리에는 <걱정 말아요 그대>가 흐를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그 간극에 대해 그르다하지 않을 것이다.

<응답하라 1988>에는 두 곡의 <걱정 말아요 그대>가 흐른다. 샐러리맨 성동일이 아버지로서의 짐을 지고 아파할 때는 거칠고 절규하는 듯한 들국화의 노래가, 나미란이 어머니로서 아파할 때는 차분하게 젖어드는 이적의 노래가 배경으로 흘렀다. <걱정 말아요 그대>가 1988년의 노래가 되었지만, 이처럼 서로 다른 편곡과 목소리의 두 곡은 서로 다른 감성을 대변하는 곡으로 자리한다.

다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처럼 1980년대를 살아간 이들도 노래에 기대어 강을 건넜다. 무리지어 강을 건너기도 했고, 홀로 건너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배를 타고 건너지는 않았다. 누구는 나무배를, 누구는 범선을, 누구는 뗏목을 타고 시대의 강을 건넜다.

청춘들은 청춘들대로 그들 세대의 노래배가 있었다. 산울림, 김정호, 들국화, C.C.R…. 필자가 타고 건넌 배의 이름들이다. 다른 이들에겐 다른 배의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대학시절, 광주에서 유학 온 한 친구는 술이 취하면 언제나 <금관의 예수>를 불렀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절규하듯 토해내던 그 노래에 대해 친구들 누구도 노래를 멈추게 하거나, ‘좋다’ ‘싫다’ 말하지 않았다. 그 친구가 왜 그 노래를 부르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라는 말의 의미는 상대방의 침묵을 존중하는 것이므로 침묵 속에서 맥주를 마시는 거였다.”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글처럼, 그 친구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우리도 침묵 속에서 소주나 막걸리를 마셨다. 가끔은 그 친구처럼 절규하지는 않았지만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누구나 그렇게 자신만의 노래를 갖듯이, 시대도 그 시대만의 노래를 갖는다. <걱정 말아요 그대>처럼 이야기를 따라 그 시대로 찾아간 노래가 아니라, 본래 그 시대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노래들이 있었다. <무한도전>에서 1990년대의 10대와 20대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스타들을 한 자리에 모은 <토토가>를 기획했는데 예상외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화적 얼굴을 갖게 된 <토토가>의 성공도 199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들과 그들의 노래들에 1990년대라는 시대의 얼굴이 겹쳐졌기 때문이고, 1990년대를 살았던 젊은 청춘들의 기억 속에서 노래들이 다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노래는 그렇게 탄생하면서부터 시대의 옷을 입고, 감성의 향취를 머금는다. 그 옷과 향취는 아주 오래토록 사라지지 않는다. 바래기는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공감도 시대의 노래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이 계속해서 변해간다.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의 노래가,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노래가, 청소년의 노래가, 나이가 들어 장년이 되어 즐기는 노래가 다 다른 이유가 그 때문이다.

사람은 성장해가면서 나이에 맞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문화구성체에 속해 있는 인간들은 대부분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복잡한 사회일수록 세분화된 단계를 거의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각 세대는 자신들만의 공감을 갖게 된다. 덕분에 같은 사회의 동년배들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거의 유사한 기억과 그에 따른 공감을 공유하게 된다. 세대차이란 말은 그렇게 함께 공유하는 공감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같은 나이를 가졌다하더라도 서로 다른 공간을 갖고 있는 경우는 서로 다른 공감을 갖게 된다.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어야 시간에 따른 공감의 차이를 비교하기에 적당하다. 사람 사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응답하라 1988>의 스토리에는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걱정 말아요 그대>가 흐를 때의 그 아린 감성을 가슴으로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시대를 대변하던 노래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냥 사라지도록 두어야 할까? 그렇게 된다면 문화로서의 음악은 결코 풍성해지지도, 뿌리가 두터워지지도 않을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은 단순히 인기 있는 드라마라는 시선으로만 보기에는 아깝다. 음악적 자산을 풍부하게 만든 뛰어난 작품이다. 음악의 생명을 어떻게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보여주었다.

대동문화 93호 [2016 3,4월호]

천세진 문화비평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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